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sign Jul 26. 2016

무슨 소식 있지?

기다리던 친구의 임신소식

아기를 키우는 엄마라 그런지 브런치에 아기에 대한 글들이 많다. 밖에서 보면 다 같아 보이는 양육 이야기, 아기 이야기. 그러나 막상 부모가 되니 흔해 보이는 이야기들도 내 아이 이야기라면 특별하게 느끼는 게 또 엄마인가 보다. 다인이가 우리 품에 오길 2년 동안 기다렸다. 다른 불임 부부들에 비하면 길다고 할 수 없는 그러나 아기를 기다리는 입장에선 한 달도 몇 년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다인이를 기다리는 시기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지인들의 임신 소식이었다. 이상하리만큼 많은 임신 소식들. 사실 생각해보면 이상하지도 않다. 내 나이 때 전후로 결혼하는 커플들이 많으니 임신 소식도 확률적으로 따지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주변에 10쌍이 넘게 차례차례 임신했을 땐 솔직히 오랜만에 연락 오는 친구들 소식이 임신 소식이면 가끔 괴롭기도 했었다. 

내게는 북경에서부터 알게 된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인 친구가 있다. 처음 만날 땐 소녀 같던 그녀가 점점 당찬 여자로서 변하며 사회의 한 일원이 되어 톡톡히 자신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봤을 땐 내심 부럽기도 했었다. 졸업 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북경에서 일을 찾았고,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캐나다 어학연수 후 한국과 홍콩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비록 대학교가 되어서 알게 된 친구이지만 학창 시절이고 유학생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우리는 사심 없이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듯하다. 자주는 아니지만 졸업 후에도 서로의 생사는 확실히 알아가며 언제 이야기하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허물없는 친구사이. 그러던 그녀도 어느 날 내게 임신 소식을 알려왔다. 이제 6주이며 곧 부모가 될 것 같다던 그녀의 톡. 임신을 기다리던 같은 처지였을 때는 서로 파이팅하자는 내용이 위주였지만, 적어도 자신은 이제 파이팅은 그만이라는 통보를 해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 친구도 아기를 기다린 것을 알기에 마음속 깊이 축하하였지만, 스멀스멀 질투의 마음도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며칠 후 나는 그녀가 뱃속에서 아기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아 유산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후로도 한 번 더 유산 소식을 들어야 했다. 그러면서 잠시라도 친구의 임신을 질투했던 나의 좁은 마음이 얼마나 부끄러워졌던지. 그렇게 반성하던 중 나에게도 아가가 찾아왔다. 나는 그 친구에게 바로 나의 임신 소식을 알릴 수 없었다. 그 친구도 나와 같이 기쁘지만 마음 아플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그 친구는 회사를 그만두고 임신을 준비했다. 가끔 다인이 이야기를 물어보긴 했지만, 난 되도록 아기 이야기는 피하고 싶었다. 물론 다인이 사진도 더 많이 보내주며, 나의 삶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 때도 있었지만 참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느 날은 내게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아기도 생기도 않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으니 슬슬 일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거기도 부부 사이가 좋아서 아기가 없더라도 행복하게 살 듯했지만, 아기 기다리는 여자 입장에서는 사실 포기가 힘들다. 이번 연도에도 안되면 마음도 추스를 겸 밀라노로 여행 오기로 약속했다. 가끔 생각나 연락하면 상황이 달라진 우리 사이에 어색한 대화가 오갔고, 난 그냥 그녀의 소식을 기다리기로 하고, 더 이상 톡을 날리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의 대문 글이 'ing'로 바뀌어 있었다. 감이 오긴 했지만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나 톡이 왔다. 난 다짜고짜 '너 무슨 소식 있어?'라고 물었고, 대답은 'YES! 긍정' 이였다. 


그 친구의 임신을 위해 난 눈물 흘려가며 기도했었다. 내 기도 때문에 임신한 것도 아닐 것이고, 눈물 나는 우정 때문도 하늘이 감동하여 임신된 것도 아닐 테지만, 그 친구의 마음을 조금은 알기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런 눈물이었다. 나 역시 임신은 되는데 아기가 일정기간 후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맞닥들일 때 어떤 기분인지 상상할 수 없다. 감당하기 무거운 일일 듯하다. 그래서 눈물이 났었나 보다. 기독교인은 이런 경우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하지만, 모두가 기독교인은 아니므로 그냥 '지성이면 감천' 정도로 해보자. 하나도 아닌 이란성 쌍둥이란다. 기쁨 두배다. 시술을 통해 가진 아이들이라지만 무슨 상관인가. 나는 우리 '건이, 강이'가 엄마 뱃속에서 부모의 바람대로 잘 자랄 것을 믿는다. 해외에 있는 나는 아이 하나 더 낳야 되지 않을까 고민하고, 딸아이 한 명 만을 바랐던 내 친구는 동시에 아들 둘을 낳게 된다. 브라보! 계획된 대로 흐르지 않아 가끔은 더 멋진 인생이다. 그리고 아이를 바라는 동안 가지지 못했던 것도 일종의 축복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다인이를 바로 가졌더라도 귀하고 감사히 키우고 있겠지만, 난 바로 엄마가 되기엔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걸 하늘은 아신 거다. 그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난 아이를 위해 조금의 희생을 할 준비가 된 엄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 기도를 그냥 땅으로 버리지 않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 소식을 안정기에 들어서기까지 참고 난 뒤 말해준 내 친구에게 고맙다. 이 소식을 얼마나 남들에게 말하고 싶었고 동시에 얼마나 또 조심했을까... 그 마음이 짠하다. 이제 그 친구의 건강한 출산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부모도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 거다. 아기를 기다리는 여자 또 남자들에게 파이팅을 외쳐주고 싶은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이 우유가 날 미치게 하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