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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Jul 21. 2016

다인이의 보육원

이탈리아의 보육원

나는 지금 육아휴직 중이다. 이곳에서 직장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이탈리아의 육아휴직이 어떻게 되는지 알기 힘들 것이다. 나 역시 임신 전에는 육아휴직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아 잘 몰랐다. 이탈리아는 임신 8개월 혹은 9개월부터 육아 휴직에 들어갈 수 있다. 그 뒤 5개월 간은 100퍼센트의 급여를 받는데 이 급여는 회사와 INPS라는 한국의 연금관리공단과 비슷한 성격의 기관에서 반반씩 지원을 한다. 만약 5개월 뒤 여성이 바로 회사로 복귀하길 원하면 micro nido라고 불리는 아기 보육 시설에 자녀를 맡길 수 있다. 그러나 아기가 너무 어려 스스로 더 양육을 하고 싶을 경우 그 뒤로 6개월 간 절반 가량의 월급을 받으며 집에서 아기를 돌볼 수 있다. 그 후로도 일 년 간 더 무급의 출산휴가를 신청할 수 있다. 무급 출산 휴가를 원하지 않는다면 아기의 수유시간을 고려해 1년까지는 정규 근무 시간이 6시간으로 조정된다(6시간만 근무해도 8시간 근무와 같음). 또한 아기가 아플 경우, 의사의 처방이 있다면 1년에 30일은 아기 병가로 사용할 수 있다. 아기 병가는 5세까지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정확하지 않다. 또 엄마가 원한다면 아기가 세 살이 되기 전까지는 파트타임으로 계약을 바꿀 수 있다. 이 기간이 지난 후 풀타임으로 돌아가는 데는 문제가 전혀 없다. 


나는 임신 8개월 차에 육아휴직에 들어갔고 유급 출산 휴가까지만 쉴 생각이므로 9월 말에 회사로 복귀해야 한다. 친정 시부모님이 전부 한국에 계시므로 복직 후 다인이를 맡길 곳이 없어 다인이를 출산한 후부터 계속 보육원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었다. 꼬무네 (comune, 우리의 시청 같은 개념)에 따라 보육원(asilo nido라 불린다.)의 비용이 조금씩 다르다. 보통 밀라노 꼬무네가 다른 꼬무네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다. 아무래도 밀라노시에 인구가 더 밀집되어 있어 시설과 운영자금의 규모가 더 커서인 듯하다. 또 시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이 사설로 운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저렴하다. 많은 사람들이 시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으로 아이를 보내고 싶어 하므로 (나 같이) 점수제를 도입해 아이들을 받고 있다. 다인이를 9월 학기부터는 보육원을 보내야 하기에 친구들로부터 정보를 얻기도 하고, 보육원을 방문해 문의도 했다. 4월 달부터 오로지 시청 사이트로만 접수 신청을 받는다고 한다. 4월이 되자마자 나는 혹시라도 지원에 문제가 생길까 전전긍긍하며 구글 번역기를 열심히 돌려가며 신청을 마쳤고, 맞벌이 부부라는 이유로 추가 점수를 받아 다행히 다인이의 입학이 허가되었다. 

접수 시에는 주소지에 네 곳의 보육원을 선택할 수 있다. 이사를 계획했던 터라 이사할 곳과 가까운 곳을 일 순위로 넣었다. 나머지는 회사에 가기 편한 방향으로 선택했다. 이사 갈 집 밑에 바로 있는 보육원을 일 순위로 넣었다. 다인이를 위해 일순위로 넣은 곳이 안될까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신청 시에는 현재 살고 있는 주소만이 유효하므로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했다. 이사를 가자마자 시청에서 주소지부터 바꿨다. 혹시라도 보육원의 선정에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란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결과는 꽝이었다. 날마다 집 바로 밑에 있는 보육원을 지나치며 우울해질 내 마음은 둘째 치고, 추운 겨울날 먼 길을 돌아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올 것이 더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단은 좌절하지 말자. 생각을 하자 생각을...


분명히 나와 같은 상황을 고려했을 것이다. 어찌 되든 보육원을 보내야 하기에 기간에 맞춰 보육원에 등록하러 갔다. 그리고 등록절차를 밟으며 나의 상황을 접수원에 찬찬히 설명했다. 아이에 관련된 일 80퍼센트 이상은 천사와 같이 취급하는 이탈리아를 믿어보자! 접수원은 외국인인 나에게도 아이에 관련된 문제이자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우선 우리가 일정 소득이 넘어 보육원 비용을 감면받지 못하는 것에 동의하는지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일단 지금의 보육원에 넣는 것을 동의하고 가까운 주소지의 보육원으로 이전 신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두 번째는 지금의 보육원을 거절하고 보육원을 재신청하는 것이다. 이 역시 100퍼센트 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첫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이미 주소지는 옮겨져 있는 상황이었기에 기대를 걸어볼 만도 했다.

그렇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흘러갔다. 여전히 원하는 보육원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은 채, 집 아래 보육원을 지나칠 때마다 기도했다. '하나님, 다인이에게 항상 최고를 주시는 주님. 여기가 안되더라도 감사하게 해주세요.'. 빨래를 널며 베란다 아래로 보이는 보육원을 바라보면서도 기도했다. '주님. 다인이에게 항상 최고를 주시는 주님. 저의 마음의 평화를 주세요. 제발, 저 보육원에 다니게 해주세요. 저 꿈의 보육원에 다인이가 다닐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나 깜깜무소식. 결국엔 날짜에 맞춰 우울한 마음으로 보육원 학부모 모임에 나갔다. 그곳의 시설도 나무랄 것이 없었다. 아가를 이뻐해 줄 것 같은 경력 있어 보이는 선생님들, 친절해 보이는 다른 학부모들. 반을 배정받고 선생님과 인사했다.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 한 곳은 여전히 씁쓸했다. ' 아... 지금 당장 이전은 안될라나보다. 좌절하지 말자. 아이를 맡길 공립 보육원에 된 것을 먼저 감사하자. 제발 긍정의 마음을 잃지 말자!!!'. 되뇌고 스스로를 달래고. 그러나 아이의 문제에 있어선 역시 타협이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느낌 좋은 전화가 울렸다. 광고성 전화번호 같이 보이지 않는 처음 보는 전화번호. 가슴이 두근거렸다. 전화를 받았다. 내가 다인이 엄마인지를 묻는다. 그 한마디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예상대로 그녀는 다인이의 보육원 이전 신청은 수락되었음을 알렸다. 나의 들뜬 목소리에 전화를 한 사람도 같이 축하해 주었다. 흔치 않게 빨리 수락이 되었다며 아이에게 너무 잘되었다고. 

이렇게 또 하나의 감사함이 이 땅에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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