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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티스트 Oct 13. 2015

기적은 한 줄로 부터...

통하다.

                                                                                                                              

"넌 안 갈거잖아 말만하고..."

화가 머리 끝까지 차 오른 상철이 결국 속에 담아 둔 말을 꺼내고 만다.

"벌써 이 번이 몇 번째야?  마냥 기다려야 되는 거야? 내려 놓을 건 좀 내려놔!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지기라도 할 것같아?"

출발이 임박했는지 기차가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 대지만 규식은 아랑 곳 하지 않은 채  로비쪽을 바라보고 있다.

"오지 않을 거야...아마도.... 너가 그녀 였어도...마찬가지였겠지..."

규식을 바라보며 쓴 웃음을 짓는 상철은 서둘러 벤치 위에 놓아 둔 자신의 베낭 가방을 둘러멘다. 그리고는 규식의 어깨를 살포시 토닥이고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하....하..난 무엇을 기대하는 거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가 오지 않을 것을 말이다. 집착 혹은 미련의 감정에 사로 잡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화가나는 규식이었다. 이미 헤어진지 2년이 넘어선....게다가 이제는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녀다. 이미  한 가정의 아이엄마가 되어 버린 그녀를 어째서 잊지 못하는 걸까? 규식은 홀로 남은 기차역 벤치에 대자로 누워 버렸다.

유난히 맑은 가을 하늘.구름 한 점없이 너무나 깨끗한 이 하늘을 보고 있자니 그리워 해서는 안 될 그녀가 더 더욱 생각났다. 그녀를 떠나던 그 날도 오늘처럼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었기 때문이다.

"오빠...꼭 가야 돼?"

등산장비를 가득 메고 집을 나서려던 규식을 불러 세운 건 희연이었다.

"이번엔 진짜 안 갔으면 좋겠어...내 감이...이대로 오빠가 가면 우리는 영영 헤어질 거라 말한단 말야.."

울먹이는 얼굴로 가방 끈을 놓지 않는 그녀의 손을 부여 잡으며 규식은 환하게 웃었다.

"우리 공주님 오늘따라 진짜 왜 그러실까? 오빠가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야! 그리고 우리가 왜 헤어지냐? 나 없는 동안 바람필거야? 딱 말해라 서희연!그거 아니면 우리가 헤어질 일이 뭐 있겠냐?"

"이 멍청아 진짜 기분이 이상하단 말야!!! 야 엄규식!! 그래 확실히 하자. 너 현관문 열고 나가는 순간 나랑은 끝이야! 그래도 나갈 거야?"

억지를 부리는 희연의 얼굴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이는 규식이었다. 그녀의 허리를 낚아 채 자신의 품으로 강하게 끌어 당긴 후 머리를 쓰다 듬는 규식.

"딱 두 달만 기다려줘. 진짜로....이번 프로젝트만 마무리 되면 웨딩 드레스 입고 하루 종일 산책하자..."

규식은 희연에게 떨어지기 전 가볍게 이마에 키스를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꼭... 돌아 올께!!!"

그녀 의 느낌은 정말 틀리지 않았다. 그 것이 정말 우리의 마지막이 될 줄은....
 단순히 그녀가 내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 했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녀 말을 들을 걸...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규식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와의 마지막을 추억하던 규식의 눈에서 투명한 액체가 흘러 내린다.
아직도 그녀가 너무 보고싶고 그리운데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했다.
그 미련 때문에 규식은 여전히 이 곳에 남아 있다. 하지만 단순한 미련 때문 만은 아니다. 그녀도 분명히 나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어서였다. 그 강한 느낌 때문에 규식은 이 곳에 머물러 있고 마음 속으로 계속 외치고 있다.
제발 이 곳으로 한 번만 와 달라고 말이다.

두 사람이 커플이던 시절.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초능력 커플이라 불렀다. 놀라우리 만치 두 사람이 텔레파시가 잘 통해서 붙은 별명이 었다. 메뉴를 고를 때나 무언가가 필요할 때 두 사람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마음적으로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서로에 대해서 너무나 잘알고 있고 잘 맞추었던 두 사람.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

'내가 그녀를 떠난 건지 그녀가 나를 떠난 건지....'

규식에게 남은 미련은 결코 큰 것만은 아니었다. 이미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는 가정주부인 그녀.한 가정의 행복을 파탄낼 만큼 염치없는 사람?  규식은 절대 그런 부류의 작자가 아니다.

멀리서라도 좋다. 한 마디도 주고 받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 곳을 떠나기 전에 딱 한 번만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다.

그렇게 기다림이 또 다시 시작됐다. 그 동안은 동료이자 친구였던 상철이 함께 였지만 그는 이미 이 곳을 떠났고 얼마가 될지 모르는 기다림을 선택한 규식은 홀로 남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기차역 플랫 폼에 다음 기차를 타기 위한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 들었다.
규식은 여전히 기차역 로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보다 그를 먼저 반긴 건 경적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기차역으로 들어 오는 다음 기차 였다. 

"이 번 열차마저 놓치게 되면 더 이상 당신을 구제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탈 수 있는 마지막 기차란 말입니다."

기차가 역으로 들어 옴과 동시에 규식에게 다가와 경고의 문구를 남기는 남자.
하얀 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중년 남자의 모습이었다.상철역시 자신에게 했던 말이지만 이 번 만큼은 그의 말을 외면할 수 없다. 정말 이 번이 마지막 열차였기 때문이다.

"제발.....희연아 제발......"

규식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출발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기차.

"서두르세요. 이번 열차는 반드시 탑승해야 합니다."

규식도 이 번만큼은 어쩔 수 없는 지 자신의 가방을 둘러 메고 기차를 향해 걸어 간다.
발거음이 무겁다. 자꾸만 뒤를 돌아 보게 된다. 혹시라도 그녀가 오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로비에는 아무도 없다.

"이렇게....영원히 볼 수 없는 건가......."

체념을 하고 기차에 발을 내딛는 그 때였다.

"규식씨!!!"

낯익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 보는 규식.
허겁지겁 달려와 기차역 로비에 들어 선 그녀의 모습.
희연이었다.





절대 정숙이라는 경고표지를 무시하고 중환자실이 한 사람의 울음소리로 가득찬다.
산소 호흡기에 목숨을 연명한 채 2년 째 병실에 누워 있는 남자.
무 표정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던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가 싶더니 
이내 감 은 두 눈을 타고 눈물이 흘러 내린다.

"삐이이이이......."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의사가 말했다.

"2050년 10월 13일 오후 3시 33분. 운명 하셨습니다."

"규식씨!!!!!어어어엉"


역을 떠나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기차.규식의 옆 자리에 앉은 하얀색 정장 차림의 남자가 규식에게 묻는다.

"정말 놀라운 능력 입니다...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그러한 능력을 발휘 할 수 있죠?"

"아 놀랍기는 요...놀라운 능력은 저승사자님이 더 많으 실텐데....기다려주셔서 감사할 따름 입니다.
뭐 특별한 능력이라기 보단 아마도 진정한 사랑을 서로가 느꼈기 때문이겠죠.
소위 말하잖아요. 우린 잘 통한다고..."



규식의 장례식 장에서 누군가 희연에게 물었다고 한다.

"어떻게 연락을 받고 오셨어요?"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누군가 자꾸만 보고 싶다고 외쳐서 그 소리가 나는 곳을 몸으로 느끼고 따라 와보니 
이 곳이었다고....
그리고 세상에서 자신과 그 것이 가능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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