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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티스트 Dec 01. 2015

기적은 한 줄로 부터...

톱니바퀴

오늘도 진짜 징글징글하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적응이 될 만도 하지만,쌓인 업무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적어도 내 주변을 둘러 봤을 땐 단 한 사람만이 일을 즐기는 듯 하다.

바로 내 직속상관인 박차장이다.

정확히 말해서 그는 일을 즐긴다기보다 상사로써 나를 괴롭히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스트레스를 푸는 듯 했다.



오늘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저녁 6시 반이 넘어서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 나를 불러 세우는

박차장.



"효빈씨 송도 연구소 들려서,클라이언트 좀 확인하고 해결하고 퇴근해."



그는 분명했다.내게 고통을 안겨주고 내가 그 고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희열하는 사이코가 분명했다.



"차장님...그 쪽에서 연락이 온 것도 아니고...꼭 이 시간에 송도까지 가야 합니까?가는데 만 한 시간은 넘게 걸리는 데.."



"야 너 진짜 많이 컸네. 야 성효빈..너 영어 좀 하고 윗 사람들이 좀 알아 봐 주니깐 눈에 뵈는 게 없지?"



실수다.어차피 말이 안 통하는 상사 건드린다고 내 일이 없어 지는 것도 아닌데 하기 싫은 일에 듣기 싫은 잔소리까지 덤으로 받고

야근 확정이다.



퇴근길.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

그들과 나는 도로라는 공간에 존재 하지만 목적지가 다르고

마음상태가 다르다.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저들과

온 갓 잔소리에 알지도 못하는 업무를 처리하러 가는 나.



"아아아아악 이 개 같은 자식아.그러니까 너가 만년 차장이지.

일을 좀 유연하게 처리하면 안되냐?"



나는 자동차가 터질만큼 크게 노래를 켜 놓고 그 소리를 뛰어넘는

악을 지르며 송도로 향했다.



오후 8시. 한 시간 반 가량을 달려와 연구소에 도착한 시간이다.

이들도 퇴근을 했는지 주차장은 한적하다.

화도 나고,반항하고픈 욕구가 샘 솟으면서 나는 주차공간을 최대한 넓게 활용해 대충 차를 세웠다.



건물 초입에 들어서 연구소 안으로 들어가려는 때였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경비원 차림의 늙은 남성이 나를 불러 세운다.



"아...저희 장비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확인 차 방문했습니다."



중년의 남성은 가래가 끓는지 헛기침을 세어 번 뱉어내고는

갸우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연구소 직원들 오늘 일찌감치 퇴근 했는데요.매달 둘째 넷째 주 수요일은 가정의 날로 지정해서 오후 5시면 전원 퇴근 합니다.

연구실 들어가도 아무도 없어요."



이건 또 무슨 날벼락 떨어지는 소리인가?

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타오르는 분노를 가라 앉히고자 담배 세 가치를 연달아 태웠지만 쉽게 성이 가라 앉질 않는다.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 들고, 박차장을 향해 손가락 질을 한다.



"받아라..넌 진짜 ...이 개 씹..."



"어 여보세요."



"차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여기 직원들 다 퇴근하고 없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너 확실히 확인했어?"



"경비원이 연구소에 들어 가려는 저를 붙잡아 세우고 말하던데요.

오늘 다 퇴근 했다고! 아니 박차장님 확실히 연락 온 거.."



"그럼 퇴근해"



내 말을 끊고 통화를 종료해 버리는 상관.



'진짜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나?'



회사에 입사한 이래로 내가 행복했던 적은 있었던가?

이게 바로 삶이고 행복이다.라고..

일에서 행복의 이유를 찾은 적은?



차를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오늘은 유난히도 많은 생각과 퇴사에 대한 욕망이 타오른다.



'내가 진짜 엿 같아서 이 회사 때려친다...'



우우웅~~우우우웅~~



김부장이다.

얼마 전 우리 집 근처로 이사까지 온 동네 주민이기도 한..



"네 성효빈 입니다."



"어 효빈이 어디야? 집 근처면 술 한잔 하고 싶은데...."



"예...제가 지금 송도라..부장님 죄송 합니다."



"송도? 거긴 왜 갔어? 일찌감치 퇴근 안하고...이 친구 너무 열성적으로 일하는 것 같아...효빈이 내가 자네의 성실함은 참 높이 평가하고 있네.이대로만 잘 따라와 내가 확실하게 자네는 밀어 줄테니.."



내가 유일하게 이 회사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

그 것은 김부장의 애정 때문이다.

그래 난 누가 뭐래도 김부장의 라인이고,

그의 심복이야.



오늘도 징글징글한 하루 였지만

내일도 속이 니글니글한 사람관계의 연속이고

부글부글 끓어 오르며 열 받은 나를 마주하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것또한 나의 삶인 것을...



퇴근시간이 지나 뻥 뚫린 도로.

 언젠간 내 삶도 이렇게 시원하게 뚫리겠지라며 희망 자위를 하는

내 모습을...

오늘도 어김없이 발견하며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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