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 일지 마지막화(2020.01)
2018년 1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대략 1년 2개월을 다녔던 공장을
드디어 그만뒀습니다.
1년 전, 세컨비자를 받기 위해
3개월만 머무르고 떠날 예정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그땐 이렇게나 오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정말 사람 일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일이 고되고 몸과 마음이 지쳐
그만 둘 생각을 100번도 넘게 해 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끝끝내 버텨냈네요.
그놈의 돈이 뭐라고.
덕분에 세계일주를 위한 경비는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본 일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누구는 1년 2개월의 시간을
이런 곳에서 허비했느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내내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냈거든요.
하지만 돌이켜보니
절대 그 정도로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이 곳에서 시간과 마음고생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제가 얻은 경험과 배움의 가치가 얼마나 값진지 전 압니다.
스스로를 자위하기 위한 합리화는 아닙니다.
두고두고 이 시간을 추억하며 회상할 것 같습니다.
누구도 쉽게 겪어보지 못할,
그리고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그런 특별한 시간이었거든요.
공장을 떠나는 마지막 날
그 날의 감회가 떠오릅니다.
시원 섭섭하달까, 후련하면서도 아쉬운
그런 복잡한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죠.
정말 지긋지긋했지만
고마웠다.
이젠 정말 안녕.
Goodbye Fletcher
그래서 2년 동안 내 영어실력은 얼마나 늘었을까
제 비자는 3월 만료였습니다.
그래서 2월부터 출국 전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로드트립을 떠날 예정이었죠.
그때까지 약 2주 정도의 시간이 비었습니다.
그 시기에 제가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영어시험.
세계일주 준비를 위해
호주에 온 목적은 딱 2가지였습니다.
돈과 영어.
돈은 준비가 되었지만,
영어는 확신할 수 없었죠.
그래서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2년 동안 호주에 살면서
내 영어는 얼마나 늘었을까.
그렇게 2주
정말이지 오랜만에 그리고 열심히
시험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쳤죠.
충격적인 결과였습니다.
2주 한다고 점수가 얼마나 나올까
사실 기대는 크게 안 했는데
예상보다 잘 나왔거든요.
Overall Band Score라는 게 평균점인데
10점 만점에 7점이라는 소립니다.
성적표를 받은 날 기분이가 매우 좋아서
아싸!!! 하고 소리쳤어요.
물론 시험에 대해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그렇게 높은 점수는 아닙니다.
가장 충격이었던 건
엄청 잘 봤다고 생각했던 듣기(Listening)와
2주 동안 가장 열심히 했던 쓰기(Writing)가
완전히 망했다는 사실.
또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말하기(Speaking)에서
기대 이상의 점수를 받은 부분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점수가 전혀 예상치 못한 식으로
거꾸로 나와버렸다는 거죠.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웠습니다.
생각보다 내 머리가
그렇게 돌대가리가 되진 않았구나.
세계로 나가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
라는 확신을 갖게 됐거든요.
시험 점수 그 자체는
커리어로써도 스펙으로써도
제겐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러려고 본 시험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저 한 장의 종이 쪼가리에는
제게 굉장히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스스로가 그동안 헛된 시간만을 보낸 건 아니었구나
라는 사실을 증명하게 해 준 하나의 증표였거든요.
지난 시절에 대한 걱정과 후회를 조금이나마 덜어준,
그래도 내가 할 만큼 했다는 위로와 보람을 건네준
내가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인 셈이었습니다.
물론 좀 더 열심히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그래도 뭐 이젠 다 괜찮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더라구요.
그동안 고생 많았다.
짜식.
이젠 진짜 안녕
일도 그만뒀고,
영어시험도 봤겠다.
이젠 정말 떠날 일만 남았습니다.
돈만이라도 제대로 벌겠다고
2년 동안 정말 많은 걸 꾸역꾸역 참아냈습니다.
먹을 거, 입을 거, 사야할 것들에 돈 쓰지 않고,
친구들이 휴가 때마다 좋은 곳으로 놀러 갈 때,
저와 제 여자친구는 흔들리지 않고
집에서 묵언수행을 하거나,
동네 주변을 가볍게 드라이브 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순간만을 위해서 말이죠.
짐을 정리하고,
마음도 정리하고,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그동안 참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살아보고, 헤어지고
그랬습니다.
처음 이곳에서 만나 함께 지내온 친구들 중
제가 떠나는 마지막까지
동네에 남은 친구들은 몇 없었습니다.
더보 생활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이 친구들에게도 작별인사를 합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이곳이 분명 그리워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떠나기 전
여기저기 발도장을 찍으러 다녔습니다.
자주 가던 동네 음식점들을 순회하고,
비싸서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맛집에도 가고,
혀와 뇌리에 그 그리울 동네의 맛들을 잘 새겨두고 왔습니다.
그렇게 2월의 쌀쌀한 어느 날 아침
저희는 홀연히 떠났습니다.
호주땅 둘레의 약 4분의 1을
차를 타고 여행하기 위해서.
앞으로 죽기 전에
저곳에 또 한 번 갈 일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없겠죠.
하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동네의 생김새와 집 구조,
도서관의 위치, 맛있는 피자집의 파스타맛
장보던 거리의 북적거림, 공원의 냄새
저 동네에서의 모든 순간과 기억들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생생합니다.
호주 워홀 일지는
이번화를 마지막으로 끝이 납니다.
글솜씨가 참 없는 것 같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일지였습니다.
2년 동안의 소회를
어떻게든 글에 잘 녹여내고 싶었지만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그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인상 깊은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고도 싶지만
그것도 잘 안되네요.
다음부터는
약 한 달 반 동안
여자친구와 함께했던
로드트립에 관해 써보고자 합니다.
그때의 기록도 풍성하거든요.
그동안
이 재미없고 감동도 없는 글을
곧잘 읽어주신 고마운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