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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Sep 28. 2016

 남편의 건강검진 결과

일 년의 성적표 받는 날

감사하게도 남편의 회사에선 건강검진이 보험에 포함되어 있다. 이탈리아에선 의료카드가 있으면 주머니 가볍게 진료를 받아볼 수 있다지만, 처음엔 그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진다. 일단 몸에 이상이 생겼다 느껴지면 메디코 바제(medico base, 가정의)에게 가서 병원 진단을 요구, 일차적으로 가정의가 봐야 할 과의 종이를 건네주면 그걸로 큰 병원에 예약을 하고 순서에 따라 진료를 받는다. 이렇게 첫 진료를 받게 되는데 다들 앓는 병이 비슷한지 붐비는 과는 몇 달씩을 기다리기도 해야 한다. 그러니 이렇게 정기적으로 체크 업을 할 수 있는 건강검진이 포함되어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런데 말인데... 사람이 참 간사한가 보다. 남편이 건강검진을 받고 결과서를 받아 들고 오는 날이면 이상하게 벨(?)이 꼬인다. 나와 7살 차이 나는 남편은 날 만난 뒤로 회춘(?)한 느낌이다. 파숑(패션)에도 눈을 뜨고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슬림한 몸매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아침에 가벼운 5킬로 조깅을 나가고,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점심은 가벼운 샐러드를 먹고 헬스장을 찾는 남편의 모습은 내 남편이 아니면 정말 멋지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자기 관리를 멋지게 하는 사람이라며 얼마나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겠는가 싶다. 그런데 건강검진도 몇 년간 돈 아까워 못 받아본 내게 (물론 받으라고 극구 그는 권고하지만 사실 맘처럼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작년에 비해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졌는데 안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늘고 좋은 건 줄었다는 둥... 참 듣기 싫은 거다. 혼자 천년만년 살건가... 육아를 하면서 나는 포기하며 희생하는 것도 많은데, 아~주 많이 달라지지 않은 그의 라이프 스타일에 나도 모르게 뭔가가 속에 꽉 막혔었나 보다.


온몸으로 바닥을 밀어내며 다니는 다인이 덕분에 이제 매일 바닥을 닦는 나는 줄어들지 않고 매일 늘어나는 가사 일에 아침 조깅은 고사하고 아이 잘 때 짬나 책 읽고, 남편 올 때 저녁 준비하느라고 집에 사놓은 스트레칭 줄 한번 튕기기가 버겁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귀를 바로바로 적으면 좋으련만 아기 눈치 보느라 쓰고 싶을 때 바로 앉아 브런치질 하는 것도 호사롭다. 나의 생활은 나를 버리는 것의 연속인데. 남편 올 때 기다려 기쁜 맘으로 샤워라도 하러 들어가면 그 때야 말로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된다. 어쩌다 머리라도 감아 조금 늦게 나오면 아이를 안고 들어오는 남편. 내가 보고 싶어서 그런다지만 나.도.가.끔.은.혼.자.이.고.싶.다.

며칠 전 아는 사람과 외식을 하는데, 곧 복직한다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 없이 혼자 외출해 본 적이 없는지 묻는다. 생각해보니 이유식을 시작한 다인이를 남편 혼자 몇 시간은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본 적이 없었다. 그분의 남편은 종종 그렇게 혼자 아이를 본 적이 있다고 한다. 흠... 복직 전 세시 간 정도는 한번 남편 혼자 다인이를 보게 해야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혼자 한번 나가보고 싶다.

그러나 우리 남편, 아내 바라기다. 거의 매일 그는 나의 발을 주무른다. 다인이를 가지고부터 쭈욱. 하루의 피곤을 발마사지로 푼다. 사람이 그렇게 동일하긴 쉽지 않으리라. 몇 주전부터 시작된 등산. 아기 캐리어를 혼자서 지고 4시간을 왔다 갔다 한다. 가벼운 줄 알았던 아기 캐리어. 매고 30분을 혼자 가기 힘들었다. 다인이가 15킬로 될 때까지는 거뜬히 업고 산에 오르겠다는 그의 말. 그 다짐을 위해 운동을 한다는 그. 어쩌면 거짓말은 아니구나 싶었다. 중년의 나이에 어린 딸아이 하나 가졌으니 천년만년 살 기세로 건강 관리에 몰두하는 그가 내심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래서 모든 것은 한 면만 있는 게 아닌가 보다. 글로 이렇게 그를 까대는(?) 나도 사람들은 '남편 바라기'라고 부르니 말이다. 

그러나 육아는 지치고 복귀는 다가오고 아기는 가엽고 남편은 성적표를 들고 왔고 남편의 출장자는 왔고 고로 저녁 늦게까지 독박 육아를 하고 있는 나는 조금은 서럽다. 그리고 옆에서 아이는 방방 뛰고 나는 미소를 지어주지만 속은 한없이 외롭고 고독하다. 갑자기 어느 집사님의 말이 생각난다. 다 아파도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던. 병 수발할 누군가가 없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마음 이쁘게 고쳐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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