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모르는데 남들 나를 알겠느냐
사는게 쉽지 않아 로 시작된 녀석의 푸념은
쉽게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미쳤지.아무리 리스 라지만 주제에 맞지 않는 자동차를 사가지고...
승일아...너가 아직 결혼을 안하고 애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애기 분유값에 기저귀 값이
진짜 사람 잡는다...게다가 애는 말야...
태어 났을 때...딱 그 순간만 이쁘다. 그 이후부터는 나의 행복을 먹고 자라는 기생충이야..."
그렇게 이 십여 분의 시간을
푸념의 옷으로 둔갑한 친구의 자랑질에 지친 나는
단 한 마디의 말로 받아쳤다.
"복에 겨운 새끼..."
생각 같아선 이 녀석을 차단해 버리고 싶다.
전화를 끊고 차단 목록에 친구를 추가 했다 취소 했다를 반복한다.
"아 진짜 열받네...."
오전 업무에 지친 직원들을 위한 단 한 시간의 점심시간.
휴식은 커녕 스트레스만 잔뜩 쌓인 기분이다.
책상 서랍 가장자리에 고이 모셔 둔 담배.
세 달 잘 참았는가 싶었는데 도움은 주지 못 할 망정
내게 스트레스만 가득 안겨 준 친구녀석.
진정한 친구라면 금연을 도와야지 이건 뭐...
라이터를 챙겨 옥상에 오른다.
푸른 하늘 위로 내 뿜는 연기에 내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자는 의미.
딱 한 가치만 피고 다시 금연 모드에 돌입해야 겠다.
들숨~날숨~들숨~날숨...
몇 차례 반복하다 보니 어느 새 담배는 타들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아....아쉽네....하나만 더 필까..."
마음 속에서 요동을 친다.이 순간 이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면 난 또 다시 담배라는 사악한 존재에 중독되 니코틴 타르라는 불량친구와 가까워 질 것이고...
그들이 소개 시켜준 알코올이라는 친구까지 합세해 내 카드는....
"한도 초과입니다."
지난 날을 돌아 보면...휴
안 된다.절대 담배를 피어선 안된다.
담배연기를 하늘에 날려 보냈듯 옥상 밖으로 힘차게 담배를 집어 던진다.
"내가 또 니들의 유혹에 넘어 갈 줄 아냐?"
하지만 이 공허함을 달랠 무언가가 필요하다.
핸드폰 목록을 뒤진다.조금 전 통화한 친구와 함께 중학교 때 부터 교우 관계를 유지해 온
다른 친구의 번호를 누른다.
"여보세요."
조금 전 친구와는 사뭇다른 차분한 음성의 친구.
난 그를 향해 다짜고짜 광분을 토해 낸다.
"야 너 지금 뭐해? 너 병진이한테 전화 온 적 있냐?
아니 이 자식은 툭 하면 나한테 전화해서 푸념질을 늘어 놓는 데
너 이 새끼 예전부터 엄살 떠는 거 알지?
그 때도 잘 들어보면 자랑질 하는 거였잖아.아니 오늘도 또 그 지랄을 하더라고..
내가 그 말들을 주워 담아서 정리해 보니까.
승일아 난 이 나이에 외제차도 끌고 이쁜 와이프 만나서 결혼도 했는 데
금 두꺼비 같은 아들도 있다.
난 결혼 자금도 없어서 허덕이고 있는 데 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수화기 너머로 내 불만을 귀로 담고 있던 친구가 말문을 연다.
"요즘 너네 회사 분위기는 좀 어떠냐?
업종 불황 장난 아니잖아?"
역시 이 친구는 너무도 내 마음을 잘 아는 것 같다.
난 마치 친구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덥썩 문다.
"눈치 코치 봐 가면서 밤 11시까지 일해.
정시 퇴근 시간이 원래부터 이 때였던 것 처럼 말야....
아니 내가 무슨 일하는 기계냐...이러니 내가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지...
그나마 월급이라도 많이 주니까....대기업이 괜히 대기업이냐...
돈으로 사람 꼼짝 못하게 만드는 거지...나도 걱정이다. 이렇게 회사에서 시키는대로만 하니까
나중에 내가 회사에서 잘리거나 퇴직했을 때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있을 지...
내가 그래서 요즘 회사에서 나오는 복지 혜택 찾아 다니면서 억지로 다 누리고 있어.
이게 유일한 내 삶의 낙이라고나 할까..."
"거 좋네...일할 직장도 있고 돈도 많이 벌고..."
뭐?
좋다고?
친구의 짧은 답변이 내 신경을 살포시 어루 만진다.
"장난하냐...좋긴 뭐가 좋아...아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난 이 돈 안 받아도 돼...난 얼마를 받던 간에 내 생활과 내 시간이 필요 하단 말야...
그런데 뭐가 좋냐? 나도 너처럼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
너 하고픈 거 하면서 살고 싶다. 니가 제일 잘 살고 있는 거야."
반대편 친구에게서 아무런 답이 없다.
"여보세요? 전화 끊겼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친구가 입을 연건
내가 통화버튼 종료를 누르려던 찰나였다.
"하여간 너는 예전부터 남의 떡은 돋보기 안경을 쓰고 쳐다 보는데 그 버릇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고치겠구만.."
"뭐? 돋보기? 갑자기 뭔 개 소리야!"
비꼬는 듯한 친구의 말투에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
"누구나 꿈꾸는 대기업에 들어 가서 남들의 두 배정도 되는 월급 받고 있지.
야 너만 야근하고 너만 고생하는 거 아냐. 내 주위에 너 보다 힘들게 일하는 데
돈은 너 반도 안되는 사람도 많아.
그리고....뭐? 내가 부럽다고?
너 다음달 생활비 고민 하면서 살아 본 적 한 번이라도 있냐?
너 대학 다닐 때 부모님한테 거의 백만원 정도 받으면서 다녔지? 니가 돈 없어서 찌질된 적이 있었냐 말이다.내가 하고 싶은 거 해서 부럽다 했지?
나도 너처럼 회사 취직해서 고정적인 수입이 있었으면 좋겠다.
넌 하여튼 욕심이 많아. 사람이 내려 놓을 건 내려 놔야지.."
뚜-뚜-뚜
어이가 없다. 갑자기 열폭한 친구가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난 다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본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익숙한 여자의 교과서 적인 답변이다.
"고객님께서 전화를..."
난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바닥에 후려친다.
그리고 뒷 주머니를 뒤적 거려 본다. 또 다시 찾는 담배.
있을 턱이 있나.
"이러니 내가 담배를 못 끊지...진짜 오늘 개 소 말 가릴 거 없이
사람 열받게 하네..."
그 때 옥상문이 열리며
머리가 하얗게 샌 중년 남성이 들어 온다.
"헉...부..부장님 안녕 하십니까..."
남자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내게 다가 온다.
"아니 신대리 무슨 일 있어?"
"아..아니요... 그냥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어서요..."
담배연기를 깊게 빨아들여 폐 속에 담는 남자.
이내 입을 열어 하얀색 연기를 뿜어낸다.
"그래도 신대리는 젊어서 좋은 거 아닌가....
내 나이되면 열 받아도 그렇게 열을 내면 안돼.....
뒷 목 잡고 쓰러 질 수가 있다고....부럽구만....나도 자네 나이로 돌아 갈수만 있다면...."
옥상에서 내려와
자리에 앉아서도 기분이 풀리질 않는다.
'왜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서만 말 하는거지?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어.
역시 사람은 자기 밖에 모르는 건가...
휴 인간들이란...."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들하고는 상종을 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역시 등잔 밑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