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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Jul 15. 2016

외쿡에 적응하기

나만의 타향살이 셋업 노하우

나는 만 36살이다. 19살 중국 북경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한국을 떠나 있다. 머리가 커진 뒤 타향살이를 시작해서인지 지금은 한국이 더 낯설다. 북경에서 살 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들어가면 같은 아시아 문화권이라 어색함이 지금보단 덜 했다. 밀라노에서 살면서도 2년에 한 번 정도는 한국에 들렸었다. 2016년 4월 볼 일로 서울에 들렸을 땐 예전과 느낌이 많이 달랐다. 길거리에 간판이 이렇게 많았나 싶고, 사람들은 다 빠릿빠릿했다. 은행업무 몇 개 처리하는데 혼이 쏙 빠졌다. 무슨 일을 하던 일단 기다려봐야 하는 밀라노의 행정처리에 익숙해져 버린 걸까... 어느덧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나는 대기표를 받고 은행에 앉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한 번은 손에 익지 않은 핸드폰으로 택배 아저씨에게 주소 찍어 보내야 한 적이 있었다. 메시지가 느리다고 택배 아저씨에게 혼까지 났다. '아... 한국에서 적응하려면 일단 빨라야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선 빠릿빠릿함이 팁이라면, 나의 북경 생활의 시작은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이미 북경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언니 둘이 있어서, 어느 학원이 좋은가 찾을 필요 없이 바로 중국어 학원을 등록했고, 나 혼자 말 못 하는 상황이 싫어서 학원에서 4시간 수업을 듣고 나머지 4시간은 집에서 자습했다. 북경에 온 그 해에 대학을 가리라는 목표를 세우고 공부에 매진했다. 그리고 목표대로 그 해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공부한 중국어가 다 인 듯하다. 


밀라노는 결혼을 하고 와서 쉽게 정착하리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내 신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무비자 3개월 처지였다. 북경에서 지낸 지난 10년의 타향살이 경험이 자연스럽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1. 이탈리아어 공부. 나는 우리가 밀라노에서 간다고 결정하고부터는 혼자서라도 먼저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독학으로 3개월 간 이탈리아어에 매진한 결과 입에서 말은 안 나오더라도 문법은 곧 잘 한다는 아시아인 특유의 레벨에 오르게 되었다. 이는 현지에서의 학원비를 조금이라도 벌어보겠다는 주부의 마인드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밀라노에 와서는 계획대로 레벨 테스트를 통해 말을 잘하지만 문법의 수준은 나와 비슷한 외국인들의 반으로 배정받았다. 내 생각엔 전부 초짜들만 같이 공부하는 것보다 나보다 잘하는 학생들과 공부하는 게 실력을 올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2. 인터넷으로 그 나라에 잘 활성화된 카페나 홈페이지를 찾아본다. 카페에서는 다양한 정보가 올라온다. 구인, 벼룩시장, 서류 문의 등. 비밀 댓글에 가려 정보가 공유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이도 없는 것보단 낫다. 


3. 스터디 그룹을 찾는다. 이 세상 혼자 살 수 없다. 친구를 찾기도 힘든데 혹시라도 카페를 통해 스터디 그룹을 모집한다면 와이 낫이다. 나 같은 경우엔 이 스터디 그룹을 통해 좋은 지인들을 만났다. ^^


4. 신변의 보장은 그 무엇보다도 일 순위다. 서류를 하는 것이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 안전하게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필요한 것이 다 갖춰진 서류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여기 왔을 때 쇼조르노카드(거주허가카드)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들었지만 나는 굳이 레지덴짜(거주증)까지 만들었다. 받는데 까지는 공수가 더 많이 들진 몰라도 만약 할 때 한꺼번에 안 했다면 바로 운전면허증을 이탈리아 면허증으로 바꾸지도 못했을 것이고, 주택 구입을 위해 은행 대출을 받을 때 필요서류를 제때 준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받을 수 있는 서류가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을진 모르지만 할 수 있고 알고 있다면 미리미리 받아놓자!


5. 커뮤니티를 찾아야 한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다행히 밀라노엔 교회가 여러 곳 있다. 신앙심으로 교회를 다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과의 교제의 창구가 되는 곳이다. 꼭 교회가 아니더라도 본인의 관심과 취미를 나눌 교제의 장소는 해외 생활의 롱-런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본다.


6. 긍정적인 마인드. 들이대는 자세. 나도 인간인지라 버벅거리는 이탈리아로 사람들에게 들이대는 것이 가끔은 쪽팔린다. 너무 자신감 있게 말해서 내가 이탈리아어를 엄청 잘하는 줄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버벅거리는 이탈리아어이면 어떤가! 한국어로 안녕도 못하는 외국인들도 많은데 절대 기죽지 말자! 행정처리가 늦어도 서류를 받을 방법이 있다면 기쁘게 생각했고, 안 된다고 짜증내지 않다 보니 삶의 태도도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들이대야 한다. 원하는 게 있다면, 혹시 될까? 란 의심이 드는 부분이 있다면 일단 물어보자. 얻지 못하더라도 팁을 얻을 수도 있고 때론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서 일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7. 현지인 친구 찾기. 친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밀라노에 오래 있겠다고 생각한 뒤부터는 몇 년 있다가 떠날 한국인보다 좋은 관계를 맺을 이탈리아 친구들이 있었으면 했다.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더라도 직장동료(우리 회사엔 외국인이 많은 특성이 있다) 등 같은 땅에서 긴 시간 같이 있을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롱-런에 중요하다.


8. 가족을 사랑하자. 많은 사람들이 유럽에 대한 로망을 갖는 이유 중 하나가 가족을 중시하는 삶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 본다. 이 곳이 한국보다 일이 적다는 의미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국보다는 일찍 퇴근하는 문화를 가진 곳이므로 눈치는 덜 볼 수 있다. 내 남편 내 자식과 더 시간을 보낼 있는 곳.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낼 수 있는데, 여행 계획을 세워 부지런히  세워 다닌다면 가족의 화목이 다져지는 것은 물론이고 현지인들과 이야깃거리는 덤으로 생길 수 있다. 


9.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자. 나는 일을 찾고 싶었다. 이탈리아어도 안되고 서류조차 없는데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린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도 찾았다. 물론 일 찾는 것이 우선이었으므로 처우는 마음을 비워야 했다. 해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다 각 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자기 나라가 아니라고 해서 제약을 받는다고 해서 쉽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심플한 밀라노에서의 삶이 바쁜 곳에 살아가는 그 누군가의 눈에는 안단테의 지루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술을 마시지 않아 더 민감한 감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남편의 말처럼, 이 곳의 단순함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덧 나는 여유로움이 게으름이 아니라는 것과 얼굴이 더 밝아졌다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게 되었다. 분명 이 단순한 삶에 이르기 위해 나도 보이지 않은 치열함을 겪었다. 백조가 수면 아래에서 수 없이 다리를 젓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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