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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Aug 25. 2020

정리, 비우면 채워지는 미학

<신박한 정리>를 감상하고 나서

' 정리란 물건과 공간을 통해

잊고 있던 과거의 의미를 흘려보내는 일이고

새로운 현재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신박한 정리>


최근 tvN에서 방영되는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회차는

양동근씨와 오정연씨가 출연한 회차였어요.

낯선 누군가의 집을 정리해준다는 내용이

신선하면서도 인상 깊었습니다.


방송을 지켜보면서

알 수 없는 묵직한 감동을 받게 되더라구요.



집주인들은

말문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곤 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내 가족이

평범하게 밥을 해 먹고 잠을 자던

'집'이라는 자기만의 안식처가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말이죠.


'뭘까 이 감동은...?'




'정리'의 의미


오래된 물건을 버리고

집을 정리하는 게 어려운 이유는 뭘까요?


저도 1년 한 두 번씩 혹은 이사를 갈 때마다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물건을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무엇을 어떻게 버려야 할지 고민하며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을 때가 많았죠.


그것은 나의 물건과 공간에는

소중한 나만의 추억과 시간

담겨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 추억과 시간 속에는

남이 알 수 없는 나만의 어떤

버리기 힘든 가치와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겠죠.


그렇기에 뭔가를 '버린다'는 행위는

나의 오래된 추억과 의미를 정리하는 일과 같습니다.


정리란

켜켜이 먼지가 쌓인 채 아득히 먼 기억 속에 묻혀있던

오래된 과거의 시간을 재발견하는 일입니다.


또 정리란

그 시간 속에서

흘려보내야 할 추억과 남겨야 할 기억을 선별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정리란

남은 기억 속에서 쓸모 있는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것을 현재의 새로운 의미로 재구성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느낀

디자이너의 위대함


새롭게 탄생한 오정연씨의 거실


새롭게 탄생한 양동근씨의 다락방


그렇기에 정리라는 행위는

누군가가 대신해주기 참 어려운 일일 겁니다.

하나의 물건과 하나의 공간에 담긴

나만의 시간과 의미를 다루는 일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출연자의 집을 정리해준 디자이너 분의 일이란 게

과연 얼마나 어렵고 조심스러워야 할 일이고

얼마나 대단하고 의미 있는 일일지 가늠해보고 싶었습니다.



이전까진 정리가 안 된 추억들만 뒤죽박죽 쌓여있던

거실이라는 공간을 재구성해줌으로써

한 사람의 시간과 역사가 잘 정리되어

아름답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해 줬습니다.


이를 통해 집주인은 집이라는 공간이

그저 답답하고 숨이 막혔던 공간이 아니라

내 지나간 삶의 의미를 되찾고

새롭게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란 걸 깨닫게 됐죠.



창고처럼 쓰여 온갖 잡동사니만 널브러져 있는

다락방이라는 공간을 재구성해줌으로써

한 사람이 이제껏 잃어버린 줄만 알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만의 삶의 영역을 되찾을 수 있게 해 줬습니다.


이를 통해 집주인은 이제껏

가장으로써 희생해야만 할 줄 알았던

자신만의 잊고 있던 꿈을 이룰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얻게 되었습니다.



정말 멋지고 대단한 일이 아닌가요?

공간을 정리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새롭게 창조된 결과물을 보여줬을 때

디자이너가 집주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얼마나 부단히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그들의 은밀한 삶의 영역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배려해주기 위해 노력했는지

은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온기

참 인상깊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바쁘기에

내 삶과 공간의 용도와 목적

너무도 자연스럽고 쉽게 잊은 채 살아갑니다.


공간 디자이너란

각각의 물건과 장소에는 분명한 용도가 있고

그것들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엔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알려줬습니다.

그 용도와 목적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어

특별한 삶의 감동을 선물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와 그들이 감동을 받게 된 이유


말문이 막히고 눈시울을 붉힌

오정연씨와 양동근씨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궁금했습니다.


누군가에 손길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 자신의 안식처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그리고 시간들이

머리와 가슴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지 않았을까요.


온전히 나만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그리고 나의 손을 거쳐 정리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인 공간과 추억이라는 공간에서

내가 아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 게 된 걸까.

또 그 과정에서 누군가

내 은밀한 삶의 영역을 들여다보고 이해해줬다는

따뜻한 온기와 위로를 느낄 수 있던

인상 깊은 경험을 통해 뜨거운 감동을 받지는 않았을까.


그런 기분 좋은 상상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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