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sign Jul 23. 2016

이 우유가 날 미치게 하네

Lidl의 커피우유

에스프레소의 나라, 이탈리아! 이탈리아에 와서 들인 습관 중 하나는 고속도로를 타면 꼭 휴게소에 들러 마키아또를 마신다는 것이다. 운전자의 잠도 깨고 몸도 풀 겸 마시는 커피 한잔에 다시 남은 길을 갈 에너지를 얻는다. 커피 값이 저렴해 하루에 두세 잔씩 마셔도 가게에 무리가 없다. 밥 값보다 훨~씬 싼 커피. 한국의 후덜덜한 커피 값을 생각하면 커피 가격이 원래 이래야 정상 아닌가 싶다. 


이탈리아엔 동네마다 Bar가 하나씩은 꼭 있다. 아침을 Bar에서 간단하게 카푸치노와 브리오쉐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점심이나 저녁을 먹은 후에 입가심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많다. 식사 후에는 카푸치노같이 우유가 들어가 무거운 커피는 잘 마시지 않는다.

또 혹자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커피가 맛있는 이유가 커피 기계를 워낙 많이 사용해 기계의 압력이 빡 들어가 있어서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다른 곳의 커피보다 차분한 느낌의 맛이 나는 것도 같다. 커피 마시기를 좋아하지만 전문성은 하나도 갖춰지지 않은 나의 입맛이니 신빙성은 없다. 가끔은 한국의 달달한 커피가 그리울 때도 있다. 한국 커피 믹스가 비싼 편이어서 사 먹진 않지만 가끔 마실 기회가 생기는데 그때 마시게 되는 믹스커피는 말 그대로 꿀맛이다. ^^


이제 중간 여름에 치달았다. 5월 말부터 이래적으로 더워진 밀라노 날씨. 시원한 음료수와 물이 수시로 먹히는 시기이다. 우리 가족은 고기와 생선을 미리 사서 손질해 쟁여놓는 스타일이어서 자잘한 장은 거의 매주 금요일에 한번 본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한국의 커피우유 맛이 나는 커피 우유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흰 우유는 좋아하지 않는다. 흰 우유는 가끔 음식을 만들 때나 커피에 넣어먹는 것을 때를 제외하곤 잘 사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에 있을 때도 서울우유에서 나오는 피라미드 포장의 커피 우유를 참 맛나게 마셨다. 한국을 떠나온지도 이십 년이 다 되어가니 지금은 더 다양하고 맛있는 커피 우유가 판매되고 있을 테지만, 내 기억 속엔 서울우유의 커피우유야 말로 추억의 맛이다. 이 곳 사람들은 아메리카노도 잘 마시지 않아 커피맛 우유가 있어도 얼마나 맛있겠나 싶어 잘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리들(Lidl, 독일계 슈퍼마켓 이름)에서 파는 커피 우유 값이 0.79 유로밖에 안 해 시험 삼아 마셔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이 커피 우유는 어릴 적 마셨던 서울우유의 커피 우유와 비슷했다. 사실 좀 덜 달아 내 입맛을 딱 저격했다. 몇 개 더 살걸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어차피 다음 주에도 장을 볼 것이므로 냉정히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다른 때와 달리 기다려진 장보기.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집으며 이번엔 좀 많이 사놔야지 하는 마음으로 냉장 코너로 달려갔다. 근데 에게게... 겨우 4개 남았다. 물어보니 재고도 없다고 한다. 4개를 다 사 가지고 왔다. 그리고 다시 다음 주.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냉장 코너를 갔다. 헐. 빈 상자만 남아있다. 아무래도 이 곳 사람들 입맛이 변했나 보다. 아니, 맛있는 건 세계 공통의 맛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일주일을 참았는데, 한 개도 남아있지 않다니. 정말 이상하다. 이렇게 사소하게 커피우유 따위에나 목숨을 걸다니. 세상 오래 살아볼 일이다. 거짓말 안 하고 일주일 내내 커피우유가 내 머릿속의 팔 할을 지배했다. 내 상심의 마음을 알았는지 남편은 특별히 토요일에 한번 더 리들을 들렸다. 이번엔 평소 가는 리들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리들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제일 먼저 냉장 코너로 달려갔다. 우와! 토요일엔 다들 많이 놀러 갔는지 재고가 엄청 남아있다. 세어보니 전부 26개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유통기간을 확인하고 20개의 우유를 집어 들었다. 6개는 그 누군가가 나처럼 절망하지 않길 바라며 남겨놓았다. 흐뭇하게 슈퍼를 나섰다. 냉장고에 필요한 만큼의 커피우유가 있으니 마음도 든든해졌고, 다음번에 장을 볼 때도 여유가 생겼다. 이제 장을 볼 때 한 병이든 두 병이든 남아있는 커피 우유만 챙겨서 온다. 가방을 샀을 때도 이렇게 기쁘진 않았는데. 역시 사람은 알다가도 모를 존재이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냉장고의 커피우유를 유통기간 순으로 정리하며 뿌듯한 웃음이 얼굴에 드리워진다. 

작가의 이전글 다인이의 보육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