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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Sep 22. 2016

타지에서 맞는 아빠의 생신

아빠의 팔순

오늘은 기분이 축축 처지는 날이다. 생각보다 훨씬 더 기분이 가라앉는다. 아빠의 팔순. 한국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머리 터지게 생각했던 내가 불효녀다. 그냥 생일도 아니고 팔순인데 이걸 돈으로 땜빵하려고 하다니...

어려서 무척 아빠를 따랐던 나는, 목소리가 큰 엄마에게 혼나는 아빠가 가여웠더랬다. 혹시라도 두 분이 싸우시면 아빠 옆에 앉아 기분을 살피던 나. 나이가 들수록 여자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덩치는 커졌지만 어릴 때보다도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좁아졌던 사춘기 시절의 나. 다인이가 이유식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남편. 남편의 나이  마흔이 넘었다. 우리 아빠도 마흔이 넘는 나이에 다인이처럼 작은 나를 보며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막둥이가 대학 보낼 때까지 살랑가... 막둥이가 결혼할 때까지 살랑가... 막둥이가 애기 낳을 때까지 살랑가...' 그렇게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아빠의 주문은 정말 내가 아기를 낳을 때까지도 정정하게 사셔서 팔순을 맞이하셨다. 


'뚜뚜뚜뚜...' 집에 전화해본다. 아빠는 볼 일을 보러 나가셨단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니 지하철이라는 아빠. 남편도 옆에서 아빠와 전화 통화를 시도해본다. 간단한 생일 축하의 인사말이 오간다. 서먹하지 않으려는 듯 아빠는 남편에게 며칠 전 다인이와 영상 통화한 걸 이야기하신다. 아기가 잘 큰다며 이쁘다며 웃으며 말씀하시는 우리 아빠. 내가 못 가서 죄송하다는데 되려 먼데서 어떻게 오냐며 아무렇지도 않게 아량을 베푸는 우리 아빠.

저녁에 다시 시도한 영상통화. 

아빠 머리에 하얀 눈이 앉았다. 오래전부터 앉아있던 눈이건만 오늘은 더 서글프다. 다인이 기는 것도 보여드리고 어색하게 통화를 이어가며 다시 한번 죄송하다 말씀드린다. 그냥 웃으시는 우리 아빠.


다인이네 가족은.....

할아버지 팔순을 같이 보내지 못했다. 인생 뭐 중요한 게 있다고 부모 팔순도 못 챙기나. 뱅기 삯이 비싸서, 휴가 내기 힘들어서, 드려야 하는 돈도 따로 있어야 하고... 수많은 변명으로 미뤄둔 '오늘'이라는 아빠의 팔순. 

나는 딸들 중 엄마 아빠와 가장 오래 있지 못했고, 우리 다인이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장 오래 있지 못한 손녀다. 우리가 선택한 밀라노에서의 삶을 절대 후회하진 않지만, 가끔씩 오는 스페셜한 날들은 기분을 스페셜하게 꿀꿀한다.

 

아빠... 당연한 내 자리를 지키지 못한 불효녀는 오늘 울어요. 

아빠... 철없는 날 이해해주세요. 무엇보다 아빠가 너무 건강하게 팔순을 맞으신 것에 감사드려요. 지금도 언제든지 나의 버팀목이 되어줄 것 같은 아빠가 나는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다인이 초등학교부터 대학 가는 것까지도 쭉 다 보시고 다 같이 아빠의 건강한 백세를 맞이해요.  사랑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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