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 더 거너스(The Gunners) 펍
다시 영국 여행을 하게 되었다. 단순히 지금쯤이면 한 번 쉬었다 갈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었고, 영국이라는 나라가 그리웠다. 더 이상 학생 신분도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학생증으로 누리던 혜택도 사라졌다. 영국 석사 생활 때 사용하던 각종 여러 멤버십도 유효기간이 지났다. 필자의 아스날 레드 멤버십도 갱신을 해야 했었다.
오래전부터 준비한 여행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행 경비가 여유롭지 않았다. 다시 영국에 가니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아스날 직관이었다. 2018년 4월 말 프리미어리그는 시즌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치열한 순위 싸움이 한 창이었다. 당연히 직관을 하고 싶었지만 멤버십을 갱신하고 티켓을 사기에는 이미 늦었다. 구매대행이나 암표를 사기에는 여행 경비에서 큰 지출을 해야 했다. 고심 끝에 아스날 직관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영국 여행 때 하기로 했다. 많이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숙소 주변 펍을 지나는데 우연히 축구 중계 예정을 알려주는 팻말을 보았다.
경기장 대신에 펍에서 축구를 보는 것은 어떨까?
많은 영국인들은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직관한다. 직관을 못하는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중계해주는 펍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경기를 즐긴다. 각 펍마다 경기 하루나 이틀 전에 어떤 경기를 중계해줄 것인지 펍 밖의 팻말에 붙여놓는다. 펍에서 즐기는 축구. 영국인들이 축구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자 맥주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이다.
숙소 주변에 축구 경기를 중계해주는 펍이 많았지만, 이왕 펍에서 축구를 즐기기로 한 거 아스날과 관련된 펍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구글에 ‘Best Arsenal Pubs in London’이라고 검색을 하니 아스날 경기를 보기에 좋은 펍을 몇 군데 찾을 수 있었다. 아스날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과 가까운 '더 거너스(The Gunners)' 펍을 가기로 했다. 아스날 구장 주변에 있는 펍이라서 홈 팬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또한 펍 이름도 아스날 구단의 별칭인 거너스(Gunners) 아닌가! 아스날 팬이 경기를 즐기면서 맥주를 마시기에는 딱인 곳이라고 생각했다.
튜브(Tube, 영국의 지하철)를 타고 아스날 역(Arsenal Station)에서 내렸다. 지하철 역에는 이미 아스날 경기를 보러 가는 팬들로 가득 찼었다. 아스날 역 기준으로 오른쪽이 아스날 에미레이츠 구장이라면, 왼쪽으로 쭉 가다 보면 더 거너스 펍이 나온다.
거너스 펍에 도착하니 ‘홈팬만 입장 가능(Home fans only)’ 팻말이 입구에서 반기고 있었다. 다른 구단 팬이 들어가기에는 저 팻말 자체가 주는 압박감이 상당할 듯하다(예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과 사우스햄프턴 팬들끼리 한 번 말 싸움 하는 것을 우연히 펍에서 봤는데 살벌했다). 펍의 내부는 말 그대로 아스날을 위한 펍이었다. 아스날 역대 팀들의 사진, 아스날 선수들의 친필 싸인이 담긴 아스날 유니폼 등등. 마치 펍이 아스날의 역사를 함께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펍에 있는 팬들도 최신 유니폼을 입는 팬보다 예전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더 많았다. 다들 아스날 골수팬들 같았다. 뭔가 영국에 온 이방인에서 아스날 팬들만 오는 모임에 온 인싸가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들 아스날을 응원하는 방법은 달랐다. 펍에서 아스날 응원가를 유도하는 할아버지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보는 젊은 친구들, 아스날을 응원하러 온 가족들, 나와 같은 여행객들도 몇몇 보였다.
펍의 맥주 리스트는 대부분 라거 었다. 칼스버거, 산미구엘, 포스터스 등등. 영국에서 칼링(Carling) 라거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라거 중 하나인 포스터스(Forster's) 라거 한 잔 주문 후 경기를 보면서 마셨다. 이날 따라 날이 유독 좋았다. 비가 많이 내리는 영국이지만 이날은 햇살이 따스했다. 펍 실내보다는 따스한 햇살을 즐기고 싶었다. 이 날 경기는 아스날과 웨스트햄 경기 었다. 우연인 걸까? 2017년 이 맘쯤 아스날 홈구장에서 아스날과 웨스트햄의 경기를 직관했었는데. 경기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갑자기 큰 함성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TV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멀리서 느껴지는 듯한 함성소리. 정확히 3초 뒤에 TV에서 아스날이 득점을 올렸다. 3초 빠르게 결과를 스포 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미칠 듯이 큰 소리는 아스날이 득점을 했을 경우이고, 탄식이 살짝 포함되었고 원정 팬들의 환호소리가 섞인 작은 소리가 들린다면 원정팀이 득점을 한 경우 었다. 결과는 아스날의 4:1 대승이었다!
아스날 경기를 직관하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지만, 펍에서 축구를 즐기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축구팬이 아니지만 영국 축구를 한 번 즐겨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 바로 '펍에서 즐기는 축구'이다. 여행 중 쉬어갈 겸 잠시 펍에 들려서 축구 경기를 보고 가면 어떨까? 5파운드(7500원)만 있다면 영국인들이 축구를 즐기는 방법을 경험할 수 있고, 맥주도 한 잔 즐길 수 있다(영국 런던은 맥주 1 pint가 보통 5파운드 정도 한다.)
The Gunners Pub
Address: 204 Blackstock Rd, Highbury, London N5 1EN
가까운 지하철 역: 아스날 역(Arsenal St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