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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티스트 Nov 03. 2015

기적은 한 줄로 부터...

세상 밖으로 나온 박쥐.

                                                                                                                              

지랄하네..간에 붙었다..쓸개 붙었다...응..진짜 정도 껏 해라.너가 원래 그런 놈인 줄 진작에 알고 있었는데 그 놈의 정이 뭔지...애초에 너를 끌어 들인 내가 잘 못이다.내 진짜...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겠는데...평생 그렇게 박쥐 짓이나 하니깐....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나를 도와줘. 한 번 더 기회를 주마. 진짜 마지막이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던 내게 날아 든 메세지.
회사 선배로 부터 날아 온 감정이 가득 실린 이야기였다.이 사람이 왜 이렇게 나에게 화가 났냐고?
내가 자신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고 선배의 동기인 김과장의 의견에 동의 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뭐 사실 선배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런 문자를 보낼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선배의 추천으로 입사할 수 있었고...선배이기 이전에 전 부터 친분을 쌓아 온 동네 형이기도 하다.그렇지만 이 곳은 엄연히 회사다. 개인적인 친분만을 내세우기에는 너무나 치열한 전쟁터란 말이다.
선배와 그의 동기인 김과장. 부장 승진을 앞두고 있는 두 사람.

회사에서 잘 나가는 법? 그 것은 회사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본인에 자리에서 자신의 업무를 묵묵하게 하면 돼."

지랄이다. 이 사람은 절대 회사에서 성공할 수 없다. 물론 일 적으로는 인정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떠 안게 되는 건 수 많은 업무이지...아마도  그는 일만 하는 노예로 전락할 것 이다.

회사 생활은 정치판을 축소 시켜 놨다고 볼 수 있다.현재 우리 사무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세력 싸움. 나는 비록 입사는 선배를 통해 했지만 단 한 번도 내가 그 사람의 라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선배. 미국 명문대 출신으로 엘리트 인생을 살아 온 업무적인 감각은 거의 타고 났다고 인정 받는 김 과장.

과장 10년차의 선배와 3년차의 김과장.
이 기간만 봐도 누구에게 붙어야 유리한 지 감이 딱 오지 않는가?

선배 말씀이 지나치십니다...아니 상원이형...형이 신경 써주고 돌봐 준 은혜는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저는 형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제게도 생각이 있고 제 의지대로 행동할 권리가 있습니다.편안한 밤 되시고 회사에서 뵙겠습니다. ㅂㅅ

누구를 호구로 아나? 언제까지 내가 자신의 충성스러운 심복일거라 생각한 선배가 어리석은 것이다.
피를 나눈 가족끼리도 총을 겨누는 세상에 단순히 이웃사촌에 불과한 동네 형을 믿고 가기에는
단 한 번 뿐인 내 인생에 실례가 되는 것 같다.

'병신....이 번 승진싸움에서 밀려서 그냥 은퇴나 해...김과장 라인임을 확실히 하는 게 내겐 중요하다.
그럼 나도 내년 쯤 과장 승진 가능 하겠지?'

선배에게 보낸 메세지. ㅂ ㅅ은 좀 너무 했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우둔한 이 형이 자신의 현재 상황을 좀 깨 달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 로비로 들어서려는 순간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근식아!"

선배다. 젠장...왜 친한 척이지...지난 밤 내게 육두문자를 날린 주제....잠깐 고민이 된다.
평소처럼 반갑게 맞아서 인사라도 건네다 김과장이 그 모습을 보면 오해할 것 이다.
그래 지금은 나를 위해 살아야 할  때다. 난 그의 부름을 못 들은 체 하며 그대로 사무실로 들어 왔다.

하지만 여기서 그의 오지랖(?)은 멈추지 않았다.

"근식아 커피 한 잔 할까?"

"근식아 이따 퇴근 후에 소주 한 잔 할까?"

그는 여전히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나를 대하며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승진 결과가 나오려면 아직 3일이란 시간이 남았다.
그 때까지 절대 내가 선배의 사람이라는 티를 내서는 안 된다.
난 김과장의 사람이다. 난 김과장의 라인이다.
조용히 선배에게 메신저를 보낸다.

"선배님 저 좀 잠깐 봅시다."

옥상에 올라 와 허공에 담배연기를 내 뿜는다. 어떻게 말해야 이 우둔한 선배가 말을 알아 쳐 먹을까..
고민을 한다.그런데 그 순간 그 동안의 회사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입사부터 늘 함께 해 온 선배. 회사에 적응하는 기간동안 늘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선배였다.
하지만 공과 사는 뚜렷하게 해야 하는 게 인간의 삶 아닌가....
정 때문에 앞으로의 내 미래에 먹구름을 몰고 오고 싶진 않다.

"근식아 무슨 일이야?"

난 선배를 향해 강한 눈빛 그리고 딱딱한 어투로 말한다.

"선배님 아니 형.. 지금 뭐하자는 거야? 나한테 쌍욕을 퍼부을 때는 언제고...왜 자꾸 친한 척이지?
왜 내 앞길까지 막으려고 그래? 형...진짜 부탁인데...나도 좀 살자. 형이 회사에 넣어주고 그 동안 신경써 준 건 고마운데....내 사정 알잖아...형 부탁할께..."

선배의 표정이 어둡다.

"근식아...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너가 굉장히 이해 타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라는 걸...그래도 난 너 사정도 알고 있고 늘 너가 잘 되기만을 바라고...그래서 도와주고 싶었다.
그런데...넌 지금 이순간까지...아니지 앞으로도 넌 계속 그렇게 박쥐 같이 살 녀석이구나.."

선배의 말에 기분이 상했다. 잘 됐다. 이 기회에 확실하게 뿌리를 뽑아야 겠다.

"지난 날은 잊고... 지금부터 미래만 봅시다.내 미래 설계에 형은 없어..."


승진 결과가 나오기 까지 남은 시간.
난 최대한 선배를 멀리하고 김과장에게 충성한다.

그리고 승진 발표가 있기 전 날 김과장의 사람으로 그와 술자리에 동행하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소주 잔에 술을 채우고 몇 차례  건배가 오고 갔다.
그리고 적당히 취기가 오른 그 순간 김과장이 입을 열었다.

"뭐 사실 내 부장 승진은 확실한 사실이고....이근식씨..."

"네??"

"내가 알고 있기론 정상원 과장님이랑 굉장한 친분이 있다고 들었는데...."

역시 김과장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황해서는 안된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죠..과거 음반 시장의 판도가 바뀔 때와 같은 것 입니다.
변하지 않는 자는 도태 될 뿐이고....대세에 따르는 것이 제 방식 일 뿐 입니다.
존경 합니다. 김과장님..."


"대세라.....이것 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과장을 향해 90도 인사를 했다.
그의 표정이 밝다.나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다.


다음 날 역사가 시작되는 아침이 밝았다.
난 일찌감치나와 김과장의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제 부장이 되는 그의 자리는 조만간 내 자리가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다들 출근해 자리를 채운다.
하지만 선배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있다.
아마도 이미 승패를 예상하고 사표를 썼는지도....

그리고 조회시간.

승진자들의 이름이 호명되고 그들이 단상 앞에 선다.

역시 예상대로 김과장의 승리다.

"김과장 님 아니 김 부장님 축하 드립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큰 목소리로 그를 축하한다.

그들의 임명장 수여가 끝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다가 왔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세상 일이라 했던가?

"그 동안 저희 회사 영업팀에서 과장직으로 근무했던 정상원 과장님께서 
오늘부로 사퇴서를 제출하고....회장님의 권유로 오늘부터....."

내 귀를 의심하는 순간이었다. 뭐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그가 단상으로 나오자 전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8년 이라는 시간 저는 회사의 바닥에서부터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이제는 우리 승영그룹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대표로써 노력할 것 입니다.아버지가 이루어 놓은 이 성벽을 더욱 견고하게 다지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선배가 대표라니???
넋을 잃고 선배를 바라보는 내게 김과장이 다가왔다.

"근식씨도 모르고 있었던 거야? 정상원 대표 보기보다 확실한 사람이구만...."

나는 그렇게 대표가 된 선배를 
아주 멀리서 그저 바라만 봐야 했다.
동네 형 선배가 아닌.... 만년 과장이 아닌 그의 모습을 말이다.
단상에서 자신의 각오를 다지는 선배의 모습은
굉장히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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