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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Jul 20. 2016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어떻게 겸손해질 수 있을까?

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르다. 나의 성격을 자가 진단해보자면;

오지랖이 넓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으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남의 생각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가끔 재치 있는 말을 한다. 불편한 분위기에선 어색하지 않도록 사회자 모드로 돌입한다. 미안함을 느끼면 바로 사과하는 편이다. 말을 생각 없이 할 때가 있다. 남보다 내가 불편한 것이 편하다. 가끔 결정장애가 있다. 어떤 때는 되게 솔직한데 어떤 때는 속 마음을 잘 숨긴다. 예쁘거나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추진력이 있다... 등등이 있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우리가 흔히 별로라고 생각하는 성격도 인생을 살면서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오지랖. 만약 내가 오지랖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재미있는 인생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잘하는 외국어로 말을 할 때던지 못하는 외국어로 말을 할 때던지 일단 쫄지 않고 오지랖 떨며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 웃을 일이 많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을 때도 있고, 애매한 곳에 정력을 낭비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의 성격은 겸손과는 거리가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난 감정이입이 잘 되는 편이어서 누군가 고민을 이야기하면 해결사가 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본의 아니게 아는 지식을 최대한 동원하여 도와주려고 한다. 이게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단순하게 성토를 원하는 누군가에게는 되게 피곤한 일이 될 수 있다. 올해 우리 가족에게 큰 이슈 중의 하나는 주택장만이었다. 비록 대출을 받았지만 외국인으로서 주택을 장만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우리에게도 큰 도전이 되었다. 주택을 장만하다 보니 부동산에 관련된 지식이 나도 모르게 쌓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아는 게 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급기야 며칠 전 실수하게 되고 말았다. 새로 이사 온 우리 집에서 회사 동료들이 모였다. 우리 회사는 이탈리아 회사이지만 다국적 외국인들이 함께 일한다. 그중엔 중국인도 있는데 그 친구 어머님이 잠깐 놀러 오셨다. 그녀와 나는 친해서 그녀의 어머니도 집으로 초대하였다. 새로 구입한 집, 쌔삥한 인테리어, 안정적으로 보이는 같은 국적의 남편. 아마도 그녀의 어머니는 이탈리아 남편과 결혼한 친구가 가뜩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밀라노에서 월세를 주고 산다고 생각하니 더 심기가 불편해졌던 듯하다(그녀의 남편은 제노바인이다. 그래서 제노바에 집이 있다.). 며칠 동안 딸 이외의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고팠던 모양이셨던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하셨다. 오고 가는 말이 많아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들을 말하게 되었다. 집을 어떻게 구매했는지, 같은 나라 남편과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경제적으로 통장을 합치는 것이 왜 좋은지 (친구는 남편과 수입관리를 따로 한다) 등. 친구들이 돌아가고 난 뒤, 곱씹어 생각해보니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어른 앞에서 내가 속의 말을 너무 많이 했구나. 내가 집을 샀다고 너무 눈에 보이는 게 없었구나. 주택을 구매한 게 어찌 생각하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혼자 아는 척을 다했단 말인가! 

쏟아부은 말을 담을 수 없고... 그렇다고 친구에게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 엄마와 말다툼이 있었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또 그들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을 수도 있는데 내 마음 편하자고 말실수했다며 사과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혼자서 답답하고 불편한 며칠이 흘렀다. 나는 아직도 그 뒤에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답답하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게 또 물어보진 않을 예정이다. 이번 일로 느끼는 바가 많았다. 앞으로는 나에게 누군가 먼저 조언을 구하더라도 또 어떤 조언이 필요해 보이더라도 하루 이상은 참아보고 말하자. 쉽게 주는 조언은 가치 없게 버려질 수도 있고 또 덕을 쌓는데 좋지 않을 수 있다. 




어떻게 겸손해지는지는 아직 36년뿐이 못살아봐서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방법 중의 하나로 아는 것을 함부로 말하지 말자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닐 수 있으며 말은 한번 하면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남을 높이고 칭찬하는 말을 하고,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질문을 던지며, 물었으면 잘 듣고 그들의 삶을 있는 그 자체로 이해해보도록 하자. 나도 익은 벼가 되고 싶다. 적어도 익어가는 중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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