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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Aug 03. 2016

성 프란체스코를 만나러 왔어요.

아시시에서 주차하기

아시시(Assisi)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다인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뻔질나게 돌아다녔던 우리는, 휴가철에는 거리가 좀 되는 도시관광은 자동차로 다니며 이탈리아가 우리에게 허락한 아름다움을 맘껏 느끼고 다녔다. 아시시도 그중 하나였다. 산 지미냐노, 볼테라 등 중세도시가 흔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이탈리아. 아시시도 아주 아주 유명한 중세도시 중 하나이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 맞다면 성 프란체스코의 고향이요, 이탈리아식으로 발음하면 약간 부끄러운 조토(Giotto 화가, '조또'라고 발음된다)의 프레스코화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아시시는 성곽과 삐죽빼죽한 탑들로 가득한 다른 중세도시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보통의 중세도시들은 벽돌색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곳은 내가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모로코의 느낌이 날 것 같은 곳이다. 밝은 베이지 색들의 건물들과 아치형 기둥들, 동글동글한 느낌의 건물들. 거리는 너무 깨끗했고 날씨도 좋아서 이미 타국임에도 불구하고 이국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차를 타고 온 우리는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선 먼저 주차장을 쟁취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 도시의 이름값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도시에 들어가기 전 모든 유료 주장들은 정말 단 한 자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0이었다. 아시시의 역사 중심(historical center)에 들어가기 위해 빙빙 돌던 우리는 주차를 하지 못해 이 여행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엄청난 벌금을 물 것을 감수하고 아무 곳에나 주차를 하거나 아니면 저~ 밑으로 내려가 주차하고 등산을 하고 올라와야 할 판이었다. 나는 거의 매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주차공간 미확보는 즉 아시시 여행 포기라는 상황 아래, 머리가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은 것은 남편이니 그가 알아서 하리라. 그러나 이 주차공간 확보라는 문제 때문에 지금은 이 여행이 더없이 기억에 남게 되었다.

남편은 일단 주차장이라고 쓰인 곳은 더 이상 보지 않고 바로 아시시의 역사 중심으로 향해 핸들을 틀었다. 그리고 길 한편에 'Privata' ('개인의 ' 란 뜻)라고 버젓이 쓰여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고 보니 수녀원처럼 보이는 곳이 나왔다. 나는 어쩌려고 이 곳에 들어왔냐고 그에게 물었다. 무법자처럼 들어선 우리 차를 한 수녀가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은 당황하지 않고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그는 당당히 그 수녀원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마법 같은 일이!!! 우리는 돈 한 푼 내지 않고, 아시시 역사 중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한 것이다. 눈이 휘둥그레진 나를 보며 남편이 씩 미소를 지어준다. 어찌 된 일이냐고 조급하게 물어봤다. 남편 왈 수녀가 다가와 'Privata'라 쓰인 팻말을 못 봤냐며 핀잔을 줬으나 당황하지 않고 밀라노에서부터 이곳까지 성 프란체스코를 만나러 달려왔다고 하자 저쪽에 주차하라고 손짓으로 쓱 가리켰다 한다. 아! 연륜이란 이래서 무서운 거구나. 다시 한 번 느낀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엄청나게 언어를 잘할 필요는 없다. 우선 용감해야 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거나 상대방이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평소에 쪼잘쪼잘 잔소리를 잘하는 나도 이럴 땐 남편이 듬직하고 믿음직하다. 이래서 부부인가 보다. 나는 얼굴에 철판 깔며 가격을 잘 흥정하고 그는 내가 당황할 때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니 말이다. 주차 걱정 없이 여유롭게 아시시를 구경한 우리. 성 프란체스코가 까만 눈의 두 동양인에게 특별한 은총을 부어준 여행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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