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만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빽티스트 Oct 20. 2015

기적은 한 줄로 부터...

판도라의 상자

                                                                                                                              

"좋은 정보 알려줄까? 진짜 쉽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인데... 비밀보장 할 수 있냐?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

오랜 친구가 내게 말하던 비밀. 그 것은 사회적 잣대로 봤을 때 명백한 범죄였다.하지만 난 그의 말에 귀가 솔깃할 수 밖에 없었다.직장을 그만두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해 봤지만 세 달 째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이제 나라에서 나오는 실업수당도 곧  끊길 것이고 가장으로써의 역할을 해내기엔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
그러니 그의 제안은 명백히 범법행위 임을 알면서도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사탕 발림 같은 것이었다.


"재권씨는 그냥 먼저가서 주변을 잘 살피고 구멍만 파 놓으신 다음에 그 안에 이 것만 넣고 빠지시면 되요. 그럼 그 후에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무언가를 땅에 묻는 행위...

이 번 프로젝트(?)에는 친구와 나, 그리고 그의 지인이라는 사람.이렇게 세 사람이 참여 한다고 한다. 화학회사에서 폭발물이나 화약등을 다룬다는 남자. 서글서글한 인상에 말투 하나하나에 예의가 묻어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내게 건넨 택배박스만한 상자.

"후우....진짜 별 일 없겠지?"

살면서 법에 어긋나는 행위는 하지말자 다짐하고 살아 온 지 어느 덧 사십여 년.

 정직...
이 단어야 말로 나를 표현하는 완벽한 단어였다.성실한 모습으로 신뢰를 쌓아 온 내 직장생활... 참 허무하다. 직장에서 짤리고 나니 그 믿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믿었던 관계가 얼마나 부질없고 유리알 같이 쉽게 깨어지는 사이 였는지 절실히 깨달았으니 말이다. 사람이 재산이라 믿어왔고 그들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서 살다보니 가정을 소홀히 한 것도 사실이었다. 주말이면 주변인들 경조사 참여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업무시간에는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 같이 그 인적네트워크가 직장에서 지위를 잃는 순간 아지랑이 처럼 피어올라 사라져 버렸다.
소멸된 인간관계에서 유일하게 내게 손을 내밀어준 건 역시 친구 뿐이었다.

"걱정마라 친구야 다 잘 될 거다. 이 상자만 잘 묻으면 한 방에 제기할 수 있어.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이 번호로 연락 꼭 하고..."

그들이 내게 건넨 상자.그들에게는 이 상자가 어떠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일의 보수로 상당히 큰 액수를 제시하는 것 보면 분명 그들에게 이 상자는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난 그들이 원하는대만 하면 그 가치의 상응하는 댓가를 얻을 수 있다.



 두 시간째 눈을 깜빡 거리며 와이프의 동태를 살핀다.가장은 직장을 잃는 순간 설 자리가 없다는 말을 절실히 느낀다. 말이 좋아 두 시간이지..... 직장을 그만 둔 이유로 하루종일 그녀의 눈칫밥을 먹느라 배가 고플 겨를이 없다.하지만 눈치 보는 것도 오늘까지만이다.곧 엄청난 액수를 받게 될테니...

그녀가 완벽히 잠에 든 것을 확인한 후 천천히 침대에서 빠져 나와 작업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긴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천천히 연다. 밖은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내려 인기척도 드물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친구가 부탁한 상자를 조심스레 보조석에 내려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자 속엔 무엇이 들었을까?"

확실한 건 이 상자가 내 앞으로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매우 중요한 존재라는 것 이다. 
내용물이 쓰레기든 폐기물이든...내겐 금덩어리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진행하려다 보니 그 동안 살아 온 내 인생의 가치관에 혼란이 온다.

'후우....진정하자. 내가 그리 나쁜 일을 하는 건 아니잖아. 그냥 쓰레기 무단 투척하는 정도의 경범죄에 해당하는 행동이야...할 수 있다.'

친구가 내 성격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난 정말로 바른 생활 사나이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 친구들이 담배를 피거나 쓰레기를 길거리에 버려도 난 늘 그 것들을 주워 쓰레기통에 넣었고 그들을 훈계했다. 단언컨데 난 대한민국에서 법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는 열 손가락이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법을 위반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자동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도 자꾸만 상자 쪽으로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처음 상자를 건네 받을 때 부터 친구와 그의 지인에게 상자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절대 상자를 개봉하면 안 됩니다. 절대로요..."

청개구리 이야기가 생각 난다. 하지 말라는 짓은 다 하던 어린 청개구리. 아마도 친구가 내게 이 일을 부탁한 건 내가 신뢰와 정직 하나로 이 세상을 살아 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나를 믿는 것이다. 상자를 개봉하는 계약 위반 행위 같은 것은 절대 안할 것이라 말이다.

 그런데 난 지금 미칠 것 같다. 도대체 상자 속 내용물이 무엇이기에 단순히 상자를 묻는 행위를 하는 데 그 큰 돈을 준단 말인가? 의심을 안 할수가 없었다. 눈은 자꾸만 자리 옆 상자로 향한다. 저 상자는 내게 있어 분명히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다. 여는 순간 내 임무는 아웃되고 약속했던 금액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만약에 말이다. 저 상자 속에 내가 받기로 한 금액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가진 무언가가 있다면?

 미칠 것 같다. 너무 궁금하다. 차라리 상자를 가지고 잠적해 버릴까? 그렇게 되면 우리 가족들은? 
가족?
직장을 잃은 순간 벌레 쳐다보듯 보는 그들을 위해 내가 희생할 필요성이 있나?
 상자는 마치 나를 시험이라도 하는 듯이 쳐다보면 쳐다 볼 수록 자신을 개봉하라고 내게 외치는 것 같다.

친구가 말했던 장소에 그들이 원하는 규격의 구멍을 팠다. 그리고 이제 상자를 묻기만 하면 내 임무는 끝이 난다.그냥 묻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액의 금액을 송출 시켜 준다고 했다.
상자를 구멍에 넣는다. 그리고 한 삽을 가득 퍼서 구멍 속에 뿌린다.

'아!!!!!!!!!!! 안되겠다. 도저히................."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동화 속 남자.그는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병이 났다고 하는 데... 난 그보다도 못한 상태다. 난 아직 상자 속 내용물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 딱 한 번만 개봉해 보고 닫자...'

결국
상자를 열어 보기로 했다. 물론 이 상자를 여는 순간 친구의 믿음을 져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내 몸은 상자를 열기위해 땅을 파내던 삽을 다른 곳에 이용하고 있었다. 굳게 입을 닫고 있는 상자의 틈새로 날카로운 삽 머리를 쑤셔 넣으며 속 내용물 확인에 나선 것이다. 상자는 생각보다 단단했고, 묵비권을 행사하려는지 더 꽉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같았다.

"깡깡깡....."

어느 덧 난 상자 열기에 혈안이 된 나는, 쇠와 쇠끼리 부딫히는 마찰음에 주변이 시끄러워진 것도 모르고 집중했다. 그렇게 몇 차례 더 상자를 내려치자 판도라의 상자가 개봉됐다.

"으아아악"

난 상자 속 내용물을 보는 순간 비명을 질렀다.그리고 내 비명보다 더 큰 경보음이 상자로 부터 세어 나간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

그리고 잠시 후 마치 그 자리에 처음부터 있었다는 듯이 남자들이 모습을 드러 내더니 내게 다가온다.


" 당신을 살인교사 및 시체 유기협의로 체포 합니다."


내 손에 채워지는 수갑. 난 남자들에게 둘러 쌓여 경찰차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차에 올라타는 그 순간 멀리서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 그는 나를 향해 눈웃음을 치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 그는 혼잣말로 중얼 거렸다.

"모든지 개봉되는 순간 가치는 떨어지지..."

매거진의 이전글 기적은 한 줄로 부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