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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Aug 04. 2020

아직은 '뜨거운 응어리' 너가 필요해

그도 밉고 나도 밉다. 삐뚤어진 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뜨거운 가슴속의 응어리가

느껴졌습니다.


어젯밤 자기 전

거실에서 먼저 잠든 어머니가

미처 끄지 않은 TV 속에서

<아무튼출근>이라는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말없이 가만히 서서 

20분 정도를 봤던 것 같네요.


'90년대생의 밥벌이'라는 주제로

90년대생 직장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더군요.

저도 90년생이라 눈길을 사로잡힌 것 같습니다.


<아무튼 출근> ,MBC


그들의 직업은 다양했습니다.

5급 공무원, 대기업 마케터, 1인 출판사 사장

다들 번듯이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이었어요.

(여기서부터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불편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더군요.)


그중에서도 제가 눈여겨 봤던 분은

92년생 '이슬아'라는 분이었습니다.

작가이자 창작자로

1인 출판업을 시작해 성공한 분이셨어요.



나이는 저보다 어리지만

재능 있고 멋있는 여성이더군요.

'왜 작가는 꼭 출판사를 껴야 하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태산 같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직접 쓴 글을 열심히 직접 팔았답니다.

오랜 기간의 노력 끝에

지금은 당당히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번듯한 작가이자 사장의 삶을 살고 있더군요.


일일 연재라는 특이한 방식의 판매 전략이 인상 깊었어요
세바시 강연에 출연한 이슬아 씨


관심이 생겨 좀 더 알아봤습니다.

이미 1일 출판업의 새로운 길을 연

멋진 신여성의 모델로

여러 곳에서 강연도 하고 다니는 분이시더라구요.


그 순간 가슴이 좀 답답했습니다.

가슴속에 뜨겁게 뭉쳐있는 뭔가가

호흡을 가쁘게 하더군요.


속에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던 것 같습니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일찍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

이렇게 성공한 사람도 있네.


멋있다.

부럽다.

닮고 싶다.


동시에 


나는 그동안 왜 그러지 못했나.


한심하다.

안타깝다.

후회된다.


나를 TV에 나온 저 사람과 비교하고

스스로를 비하하고 자책하더군요.

제 오래된 나쁜 습관입니다.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버릇.


분명히 스스로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놓은 것이 없기에

지나간 내 과거와

삶에 대한 태도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고 부정하게 됩니다.


거기에 나보다 훨씬 잘나고

성공하고 멋진 사람을 눈 앞에서 보면,

특히 제 나이 또래의 사람이면 더더욱

저를 원망하고 질책합니다.

깎아내리고 짓누릅니다.

자격지심이 폭발합니다.

참으로 한심한 놈이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침까지도

그 감정의 여운이 남아있습니다.

조금은 나아졌지만요.


예전 같았으면

좀 더 오래갔을 텐데

이젠 그러지 않네요.


지금은 그저 

이것도 하나의 에너지원이 됩니다.

분노, 시기, 질투, 원망, 

후회, 안타까움, 자책 등등

성공하기 이전엔 풀길 없는 이 복잡한 감정들이,

응어리져 있는 이 뜨겁고 강렬한 뭔가가

이젠 제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분명한 동력이 됩니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그의 책을 한 권 샀습니다.

그가 쓰는 글은 어떨까

그가 만든 책은 어떨까

그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습니다.


예전엔 그저

시기의 대상인 그를 외면하고 무시하며

나도 언젠간 그보다 더 멋지게 성공할 거야

스스로 다짐하고 앞만 보고 나아갔을텐데.


지금은 배워야 한다는 걸 압니다.

자기만의 걸을 묵묵히 걸어가

나보다 멋지게 성공하고 잘나 져 버린 그들에겐

분명 나보다 나은 배울 점이 있단 걸 알기 때문이죠.

외면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합니다.

이거 나름 제겐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거든요.


저는 그가 멋있고 잘났다고 생각합니다.

닮고 싶은 부분이 있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마음 한켠으로는 밉습니다.

나보다 잘나고 멋있어서 말이죠.

나보다 먼저 이른 나이에 멋지게 성공해서 말이죠.


언젠간 고쳐먹어야 할

이 못나고 삐뚤어진 성격과 마음가짐이

당분간은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말이죠.



하아.

그리 오래 걸리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오늘도 묵묵히 마음을 다잡고

전 제 할 일을 하며,

제 갈길을 갈 뿐입니다.

그게 최선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 작은 방에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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