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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Aug 09. 2016

아빠의 중국어 강의

제2의 직업인생

지금은 백세시대라고 한다. 인간의 생명이 연장되면서 풀어야 할 숙제들도 많아졌다지만 누구나 다 늙을 것이고 우리가 소위 '노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인생 지혜를 잘 활용한다면 분명 더 풍요로운 사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언제부터 노인이라고 정의하는지 모르겠지만, 손자 손녀 다섯을 둔 우리 엄마 아빠는 이미 그 대열에 합세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아빠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아빠는 사변에 가족들을 잃으셨고, 전쟁 통에 기적같이 목숨을 건지셨다.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해 세워놓은 그 줄에 아빠도 있었지만, 총소리와 함께 아빠는 기절했고 깨어나 보니 시체더미 속에서 자기만 깨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기가 약해지면 주무실 때 헛소리를 내신다. 머리가 명석해 그 당시에 월반도 했을 만큼 공부도 잘했다. 그리고 공무원이 되어 파독에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던 프로젝트도 진행하셨다 한다. 관직이 천직이었지만 상사와의 트러블이 생겼고, 부자 엄마를 만나 공직의 길을 당당히 접으셨다 (아빠 인생에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당시 거의 모든 남자의 로망인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외할아버지의 기술과 자본력, 아빠의 명석한 두뇌회전으로 탄탄대로였던 사업의 길은 어쩌다 보니 그냥 그렇게 좋은 시절을 다 보내게 되었고 북경에까지 그 열정을 뻗었으나 늙은 나이 맨몸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자식 셋 번듯하게 교육 다 시켰고 재산을 탕감했단 죄책감으로 엄마에겐 찍소리 안 하며 왕비 모시듯 사시는 아빠. 한 때 금전적 문제로 위기를 맞은 중년 부부는 애증과 위대한 사랑으로 지금까지 버텨내며, 티격태격 알콩달콩 살고 계신다. 가지 못한 길은 현재의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더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다. 우리 가족은 아빠가 공직자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유인 즉 사업으로 대성하려면 거절도 하고 듣기 싫은 소리도 해야 하는데, 그런 쪽엔 영 소질도 없으신데다, '티클 모아 태산'이라는 정신도 부족하시기 때문이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그래도 당신이 하고 싶은 건 다 하셔서 미련은 없다던 아빠. 북경을 뜨고 한국에 가셔도 아로니아 나무, 분필 등 사업 아이템을 잡아 끊임없이 사업 열정을 불태우셨으나 엄마의 동의를 구하는데 번번이 실패하셔서 결국엔 노인문화센터에서 붓글씨도 배우고 강의도 들으며 그 열정을 식히고 있었다. 그러던 아빠에게서 며칠 전 전화가 왔다. 하시는 말씀이 노인문화센터를 다니며 알게 된 분 중 예전에 교장선생님이셨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씩 작은 도서관이라 불리는 곳에서 사서를 보신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신도 뭔가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셨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아빠는 사업이 아닌 어딘가 소속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였다. 나는 아빠에게 전폭적으로 아빠의 생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꼭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회와 단절되지 않고 활동을 한다는 자체가 인생의 큰 즐거움이 될 수 있음에 동의한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저번보다 더 구체적이셨다. 중국어를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늦은 나이에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아빠는 중국어를 잘 못하신다. 엄마는 뻔대(?)가 좋아 시장에서 한국말로 중국 사람들과 소통하며 물건을 사셨지만 아빤 중국어를 못하는 것을 가끔 부끄러워하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중국어를 못하는 게 아니라 읽기, 쓰기, 듣기는 되는데 말하기가 안된다. 중국 학생에게도 과외를 받은 적이 있는데 아빠의 학습태도와 명석함을 칭찬했으나 말하기는 해결되지 않는 숙제라고 했다. 아빠의 중국어는 말 문이 트이지 않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외국어 학습성향 그것이었다. 또한 예전에 내가 회사를 들어가기 전, 북경 영어 과외를 주름잡던(?) 시절 그 깟 과외로 얼마나 벌 수 있냐며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장본인이시기도 하다. 그런 아빠가 중국어 강의를?

하긴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반드시 지식이 많아야 되는 건 아니니까. 때론 선생님이 알고 있는 지식보단 학생들이 꾸준히 공부할 수 있게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중요하니 말이다. 그간 아빠는 중국어 수업도 들어보고 교재도 선정하며 내년 3월부터 수업을 시작하겠다고 나름의 결심을 내린 상태였다. 그 전의 모습이 어떠하든 난 아빠를 응원한다. 한창 사회에서 활동하는 나와 남편도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 같은 고민을 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아빠가 중국어 강의를 통해 제2의 직업인생을 즐긴다면 그것이 우리에게도 긍정의 메시지로 힘이 될 테니 말이다. 지금 우리는 제2의 직업, 제3의 직업을 생각해야 할 만큼 인생이 길어졌다.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취미, 봉사 등 상관없다. 어떤 형태로든 비록 몸은 늙었지만 자신 안에 살고 있는 젊음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데는 나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빠의 제2의 직업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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