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sign Jul 29. 2016

즐거운 아내 vs 섹시한 아내

나는 어떤 아내가 될 것인가?

우리 가족은 위치적 굉장히 글로벌하게 산다. 첫째 언니는 중국 북경에 둘째 언니는 한국에 나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다. 우리 엄마 왈 딸 셋이 많은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한 개도 안 많다며 섭섭해하셨다. 맞는 말이다. 딸 하나인 나는 벌써부터 마음이 다 졸여진다. 다인이 백일 무렵 북경에 볼 일이 생겼다. 내 일정에 맞춰 우리 세 자매는 북경 큰언니 집에서 재회했다. 한 곳에 다 같이 모인 것이 얼마만인지. 감회가 새로웠다. 

 


우선 우리 자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보겠다.

울 첫째 언니는 슬하에 남자아이 둘을 두고 있고, 언니를 만난 것이 자기 인생의 보상이라며 생각하는 독일 남편과 살고 있다. 머리가 똑똑해서 석사과정까지 밟았으나 중간에 학업을 포기하고 지금의 가정을 이루었다. 그 뒤로 가정주부로만 쭉 지내고 있다가 우연히 내가 소개하여준 영어 과외를 계기로 본격적인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본인의 영어 실력이 워낙에 탄탄하기도 했지만, 아들 둘을 키우면서 스스로 터득한 아이들과 학부모 심리를 꿰뚫는 명쾌함으로 지금은 북경 영어 과외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수입을 거두고 있다. 가정주부로 오랜 시간을 지내다 세상 밖으로 나올 때의 두려움과 고민 그리고 자신감 없던 언니의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지금은 노하우 있는 선생님으로서의 여유로운 포스가 느껴진다. 


울 둘째 언니는 공부엔 흥미가 없었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고, 미안한 말이지만 외국어도 잼뱅이다. 그러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대학 졸업 후 포크 아트를 배웠고 급기야 나중엔 문화센터 원장까지 되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엔 문화센터 잠실 지부를 운영하였다. 언니가 원장으로 있는 동안 매출은 거의 항상 전국 2등 안에 들었다. 인생은 아이러니해서 공부를 가장 좋아하지 않던 우리 둘째 언니는 우리 중 가장 학력이 높은 남자와 결혼했고, 항상 사람들 비위를 잘 맞출 것 같은 이미지임에도 자기 할 말과 따질 것은 확실히 따지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 게임을 좋아하고 항상 놀고 싶어 해 지친 육아에도 잠을 포기하며 티브이 시청을 한다. 인터넷 쇼핑 검색 능력이 무척 탁월해 한국에서 필요한 것은 언니를 통해서 믿고 주문한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아 힘든 시기를 거치다 시술로 한 번에 쌍둥이를 낳았다. 둘째 언니를 보면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는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는 누구 하나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지 않지만, 다행히 기술의 발달로 거의 매일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돈독한 자매애를 자랑한다. 서로 가진 기질은 다 다르지만 지금은 가정을 이룬 아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오랜만에 북경 큰 언니 집에 모임을 가진 우리는 큰 언니의 수업이 끝난 후 가벼운 술자리를 가졌다. 예전부터 큰 언니 혼자만 술이 셌다. 웬만한 남자와 겨루어도 끄떡없다. 둘째 언니는 술이 취하면 방언이 터져 외국어가 팍팍 튀어나온다. 내가 제일 재미없다. 얼굴이 빨개지고 미친 듯 잠만 온다. 오히려 나는 술에 안 취하고 놀 때가 더 취한 것 같은 사람이다. 늦은 시간 와인과 안주를 준비하면서 큰 언니가  '여자는 섹시한 아내가 될지 즐거운 아내가 될지 선택해야 해. 두 개 다 할 순 없어. 난 즐거운 아내가 되기로 선택했어.'라고 쥐포에 마요네즈를 발라 먹으며 말했다. 아이를 출산한 후 안타깝게도 체중 조절에 실패한 큰 언니는 그래도 왕년엔 '왕징 교회의 송혜교'란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었다. 순각 피득 웃음이 났다. 그러나 생각해 볼수록 맞는 말이다. 일하고 육아하고 그리고 남편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 같은 아내가 되려면 살 관리할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체질적으로 마르면 모를까, 그렇다고 안주 준비만 하고 입에도 가져가지 않는다면 어디 같이 뭐 먹을 맛이나 나겠는가. 연예인처럼 직업이 자기 가꾸는 사람이면 모를까 일상에 쫓기는 우리 같은 평민(?)들은 어쩌면 모두를 갖겠다는 것은 욕심일 수 있다. 물론 외모를 잘 유지하는 누군가를 디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관리를 위해 날마다 전쟁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엔 막연히 친구 같은 아내, 삶의 동반자, 서로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환상적인 파트너가 되어야지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 후 나와 남편의 관계에만 집중하며 살 수 있지 못함을 깨달았다. 슈퍼맘이 되어야 한다며 우리도 모르게 만들어내는 여성의 이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었다. 

북경에서 돌아온 후, 남편에게 물었다. 섹시한 아내와 즐거운 아내. 내가 둘 중 어느 것을 택하면 좋겠냐고. 큰 언니와 안주를 신나게 먹으며 한 이야기라고 하자 남편도 피식 웃는다. 싱거운 자매들의 대화라고 여긴 것일까? 그는 그 어떤 것이라도 그게 나라면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희망한다면 살이 많이 찌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제 선택은 내게 남겨졌다. 난 어떤 아내가 되고 싶은가. 나는 슈퍼맘은 되기 글렀다. 그리고 그것이 내 이상향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꼭 지켜내고 싶다. 나보다 내 남편 내 자식이 나보다 먼저 될 때가 많았다. 물건을 사도 내 것보다는 가족의 것이 먼저가 될 때가 많고 내가 힘든 것이 가족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편했다. 많은 아내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희생정신이 강한 우리 여자들은 나보다는 가족이 먼저 되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희생보다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 돼야 한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그 누구의 아내, 그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이라는 오리진을 지켜내는 사람. 나는 그런 아내가 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2층 할아버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