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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Oct 27. 2016

갈 곳이 있다는 건

각자가 있어야 할 곳

회사에 복귀한 지 2주 정도 접어든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좌절, 감사 그리고 사랑을 맛보았다. 

복귀 전 아이와 지낸 지난 1년 남짓한 생활의 모습과 이별한 지 고작 이주 정도뿐이 안되었는데, 우리는 아침에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 일어나고, 각자 나갈 준비를 하고, 각자 가야 할 곳에 간다. 이제 아이는 보육원에 풀타임으로 있는다. 아침 8시 전에 등원하여 오후 3시 반에서 4시 사이에 찾으러 간다. 한국의 상황에 비한다면 감사한 스케줄일 수 있겠다. 그러나 10개월뿐이 안된 내 딸에겐 아직 가혹하지 않나 싶어 나의 결정에 아직도 반신반의한다. 나라에서 주어진 2시간 수유기간이 끝나는 내년 1월부터는 더 오랜 시간을 보육원에 있어야 할 것인데. 그때 되면 한 살을 갓 넘기겠지만 여전히 아이에게 무리가 아닐까 싶어 팀장에게 장기 파트타임 계약을 요청한 상태다. 직장을 포기할 순 없고 아이를 방치할 수도 없는 내 나름의 최선의 선택.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새벽 6시가 조금 되기 전. 다인이의 찡얼거림에 잠이 깬다. 새벽 수유를 부르는 아이의 찡얼거림. 니도(보육원) 적응을 잘해주는 대견한 내 딸이기에 새벽 수유도 전혀 짜증이 안 난다. 이게 다인이 아침이 될 테니 말이다. 아직도 규칙적이게 젖이 빨리는 이 느낌이 좋다. 내 딸이 무니까... 마치 아이를 다시 뱃속에 집어넣고 하나가 된 느낌이 드니까... 그렇게 슬그머니 둘이 다시 쪽잠에 빠져든다. 새벽 7시를 조금 넘기니 아빠가 먼저 일어나 출근 준비로 화장실을 차지한다. 나도 몇 분 뒤 일어나 다른 화장실에서 아이 등원 준비를 한다. 이를 닦고(언제나처럼 처음엔 칫솔을 거부한다 ㅋㅋㅋ) 얼굴을 씻기고 기저귀 갈고 옷을 입힌다. 등원 준비가 끝나갈 무렵 아빠의 준비도 끝나고 남편이 아이의 겉옷을 입히는 동안 나도 초스피드로 출근 준비를 한다. 오늘은 엘리베이터에서 헤어지며 아빠가 안녕~하며 손을 흔들자, 다인이도 손을 흔들어준다. 처음이다! 아이가 공식적으로 아빠에게 인사를 한다.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이 "똥글"해진다. 7시 50분 아이를 보육원 선생님에게 넘겨준다. 울지 않고 내게 미소를 건넨다. 아! 정말 나는 성자를 낳았나 보다. (내 친구들은 다인이를 아기계의 성자, 즉 세인트라고 부른다. ㅋ) 가벼운 발걸음으로 밖에서 기다리는 남편의 차로 달려간다. 소소하지만 행복한 또 하루의 시작이다.


회사의 생활은 단조롭다. 복직 후 업무 상 조금의 변경이 생겼다. 남들이 보면 좌천된 거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급여도 같고 일의 스트레스도 적어 지금 내 상황엔 "딱"이다. 어제는 정말로 오랜만에 다인이를 안지 않고 회사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았다. 얼마만의 자유로운 화장실 사용인가!  전혀 마음을 졸이지 않고, 여유 있게 볼 일을 다 보고, 손을 씻었다.  편안한 화장실 사용이 이렇게 감사하다니!  휴식시간 동료들과 즐기는 티 혹은 커피 타임은 어떤가! 아이가 보육원에서 잘 놀고 있다고 생각하니 동료들과 떠는 수다 시간도 죄스럽지 않다. 회사에 있으면 아이를 볼 수 없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일단 어른의 대화를 할 수 있다. 복직 전엔 낮시간 동안은 항상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말했지만 이제는 남편 아닌 다른 사람들과도 대화할 기회가 무궁하다는 것! 또 하나 좋은 점은 점심을 제시간에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인이 적응 기간에는 아이를 한시 반에 픽업 가야 했기에 아이를 데리고 오면 반가움에 한시 간 이상을 놀아주느라 낮 세시가 넘어서야 겨우 음식을 섭취할 수 있었다.  회사에선 와우~ 점심시간에 쪼르륵 주방에 달려가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좋은 것은 내가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사정상 어쩔 수 없이 경력을 중단하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돈을 벌러 나가야 한다. 각 개인의 이유가 어떻든 혹은 남들이 보기에 내 직업이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던 돌아갈 내 자리가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다. 다인이를 바라보며 점점 나이 들어가는 나를 생각하면 언제 이직을 꿈꾸겠나 싶다가도 (나는 심하게 이직하고프다.) 동시에 출퇴근이 조금 자유로운 나의 직장과 지금의 6시간 근무는 지금 내 상황에 정말 딱! 이어서 한 동안은 여기에 머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생각된다.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인이는 보육원 적응기간 동안 자기 나름대로 적응하느라 낮잠도 제대로 못 잤고, 본인이 그토록 좋아했던 엄마 쭈쭈물고 잠자기도 포기해야 했으며 나 역시 쭈쭈 물리고 자는 편안함을 포기해야 했고 일과 집안일을 함께 병행해야 하기에 육체적 피곤함을 경험하고 있다. 남편은 나로부터 조금의 소외감을 느껴야 했고, 다인이 보육원 적응 기간 동안은 다인이가 잠들기 전 밤 9시 반 혹은 10시까지는 미디어, 핸드폰은 stop 하고 철저히 다인이만 바라보고 놀아주기로  나와 약속해야 했다. 그리고 아이가 보육원에 거의 적응했음에도 오히려 지금은 아이와 놀아주는 것에 더 최선을 다한다. ^^ 

조금씩 자리 잡혀가는 느낌. 정리되는 느낌. 보육원 등원과 회사 복직은 우리 가족에게 나름의 큰 도전이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자연스럽게 마치 계속 이렇게 살았던 것처럼 보이게 우리는 훌륭히 해냈다. 마치 백조처럼 말이다. 


각자 갈 곳이 있다는 그 사실. 그래서 소속감을 느끼고 내가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편안함. 오늘을 사는 우리 대한민국의 직딩맘들도 누렸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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