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sign Jul 27. 2016

2층 할아버지

나의 간사함과 편협함/호감과 비호감 사이

새 집으로 이사 오면서 신경 썼던 부분 중 하나는 이웃들이었다. 외국인들을 싫어하는 이탈리아 사람들도 있지 않겠는가. 그 전 집주인에게 물어보니 다행히도 우리뿐 아니라 다른 국적의 사람들도 이 단지에 살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이탈리아 주민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라 했다.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입주 전 인테리어를 하던 중이었다. 그 전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말인즉슨, 2층 할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는데 우리 주차장 차고 문에 붙은 쪽지가 바람에 날려갈까 싶어 본인이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고마운 이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 집주인도 이렇게 이웃들이 친절하고 좋다며 웃으며 통화를 끊었다. 짐도 조금 더 옮길 겸 차고에 가 보았다. 누군가 차고 문을 제대로 박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전해 들은 대로 2층으로 올라갔다. 벨을 누르고 조금 기다리니 거동이 살짝 불편한 할아버지가 나와 쪽지를 전해주었다. 쪽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앞 차고에서 차를 빼다가 차고 문을 들이박았으니,  수리를 위해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차고 문을 망가뜨리고 그냥 토끼지 않아 다행이네...라고 생각하며 할아버지께 쪽지를 잘 보관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세 명의 동양인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뜬금없이 집구경을 시켜주셨다. 집을 다 본 후, 자리에 앉았다. 본인의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어주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나의 전화번호도 남기라고 했다. 번호를 주고받으며 이야기 꽃이 피어났다. 할아버지의 자기소개가 시작되었다. 본인은 혼자 살고 있으며, 9년 전 이혼했고, 슬하에 자식은 없고, 여자 친구가 있다고 하였다. 여자 친구는 그녀의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그녀가 원하면 언제든지 자신의 집으로 온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도 간단히 우리 소개를 하고, 아직 싸야 할 짐이 있으니 가보겠다고 했다. 그는 헤어지기 전 집 안을 둘러보더니 맥주를 손에 쥐어 주셨다. 정이 많은 할아버지인가 보다. 이 단지 사람들이 교양이 있다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차고 문도 무사히 잘 고치고 이삿짐도 얼추 정리가 되었다. 그동안 이층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와인도 주시고, 괜스레 올라오셔서 우리 집 공사 현황도 체크하시고, 손수 구운 쿠키도 가져다주셨다. 넘치는 관심에 감사했지만 이상하게 조금씩 부담스러운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한 날은 친구들과 만남을 가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리조또를 만들었으니 나중에 가져가서 먹으라는 것이다. 알겠다고 하고 남편과 저녁 시간에 맞춰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세 번의 리조또를 만들어주시고, 제노베제 소스(바질에 올리브, 파르미쟈노, 소금 그리고 잣을 갈아서 만든 스파게티 소스) 등을 주셨다. 항상 주고 난 뒤에는 하루나 이틀 뒤 다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어땠는지 확인하신다. 받기만 하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진 우리는 꿀에 노춀라(헤이즐넛) 넣은 것을 선물로 드렸다. 어느 날은 낮에 벨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현관 앞에 앵두 몇 개를  든 할아버지가 서 계신다. 주말에 나가면서 어느 지역에서 딴 앵두라며. 잠깐 들어가 차라도 마시겠냐고 여쭤보니, 현관문을 잠그지 않았다며 바로 내려가신다. 어느 일요일 오후 교회를 다녀온 뒤 신나게 낮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벨을 누른다. 남편이 나갔다. 할아버지는 로즈메리 나무줄기를 주시며 가셨다. 이 분은 우리와 활발한 교류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너무 닫힌 마음인가 보다. 그러나 부담스러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해 남편을 부르거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드리는 일은 기쁜 마음으로 해드렸다. 무언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받는 것보다 나은 느낌이었다. 


한 번은 남편과 산책을 하며 이층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솔직한 나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전화 와서 음식 맛이 어땠는지 매번 물어보는 것도 듣기 싫고, 그분이 만든 리조또도 입맛에 맞지 않아 버리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매번 연기하며 맛있다고 하는 것도 싫다. 또 얼마나 성격이 이상하면 나이 들어 이혼을 했겠느냐. 매번 말할 때마다 '네가 원하면'이라고 말하는  것도 듣기 싫다. 난 단 한 번도 그분에게 뭘 원한 적이 없는데, 그런 식의 조건을 붙이는 말투가 짜증을 유발한다고 말이다. 뱉어놓고 나니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졌다. 처음엔 그분의 관심이 고마웠는데 어느 순간 난 그분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호감에서 비호감으로 넘어가는 건 이렇게 쉬운 거구나. 내가 그분의 인생을 어찌 안다고 함부로 성격이 얼마나 나빴으면 황혼이혼을 했냐는 둥의 소리를 하는 걸까. 정말 화장실 갈 때와 나갈 때의 마음이 이렇게 다른 건가 싶었다. 반성은 되지만 아직 주동적으로 그분을 마주하고 싶진 않다. 그리고 남편도 자기 없을 땐 일부러 만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다인이에게 또 우리에게 좋은 이웃집 할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다인이의 작은 발을 만지며 축복이라며 말한 이웃집 할아버지. 여자 친구가 있다지만 혼자 살고 거동도 불편하신 외로운 어른을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아직은 부담스럽다. 부담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한국의 맛이라며 전이라도 부쳐서 한번 가져다 드려야겠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나의 속도대로 그분께 조금씩 마음을 열도록 노력해보겠다.

작가의 이전글 무슨 소식 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