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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티스트 Sep 29. 2015

기적은 한 줄로 부터...

관점

                                                                                                                              

'다들 말랐구나...'

평소 즐겨찾지  않던 옷장 속 앨범. 먼지가 소복히 쌓인 책자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영실이는 잊혀졌던 추억이 쌓인다기보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 과거의 추억이 된 사진 속 인물들. 하나같이 날씬하고 매력적인 몸매를 소유하고 있는데...
안면으로 몰려오는 혈압... 열이 차 오른 그녀는 결국 터져 나오는 욕설을 아낌없이 배설한다.

"시발!!! 왜 나만 뚱뚱한거야...왜!!! "

앨범을 집어 던지고 발로 밟고..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 그녀는 양 손에 힘을 잔뜩 쥐어 지난 추억의 산물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거친 숨을 몰아 쉬며 거울 앞에 서는 그녀. 퉁퉁하기 짝이 없는 볼살. 살에 파 묻혀 그 존재 여부가 의심 스러운 콧 날. 사라져 버린 얼굴과 목의 경계선.
 문득 그녀를 스쳐간 생각에 서둘러 책상 서랍을 뒤져 약통을 꺼내는 그녀였다. 

"그래... 약도 좀 더 부지런히 먹어야 겠어...오늘부터 식사량을 더 줄일거야..."

그녀가 먹는 약은 병원으로 부터 처방 받은 식욕 억제제였다. 하루 권장량을 무시한 채 세 알을 목구멍으로 삼킨 그녀는 다시 옷장으로 향했다. 겨우 내 드라이를 맡기고 고이 잠들어 있던 오리털 파카와 두꺼운 재질의 옷들을 꺼내드는 영실. 급기야 털이 조금씩 삐져 나온 패딩을 입고는 현관 밖을 나선다.

 현재 그녀가 있는 동네의 날씨. 최고기온 33도를 자랑하는 한 여름이다. 남 들은 민 소매 T 하나 걸치고 덥다고 아우성인데, 본격적인 다이어트를 결심한 그녀에게 이 정도 날씨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는 그녀. 그녀를 스쳐가는 사람들은 영실을 일반적인 상식 선에서 바라보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영실이 입고 있던 두껍기 짝이 없는 파카. 연 보라색 빛을 띄고 있던 그 잠바가 어느 새 땀에 흠뻑 젖어 짙은 보랓빛으로 변해 있었다. 자신의 집 앞에서 한 강까지 파워워킹으로 쉬지 않고 걸어온 그녀. 스스로 만족하는 눈치다. 이 정도 했으면 효과가 있을거라 생각 했는지 눈 앞에 보이는 벤치에 잠시 몸을 걸터 앉고는 주머니에서 손 거울을 꺼내 들었다. 

"꺄아아악 진짜 싫어!!!"

갑작스런 그녀의 비명소리에 뜨거운 햇볕을 피해 다리 밑에서 쉬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손 거울을 든 처자에게 향했다.

"뭐야? 깜짝이야... 야 이 미친X야. 딴 데로 꺼져!!! 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돗자리를 깔아 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년 남성이 영실을 향해 분노를 표출 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육두문자를 쏟아 내는 남자에게 두 눈을 고정했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 났다.

'병신...무슨 용기로 저 따구 몸매로 노출질을 하고 있어... 나 같으면 벌써 자살 했어...쯧쯧..'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가? 더럽기 짝이 없다 생각한 그녀는 여전히 두꺼운 패딩복 차림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 온 거리가 궁금했다. 손목시계에 채워진 스마트 워치로 거리를 확인해 보니 어느 덧 15KM를 걸어 왔음에 놀라는 그녀. 칼로리 소모량과 자신이 흘린 땀. 그리고 섭취하지 않은 에너지 원까지 계산해 봤을 때 자신의 체중은 3KG 정도 줄어 있을 것이라 판단 한다.

"그래 좋았어....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집으로 돌아 가면 분명히 큰 효과가 있을 거야..."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목이 말랐다. 타오르는 햇빛과 달아오른 몸체가 입 안의 존재하는 침 분비물을 모두 증발 시켜 버렸고, 운동 중에 물 섭취도 자신의 체중에 영향을 끼칠 꺼라 생각한 그녀는 먼 거리를 걸어 오면서 한 방울의 물도 섭취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곳까지 걸어 오면서 몇 개의 편의점을 그냥 지나쳐 왔는가? 배고픔? 목마름? 인간의 기본적인 3대 욕구인 식욕... 병원에서 처방받은 억제제를 세 알이나 삼켜서 였을까?
그녀는 멋지게 욕구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호소하는 갈증은 그 영역 밖의 문제였다. 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숨쉬는 것이 곤란해 지기 시작한다. 혀의 움직임도 목구멍의 연동운동도 서서히 활동이 아닌 정지를 추구한다.

'이거 큰 일인데.....집까지 버티기엔 날씨가 안 따라주네....조그만 더 가면 되는데....'

그녀의 눈 앞에 식수대가 보인다. 순간 눈이 돌아가는 그녀. 자신도 모르게 어느 새 식수대에 달라 붙어 버튼을 꾹 누르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강한 집념은  위장으로 넘쳐 들어오는 물에게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우웨웨웩...."

하루 종일 먹은 것이 없는 탓이 었을까? 갑작스레 몰려 들어 온 찬 성분의 물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그대로 자신의 위 속으로 들어 온 액체를 전부 쏟아 냈다. 순간 영실은 자신의 몸에 남아 있던 모든 에너지가 빠져 나감을 느낀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몸을 지탱해야 할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는 그녀.

'탈수 현상인가? 일사병 같지는 않은 데...일단은 그늘로 이동해야 겠어...'

식수대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그늘 벤치가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그 거리마저도 멀게만 느껴진다. 그녀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도 뻗어 보고 싶었지만 그들의 눈을 보는 순간 스스로 해결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동물원 철창에 갇힌 야생 동물을 바라보는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걸어가고 싶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도저히 일어설 수 없다.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그녀의 모션을 보고 엄마 손을 잡고 한강을 나온 꼬마아이가 노래를 흥얼 거린다. 그랬다. 영실의 움직임 자체가 그 꼬마아이에겐 거북이의 걸음걸이와 다를 바 없어 보였던 것이다. 

'조금만...이제 다왔어..조금만.....................'


그녀의 귓가에 희미하게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 온다.

"일단 옷부터 빨리 벗겨.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람들이 서둘러 옷을 벗겨내다 그녀의 몸체가 드러나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뭐야....이 여자 뭐 이렇게 말랐어?  미라랑 다를 게 없네.. 서둘러야 겠어요... 빨리 119에 신고해요."

의식을 잃어가는 그녀. 그 와중에도 그녀의 귓가에 들려 온 한 마디가 그녀를 기쁘게 하고 있었다.

'말랐어...나는 말랐어...절대 뚱뚱하지 않아...."

잠시 후 119 차량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는 그녀. 그녀는 이미 그들 사이에서는 너무도 유명한 거식증 환자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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