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미스터 트롯 콘서트
어제 엄마랑 데이트를 했습니다.
둘 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보는
콘서트가 있는 날이었거든요.
저희 엄니는 요즘 트로트에 푹 빠지셨습니다.
그중에서도 김호중이라는 가수를 좋아하세요.
좀 심하게요.
사랑의 콜센터라는 TV 프로그램에
여러 번 전화연결을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실패.
이와 관련된 스토리를
글로도 한번 쓴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호중씨는 군입대 예정으로 인해
갑자기 프로그램에서 하차.
???
둘 다 절망. OTL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김호중 목소리 한번 실제로 듣고 싶다는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
백수의 얇은 지갑사정은 개의치 않고
거금을 들여 콘서트 티켓을 구했습니다.
(티켓 구하는 것도 전쟁이더군요...
간신히 여자친구의 도움으로 얻게 된 티켓...
고마워 유정아ㅠ)
공연이 열리는 곳은 올림픽 공원.
버스를 타고 잠실로 갔습니다.
간단한 식사를 하기 위해
롯데월드몰 지하상가로 향했어요.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시더군요.
"이런데 와 본 지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갑자기 좀 무안하면서,
엄마한테 미안해졌습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를 모시고
어디 좋은 곳, 재미있는 곳을
같이 한번 가본 기억이 없더라구요.
너무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나선 서울 나들이에
한껏 들떠버린 어머니의 뒷모습이
조금은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되뇌었습니다.
'좀만 기다려 엄니.
아들이 금방 성공해서 더 좋은 곳에
많이많이 데리고 가줄게'
나온 김에 맛있는 거 사 먹자고
푸드코트에 가서 먹은 스테이크.
엄마는 자기 입맛엔 좀 안 맞는다며
쬐금밖에 먹질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1.5인분 뚝딱.
역시 순두부를 먹었어야 했나 봐요.
식사를 마치고
여유롭게 도착한 올림픽 공원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아
천천히 주변을 구경하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눈에 띈 이것
콘서트장으로 가는 길
여러 노점상들이 즐비해 있더군요.
귀여운 응원도구들부터
가수들의 얼굴이 새겨진 다양한 굿즈들까지.
이미 텐션이 오를 대로 오른 어머니는
뭐든 '김호중'이란 세 글자만 새겨져 있으면
싹 쓸어버릴 기세로 거리를 누비셨습니다.
마치 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장난감 코너를 그냥 지나쳐버리지 못하듯.
허허허.
그래도 이성을 잃지 않고
2개만 질렀습니다.
비가 오는 데도
인파가 엄청나더라고요. 바글바글.
가수의 현수막 아래에는
각양각색의 단체티를 입은 팬클럽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습니다.
좀 신기해 보였습니다.
거의 다 제 어머니 또래의 분들이셨거든요.
마치 예전 저의 10대 시절,
HOT는 하얀색 , GOD는 하늘색
핑클은 빨간색, SES는 보라색 풍선을 들었던 때가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저마다 설렘과 흥분을 안고
10대의 마음으로 돌아가
해맑은 미소를 짓고 즐거워하는 저분들처럼
어머니도 소녀처럼
그때의 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 흐뭇하더군요.
공연이 시작된 후
촬영은 전면 금지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긴 사진.
공연은 만족스러웠습니다.
어머니와 저 모두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본 콘서트이기도 했고,
가수들의 파워풀하고 애잔한 노래와
화려한 퍼포먼스가 멋지더군요.
무엇보다 그 압도적인 현장감이 좋았습니다.
이래서 이 돈 주고 콘서트 오는구나 싶었어요.
어머니는
김호중이 노래를 부르면 눈물을 보이고
김호중이 한마디를 하면 1초를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아들로서 참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씨익)
거의 4시간 동안이나 진행된 공연이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어요.
허리는 좀 아팠지만
저도 어머니도 모두 만족했어요.
이렇게 백수인 아들은
부모님께 제대로 된 효도를 한 번 할 수 있었고,
어머니는 소원을 하나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미스터트롯 고마워요.
어무니 사랑해요.
나도 수고했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