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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Aug 10. 2016

오케이, 이 서류면 돼

공증된 문서의 유효기간

잘못된 정보로 인해 큰돈은 아니더라도 금전적 손실을 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해외에 살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확실한 신변'이다. 그래서 정부 기관에서 온 편지, 한국에서 공증받은 서류, 납입 관련 영수증 등은 깔끔하게 정리하진 않았더라도 꼭 한 곳에 모아놓아 유사시 찾아 쓸 수 있게 해 놓았다. 그리고 이런 습관은 아래의 사건과 같이 빛을 발한다!


집 대출을 받기 위해 밀라노 꼬무네(우리나라 시청 같은 기관)에 서류를 떼러 갔다. 이런 써글... 문서가 잘못되어 있다. 대출을 받으려면 밀라노 시청에 등록된 Stato di Famigliare라는 서류를 떼야하는데 (우리나라의 가족관계 증명서와 비슷) 내가 밀라노에 처음 왔을 때, 남편의 체류허가증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고, 나는 그의 체류허가증이 나오기 전 운 좋게 직장을 찾아 독립적으로 체류허가증을 신청했었다. 그러나 우리 둘 다 시청에 Residenza(거주 등록)을 할 땐 비록 따로 가긴 했어도 남편과 아내로서 한 가족으로 신고했거늘 신기하게도 내 이름으로 서류를 떼면 남편이 나오나, 남편의 이름으로 서류를 떼면 내 이름은 온데간데없다. 서류상 그는 싱글이었다. 남편 회사에 연계된 에이전트가 일 처리를 아주 아주 아주 미흡하게 한 거다. 혹시 몰라 대출받기 위한 준비기간을 충분히 잡았으니 망정이지 급할 때 왔으면 낭패 볼 뻔했다. 나는 집에 있는 관련 서류를 들고 꼬무네로 갔다. 남편과 나의 가족관계 증명서, 기본증명서, 혼인관계 증명서 플러스 이 증명서들의 아포스티유를 받은 공증서류들까지 전부 다! 무슨 서류가 부족해서 다음에 다시 찾아가느니 다 가져가는 것이 낫다. 파일에 고이고이 원본을 모셔두어 문서들은 깨끗했으나 이 서류들은 내가 밀라노로 오기 전 즉, 5년이 넘은 서류들이다. 어디선가 얼핏 6개월 이상 된 서류들은 다시 공증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일단 들이대고 보자. 안되면 그때 다시 한국에 부탁해보는 거고, 되면 돈 굳는 거 아닌가. '~카더라.'가 어떤 때는 '~가 아니더라.'였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꼬무네(시청)에 도착해서 일단 번호표를 뽑고 내 순서를 기다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했던가. 나는 살짝 날티가 나면서도 (여기 공무원들은 한국 공무원들처럼 formal 하고 친절하지 않다. 그야말로 철. 밥. 통. 만고 땡 자세이다.) 설명은 시원시원하게 하는 아저씨에게 걸렸다. 나는 우리가 가족임에도 서류상으론 그렇게 되어있지 않는 슬픈 현실을 그에게 설명했다. 그는 서류가 필요하다 했다. 내가 가져온 서류를 보여주니 '오케이' 라며 복사하고 오란다. 복사하고 그냥 자기한테 바로 오라 한다. ^^ 일단 5년이 넘은 서류를 제대로 못 봤나 싶어 재확인에 들어갔다. 그는 아포스티유 받은 서류의 유효기간은 없다며 딱 잘라 말했다. '이거 위험한 함정 같은 이야긴데... ' 속으로 생각했지만 일단 내 급한 불은 끄게 되었으니 나도 오케이! 비록 데이터 상으로 완전히 정정하는 데는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는 함정이 있었으나, 만족이다. 

이 기쁜 소식을 아는 언니에게 말해주었다. 그 언니도 밀라노에 산지 20년이 조금 안 되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밀라네제(milanese)다. 언니는 일단 들이대는 나의 자세에 감탄했고, 자기 남편은 그 6개월 '카더라' 통신에 속아 필요에 따라 서류가 필요하면 한국에 부탁해 몇 십만 원의 비용을 주며 했다고 한다. 나는 이제라도 알았으니 앞으로 원본 잘 보관해 돈 굳히라고 했다. 


나의 들이대는 정신 때문에 쪽팔림을 당할 때도 있고, 뻔대 좋은 나라도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기분이 상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 좋은 정보를 얻을 때가 더 많았고 예기치 못한 즐거운 에피소드가 생길 때도 많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친절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물론 업무에 찌들고 개인의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나 같은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꺾이지 말자! 꺾이지 말고 궁금한 것은 물어보고 물어보고 또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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