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환 Jan 03. 2018

맥주에서 파이 맛이 난다고?, 포퓨어 브루잉

영국 런던 포퓨어 브루잉 (Fourpure Brewing Co.)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팬이라면 꼭 알아야 하는 기차역이 하나 있다. 바로 런던 킹스크로스 역(King's Cross Station)이다. 주인공 해리포터가 호그와트를 가기 위해서 플랫폼 9와 3/4을 통과하여 호그와트 익스프레스를 탄 곳이다. 전 세계 해리포터 팬들의 사랑을 받는 기차역이자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차역이 아닐까 싶다. 기차역 안에 해리포터 관련 기념품을 파는 샵과 플랫폼 9와 3/4를 재현해 놓은 곳이 있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명소이다.


 바로 이 유명한 킹스크로스 역 옆에 또 하나의 기차역이 있는데 이 기차역은 세인트 판크라스 역(St. Pancras Station)이다. 주로 유로스타 기차를 타고 프랑스나 벨기에를 가는 여행객들이나 영국 중부 도시를 가는 기차를 타는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역이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킹스크로스 역에 있는 해리포터 플랫폼 9와 3/4보다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 있는 쏘스드 마켓(Sourced Market)이 더 매력적인 장소일 것이다. 쏘스드 마켓은 맥주, 와인, 치즈, 커피, 베이커리 등을 파는 평범한 샵이지만 다양한 런던 크래프트 맥주를 보유하고 있어서 기념으로 맥주를 구매하거나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런던 크래프트 맥주를 맛보기에 좋은 장소이다. 더 커넬 (The Kernel), 비버타운 (Beavertown), 브루 바이 넘버 (Brew by Numbers), 파이브 포인트(The Five Points) 등등 여러 종류의 런던 크래프트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친절하게도 옆에서 맥주 재고를 열심히 정리하던 직원이 현재 매장에 어떤 맥주들이 있는지 설명해주었다. 그러면서 한 맥주캔을 가리키더니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맥주라고 하면서 추천해주었다. 그 맥주는 바로 포퓨어 브루잉(Fourpure Brewing Co.)의 주스 박스 씨트러스 아이피에이(Juicebox Citrus IPA) 맥주였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맥주 회사의 맥주였고 씨트러스한 IPA 맥주를 많이 마셔봤기에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다. 구글에 검색해보니 런던 중심부에서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 맥주 회사였다. 홈페이지에서 다음날 브루어리 투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브루어리 투어를 신청했다. 직원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날 따라 비버타운 맥주가 마시고 싶었기 때문에 직원이 추천해준 맥주 대신에 비버타운의 루플로이드 IPA (Beavertown Lupuloid IPA)를 사서 매장에서 마셨다.

 포퓨어 브루잉 (Fourpure Brewing Co.)은 런던 버몬지(Bermondsey) 역 근처 창고에 위치한 크래프트 맥주 회사로 양조장과 탭 룸이 같이 있는 곳이었다. 필자가 소개한 세인트 판크라스 역 쏘스드 마켓에서 포퓨어 브루어리를 간다면 가장 쉬운 방법은 영국 지하철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킹스크로스 역으로 도보 이동 후 노던 라인 (Northern Line) 지하철을 타고 런던 브릿지 (London Bridge) 역에서 하차한다. 런던 브릿지역에서 쥬빌리 라인 (Jubilee Line)으로 환승하고 버몬지 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회사 간판도 크게 없어서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주변도 다 창고이다 보니 찾기가 쉽지가 않다. 포퓨어 브루잉은 2013년에 형제인 톰(Tom)과 댄(Dan)이 설립한 가족 중심 양조장이다. 영국에는 가족이 운영하는 양조장이 꽤 많은데 포퓨어 브루어리도 그중 하나이다. 양조장 이름이 포퓨어(Fourpure)인 이유는 순수하게 맥주의 핵심 4가지 재료만(물, 맥아, 홉, 효모)을 사용한다고 해서 포퓨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부재료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블루베리 퓨레 같은 과일을 이용한 재료나 향신료를 넣어서 만든 맥주도 만들기 때문이다. 양조장은 3600L 규모의 브루하우스, 24개의 발효조, 8개의 숙성탱크, 7000L와 13000L 규모의 BBT (Bright Beer Tank)을 소유하고 있었다. 캔맥주 포장 설비라인을 가지고 있어서 캔맥주 제품도 많이 출시하고 있으며 주변 양조장 대신에 캔맥주 제품을 위탁 포장할 때도 있다고 한다. 꽤 큰 규모를 자랑하는 크래프트 맥주 회사였다.

 브루어리 투어는 매주 금요일 오후 6시와 토요일 오후 1시에 진행된다. 투어 시간은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며 비용은 약 17파운드 (현재 환율 기준으로 약 25000원) 정도이다. 투어를 하는 동안에 1/3 파인트 잔에 총 6 종류의 맥주를 테이스팅 하게 된다. 투어 초반에는 맥주 한 잔 마시면서 포퓨어 브루잉과 맥주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 해준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종류의 맥주를 한 잔 더 마시면서 브루어리 투어가 진행된다. 양조 시설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전반적인 양조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양조장 투어가 끝나면 다시 탭 룸에 와서 남은 4종류의 맥주를 시음한다. 이때는 자유롭게 같이 온 지인과 얘기를 해도 되고 투어를 함께 했던 분들과 같이 술을 마시면 된다. 새로운 맥주를 마실 때마다 투어가이드가 어떤 맥주인지 기본적인 설명을 해주니 설명을 잘 듣고 맥주를 자유롭게 시음하면 된다.


 필자가 포퓨어 브루잉을 방문했을 때가 크리스마스 시즌 전이였다. 운이 좋게도 탭 룸에서만 마실수 있는 크리스마스 시즌 맥주를 마셔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맥주 회사가 크리스마스 시즌 때 시즈널 맥주를 소량 생산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시즌은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 아닐까 생각된다. 이번 연도 크리스마스 시즌 맥주는 크리스마스 민스파이 에일 (Christmas Mince Pie Ale)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겨울이 되면 붕어빵을 먹듯이 영국은 크리스마스 시즌 때가 되면 민스파이를 먹는다. 민스파이는 건포도, 계피, 민스미트 향신료 (mincemeat) 등을 이용해서 만든 파이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주로 마트나 카페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파이이다. 민스파이에 들어가는 재료를 사용해서 만든 맥주가 바로 포퓨어 브루잉의 크리스마스 민스파이 에일이다. 맥주 스타일은 스파이스드 엠버 에일(Spiced Amber Ale)로 6.6% 도수 (ABV)와 쓴맛은 35 IBU정도였다 (IBU는 International Bitterness Unit의 약자로 맥주 쓴맛의 정도로 수치로 표현한 것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쓴맛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건포도, 육두구, 바나나 케이크, 수정과, 계피, 토피, 견과류 향이 특징적이며 적절한 쓴맛이 끝에서 느껴졌던 맥주였다. 맥주를 마시는 건지 파이를 먹는 건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민스파이 맛이 강했던 맥주였다. 같이 투어를 했던 분들도 다들  민스파이 맛이 난다면서 맥주를 마시면서 감탄했다. 가격은 1 파인트 (568 ml)에 6파운드 (현재 환율 기준 9000원) 또는 2/3 파인트 (약 380 ml)에 4파운드였다 (현재 환율 기준 6000원).

 

 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났지만 내년 크리스마스가 벌써부터 기다려지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지닌 크리스마스 민스파이 에일이었다! 만약 맥주와 음식을 페어링 해서 코스요리로 만들다면 디저트로 민스파이랑 민스파이 에일이랑 같이 먹으면 괜찮을 조합 일정도로 좋은 맥주였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크리스마스 민스파이 에일은 크래프트 맥주 회사들이 추구하는 크래프트 정신을 잘 보여준 맥주라고 생각된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맥주를 만들어내는 창의성... 이게 바로 크래프트 맥주 정신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크래프트 맥주 회사들도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서 창의적인 맥주를 많이 만들고 있다. 굳이 멀리 영국까지 가지 않아도 국내 크래프트 맥주 펍에서 다양한 시즈널 맥주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추운 겨울 크래프트 맥주 마시면서 추운 몸을 따스하게 녹여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미친 회사의 미치도록 맛있는 맥주, 브루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