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환 Sep 13. 2019

나의 프리미어리그 상상은 현실 되지 않았다, 아스날FC

아스날 FC(Arsenal FC)

  주말에 시간이 남으면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놓고 딴짓을 한다. 뭐라도 안 들으면 귀가 심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를 하거나 인터넷 검색을 할 때 주로 영화를 배경음악처럼 틀어놓는다. 그중 하나는 2013년에 개봉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이다. 주인공 월터 미터(Walter Mitty)는 짝사랑하는 여자의 프로필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조차 많은 고민을 하는 용기가 다소 부족한 인물이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로 떠나 상상을 한다. 월터의 상상은 비현실적인 상상이 아니라 우리가 한 번쯤 상상해봤을 나름 친근한 상상이다. 꼰대 같은 상사에게 사이다 발언을 하고, 짝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멋지고 쿨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고 탐험하는 상상을 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월터의 상상을 공감하고 응원하게 된다.

벤 스틸러(Ben Stiller)와 크리스틴 위그(Kristen Wiig) 주연의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영화를 보는 사람마다 월터의 상상에 공감하는 부분이 다를 것이다. 직장에서 꼰대 같은 상사에게 시달리면 월터가 상사에게 사이다 발언을 하거나 시원하게 한 판 붙는 상상에 더 공감이 갈 것이다. 짝사랑을 하거나 썸을 탄다면 월터가 좋아하는 여성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상상에 좀 더 공감이 될 것이다. 이 두 가지의 경우보다 개인적으로 더 공감이 갔던 부분은 월터가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상상이었다. 여행 상상은 생각하는 것으로도 행복하지만, 때로는 용기가 아주 필요한 상상일 수도 있다. 편안하고 익숙한 세계에서 떠나 새로운 세계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용기를 얻기 위해서 구체적인 상상을 하곤 한다. 구체적인 상상일수록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영국 유학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구체적인 영국 생활 상상을 많이 했었다.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꽂고 멍 때리면서 상상을 하거나,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자기 전에 천장을 보면서 상상을 하면서 잠에 들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프리미어리그 직관이었다. 나의 상상은 단순히 '프리미어리그 직관'이 아니었다.


바로,

아스날(Arsenal FC)의 홈구장인 에미레이츠 스타디움(Emirates Stadium)에서 경기를 직관하면서 영국 맥주 마시기


프리미어리그(Premier League)

 스페인의 라리가, 독일의 분데스리가, 그리고 이탈리아의 세리에 A와 함께 전 세계를 대표하는 축구 리그 중 하나가 바로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이다. 프리미어리그는 영국 1부 리그로 총 20개 팀이 우승을 위해 치열하게 순위 싸움을 한다.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 화려한 기술, 거친 몸싸움, 화끈한 응원 열기, 치열한 1위 경쟁과 강등권 순위 싸움은 세계의 많은 축구팬들을 사로잡는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리그도 당연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이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 선수가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명문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 FC)에 입단하면서부터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프리미어리그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 이후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영국 프리미어리그 입단하면서 사람들은 더욱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영국 여행 버킷리스트에  '프리미어리그 직관'은 단골로 포함되는 리스트가 되었다. 국내에도 프리미어리그 팀을 응원하는 팬층이 두텁다. 특히 빅 6(맨시티, 리버풀, 아스날, 토트넘, 맨유, 첼시)의 팬층이 매우 많으며, 빅 6 이외의 팀을 응원하는 축구팬들도 많다.


사스날도 괜찮아, 난 아스날 팬이다.

 아스날(Arsenal FC)은 1886년 후반 런던의 울위치 아스날 병기공장(Woolwich Arsenal Armanent Factory)의 노동자들이 다이알 스퀘어(Dial Square)라는 팀을 만들면서 시작되었고, 2003-04 시즌에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49경기 무패 우승을 달성한 팀이다. 흔히 아스날 팬이면 프리미어리그를 잘 챙겨보지 않는 사람도 '사스날'이라고 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스날이 4위를 많이 해서 사스날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아스날의 4위 수렴은 과학이라고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2005-06 시즌 이후로 4위만 6번이나 하였다. 2018-19 시즌은 5위였다). 개인적으로 아스날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사스날' 때문이다. 장기간 꾸준히 높은 성적을 내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된다. 높은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다 보면 언제 가는 다시 우승을 하지 않겠는가? 그 외에도 팀을 오랫동안 지휘한 아르센 벵거(1996년 부터 2018년까지 아스날을 이끌었던 명장) 감독과 여러 스타플레이어들의 화려한 플레이 때문에 아스날을 좋아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아스날의 경기를 보기 위해 홈 경기장인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입성하고, 열광적인 서포터스의 응원소리를 듣고, 골을 넣으면 날아갈듯한 함성을 함께 지르고, 경기를 보며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는 상상. 월터처럼 구체적인 상상을 해본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아스날 FC의 홈구장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생각보다 복잡한 티켓팅 - 멤버십(Membership)

  상상을 현실로 이루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항상 예상치 못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그 난관은 바로 티켓팅. 국내에서 인천 SK 와이번즈(프로야구)나 인천 유나이티드(K리그) 경기를 보러 갈 때처럼 티켓을 구매하면 되겠지 생각했지만, 미리 알아보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우선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기 티켓을 구매하는 방법은 크게 4가지 방법이 있다.  현장 구매, 구매대행, 암표, 그리고 멤버십 가입 후에 티켓을 구매하는 방법. 영국 축구 구단들은 멤버십(Membership)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멤버십을 구매한 회원에게 먼저 티켓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그러다 보니 멤버십이 없는 고객은 맨 나중에 남은 티켓을 사야 하며, 유명한 구단의 경기는 대부분 티켓이 매진되기 때문에 멤버십이 없으면 사실상 티켓을 구하기 어렵다. 멤버십도 여러 등급이 있지만 제일 낮은 등급의 멤버십만 구매해도 충분히 괜찮은 자리를 구매할 수 있다. 아스날 구단의 경우 가장 낮은 등급의 멤버십은 레드 멤버십(Red Membership)이며, 가격은 약 5만 원 정도 한다(파운드 기준 £29-36). 이렇게 멤버십을 구입하고 나면 아스날 구단에서 멤버십 카드와 멤버십 패키지를 보내준다. 멤버십 패키지에는 구단 책자와 목도리 같은 기념품을 담아서 보내준다. 영국 현지에서 온라인으로 구매를 하면 1주일 정도면 도착하지만, 국내에서 주문한다면 약 1달 정도 시간이 소요가 된다. 프리미어리그 직관을 할 계획이라면 미리 멤버십을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레드 멤버십으로 아스날 홈 경기장에서 열리는 2017년 4월 5일에 열렸던 아스날 vs 웨스트햄 경기를 약 7만 5천 원(파운드 기준 £50파운드)에 구매를 했다.

2016-17 시즌 아스날 구장에서 판매했던 칼스버그 맥주

상상은 현실 되지 않았다

 티켓도 구매를 다 했으니 이제 즐기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아스날 구장으로 가는 길은 이미 홈팬들로 거리가 북적이었으면 빨간 물결로 가득 찼다. 팬들은 이미 주변 펍에서 맥주 한 잔을 하고 경기장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다들 맥주 한 잔을 마셔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거리에서 마지막 암표를 파는 상인들과 아스날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 혹시나 일어날 일촉즉발의 상황에 대비해 경찰들도 있었다. 구장에 티켓을 찍고 들어가는 순간 경기장에 들어서는 선수들처럼 긴장되고 흥분되었다. 이제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순간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이 왔다. 자 이제 구체적인 상상을 현실로 이루어줄 맥주만 사면 모든 게 완벽하게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영국은 맥주의 나라이자 축구 종가의 나라라 영국 사람들은 영국 맥주를 마시면서 축구를 보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근데 아스날 구장에서 판매하는 맥주는 영국 맥주가 아닌 칼스버그 맥주였다. 영국 맥주가 아니지만 칼스버그면 어떠냐. 칼스버그면 훌륭한 라거이니 그래도 칼스버그와 함께 재미있게 경기를 즐기면 되겠지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2017년 당시에 아스날은 칼스버그와 파트너십을 맺어서 칼스버그 맥주를 판매했지만, 2019-20 시즌부터는 영국 런던 캠든 지역에 있는 캠든 타운 브루어리(Camden Town Brewery)가 아스날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맥주를 마시면서 구단 내부를 좀 돌아다니다가 경기를 보러 좌석에 가서 앉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진행요원이 맥주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맥주는 다 마시고 들어와야 돼"

 

 경기가 곧 시작하는데 좀 전에 구매한 맥주를 다 마시고 들어오라니...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순간적으로 손에 들고 있는 맥주를 바라보면서 멍을 때렸다. 나의 상상이 현실로 되기 바로 직전에 꿈꿔왔던 상상이 무너져버렸다. 어쩔 수 없이 맥주를 다 마시고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TV로 프리미어리그를 볼 때마다 맥주를 마시면서 경기를 보는 관중을 못 본 거 같기도 했다. 환호하는 관중과 판정에 불복해서 화를 내거나 야유를 보내는 관중의 모습만 기억이 났고, 그들의 손에는 맥주가 없었던 거 같다. 경기를 즐겁게 즐기고 나중에 찾아보니 영국은 1985년부터 좌석에서 서포터즈의 술 소비를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즉, 구장안에서 맥주를 판매하지만, 좌석에서 맥주 마시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맥주를 마시고 싶은 서포터스는 경기 시작하기 전이나 하프타임에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물론 경기중에 좌석에서 잠시 떠나 맥주를 구매해서 마실 수 있다. 일부 구단들과 서포터스들은 알코올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법이 쉽게 바뀔 거 같지는 않다. 그러니 프리미어리그 직관시 좌석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경기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두자. 안 그러면 맥주를 빠르게 마셔야 하는 상황이 오거나 맥주를 마시고 들어가느라 멋진 골이 들어가는 장면을 놓칠 수도 있다.


 아스날 구장에서 상상은 완벽히 현실화되지 못했지만, 영국 프리미어리그라는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열렬한 응원, 판정해 불만족해 다양한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는 서포터스, 화려한 경기력, 경기 시작 전에 마신 칼스버그 맥주, 그리고 좌석에서 맥주를 마실 수 없다는 새로운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글쓰기를 잠시 멈추고 내년 2020-21 시즌 아스날과 토트넘의 북런던 더비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한다. 손에는 캠든 타운 맥주를 들고 있겠지. 물론 경기 시작 전에 말이다.


 월터처럼 또 상상을 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골 펍에서 찾은 사소한 일탈, 디 오터 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