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sign Sep 12. 2016

2016 여름휴가에 생긴 일 III

다인이의 첫 응급실 행

일요일 예배가 끝난 후, 사람들과 여유 있게 교제를 나눈 후 제노바의 시골 동네 Casoni를 가기 위해 집으로 짐을 싸러 갔다. 너무 느긋했나. 그래도 나흘은 있을 곳인데 먹을 것만 딸랑 싸놓고는 옷은 챙기지도 않았다. 다인이를 봐가며 짐을 싸는 것이 힘들어 놔두었다기엔 나도 참 게으르다. 그러나 짐을 싸는 일이 여자의 일은 아니므로 내 탓만은 하지 않으리라 ^^

남편과 내가 정신없이 짐을 싸다 보니 다인이를 찬찬히 보지 못했다. 남편이 다인이를 아기 침대에 넣어둔 것을 봤기에 나도 정신없이 짐을 싸느라 몇 분 동안 다인이의 찡얼거림을 못 느낄 정도였다. 그러다 순간 왜 이렇게 찡얼거릴까 생각하며 아기 침대 안을 보는데, 아이가 뭔가를 빨고 있었다. 다인이를 들어 자세히 보니 다 쓴 모기 매트.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아이의 입을 정신없이 물로 헹구고, 나의 비명에 놀란 남편은 짐을 싸다 말고 바로 안방으로 달려왔다. 인터넷으로 폭풍 검색을 하며 일단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토를 하거나 별다른 증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짐을 다 싸고 조언을 얻을 겸 약국으로 향했다. 아이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약국에선 응급실로 갈 것을 권고했고 우리는 무식하여 아이를 잡는 일이 생기면 평생 후회할 것이기에 동네 응급실로 향했다. 소문으로만 들어보던 유명한(?) 이탈리아의 응급시스템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우선 접수하면서 다인이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약물에 관련된 것이라 그런지 노란 딱지를 주었다. 딱지의 색깔은 세 가지로 나뉘는데, 초록, 노랑, 빨강이다. 초록은 응급상황이 가장 낮은 레벨로 하루 종일 병원에서 기다려야 한다. 사실 노랑 딱지를 받았을 때 새삼 놀랐다. 가벼운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란 딱지 덕분에 다인이는 생각보다 빨리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가 무슨 모기 매트를 빨았는지 무슨 상표였는지를 물었고 다인이가 빨은 모기 매트를 보여주었다. 아마 약 성분이 상표별로 데이터 베이스화 된 듯했다. 믿음이 갔다. 치료를 위해 들고 온 주사기 안엔 하얀 액체가 가득 채워져 왔다. 다인이가 입을 벌리지 않자 코를 막았다. 그러자 다인이가 입을 벌리고 약이 들어간다. 하얀색 약이 들어가며 내 마음의 불안도 하얗게 씻어내려간다. 2시간 정도를 병원을 이탈하지 말고 기다리라 한다. 약을 복용 후 어떤 증상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라 한다. 딱히 그럴 것 같진 않았지만, 정말 순간의 부주의로 일어나는 일이 무섭다는 것을 배운 우리는 약의 반응을 기다리며 대기실에서 이탈리아 부모들과 슬슬 이야기 꽃을 피우며 시간을 보냈다. 다른 집 아가들은 어느 보육원에 다니는지 무슨 일로 왔는지 등등. 한 아이는 딱지가 떨어졌는데 피가 멈추지 않아 왔다고 한다. 한 아이는 무슨 벌레에 물렸는지 심하게 부어서 왔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인이 기저귀가 불룩해졌음을 느꼈다. 급한 불도 껐고 이제 여유 있게 기저귀를 갈까 하는데 아뿔싸 기저귀가 차에 있다. 그러자 언제 친해졌냐는 듯 아줌마들이 여기저기서 기저귀를 건네준다. 역시 잠깐의 소통도 급할 땐 큰 힘이 된다. ^^

다행히 다인이는 2시간 동안 무탈했다. 떠나도 좋다는 의사의 최종 선고가 떨어지고 우리는 급하게 제노바의 시골 동네 Casoni로 이동했다. 도대체 무슨 마가 낀 날인지 몰라도 2시간이면 도착해야 할 Casoni를 4시간이 넘게 걸려 밤 11시 반에 도착했다. 이유인 즉, 우리는 당연히 Casoni는 한 곳일 거라 생각했는데 다른 지역에도 Casoni가 있었고 결국 구글맵이 첫 번째 선택한 Casoni로 출발하여 돌아 돌아 최종 목적지인 Casoni di fontanigorda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 어머님은 저녁도 못 먹고 달려온 우리를 위해 친절히 저녁을 따로 포장해 우리가 잘 숙소에 준비해주셨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들어온 숙소에 포장된 저녁 상을 보자 눈물 나게 감사했다. 다인이는 Casoni의 맑은 공기 때문인지 울지도 않고 빵끗 웃으며 갈은 배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잠이 들었다. 우여곡절도 많고 등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로 무섭기도 한 하루였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이렇게 남의 침대에 누워 깊은 피곤함을 달래 본다. 



작가의 이전글 오랜만의 통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