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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Nov 02. 2016

새롭게 유럽을 느끼다

베로나 친구 집 방문

베로나 하면 줄리엣의 집, 심야의 오페라가 떠오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베로나 하면 먼저 베네토 지방의 빨간 지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제 나도 밀라노에 입성한 지 6년 차가 되어간다. 오늘은 뽄떼('다리'라는 뜻인데 11월 1일이 휴일이어서 휴일 사이에 낀 날을 이탈리아어로 '뽄떼'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징검다리 휴일이라고 하나?)여서 다인이의 보육원이 문 닫았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으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월차를 내었다. 그래도 덕분에 시간이 나니 시간을 버리지 않고 뜻깊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저번 주 금요일 남편의 영주권 신청을 마무리할 서류가 완비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오늘 드디어 다인이와 남편의 영주권 신청을 완료했다. 서류 찾는 줄이 길었지만 다인이 덕분에 줄 서지 않고 찾고 (아가 우대!!! 이탈리아 만세!!! 다인이 만세!!!) 상당히 친절한 접수원을 만나 영주권 접수도 상쾌하게 끝났다. 이제 나만 남았다. 우리 가족의 3분의 2가 이탈리아 생활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각설하고....


밀라노에 입성한 지 6년이 다 되어가지만 일상에 익숙해져 버렸는지 아니면 밀라노엔 외국인과 관광객이 넘쳐나서인지 말하는 게 조금 불편할 뿐 밀라노는 더 이상 내가 와~하던 유럽이 아닌 지 오래되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난 그 감성을 잊고 살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게 된 베로나에 사는 친구 가족. 그전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이야기가 오갔지만 아기들의 환절기 감기와 궂은 날씨 때문에 만남의 날짜는 자꾸 미뤄졌다. 감사하게도 이번 주엔 비가 오지 않아 만토바 근처에서 브런치도 하고 베네토 친구 집에서 유쾌한 저녁 식사도 함께 했다. 만토바 근처의 Mutty라는 브런치 카페는 공장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일층에 카페와 서점이 있고 이층엔 갤러리가 있다. 작은 정원도 있어 아기들이 뛰어 놀기에도 좋았다. 서점의 책들은 특이한 책들만 모아서 파는 곳이었다. 한국 책도 있었다 ^^ 우리는 다 아기가 있는 집이었고 서로 대화도 잘 통하는 가족이었다. 이렇게 대화가 편하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서로 적당히 솔직하고 유머를 유머로 잘 넘기는 코드가 잘 맞는 가족이었다. 그들은 이제 막 자신들의 사업을 시작한 용감한 젊은 부부이다. 내친김에 그들의 사무실에도 가봤다. 앤틱가구 하는 이탈리아 친구가 공짜로 내어줬다는 작은 사무실. 앤틱 가구들을 지나 들어가면 그들의 사무실이 나온다. 작지만 빈티지한 감각적인 곳. 우린 다 크리스천이어서 기도하고 나왔다. 축복의 장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인복이 많은 사람들. 베푸는 걸 좋아하는 그들의 품성을 보니 그럴 수밖에. 우리보다 어리지만 배울 점 많은 행복한 가정이었다.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베로나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는 언덕으로 이동했다. 강가 옆의 오래된 다리, 길쭉한 가로등, 벽돌 색의 울퉁불퉁한 바닥. 언덕으로 올라가기 전 풍경들은 내가 잊고 있던 유럽의 감성을 깨우기 충분했다. 흡사 작은 피렌체에 온 기분이었다. 언덕 위에서 빨간 지붕들과 그 사이 흐르는 아디제 강을 바라보니 카메라 셔터를 자연스럽게 누르게 된다. 그랬지. 유럽의 모습이 원래 이랬지. 기분에 취해 아기띠를 매고서도 무거운 걸 잊었다. 그들의 집은 베로나 시내다. 주차하는데 거의 40분이 걸렸다. 불만은 없다. 그 집은 200년 된 아파트. 두 개의 집이 하나로 합쳐져 약간은 독특한 아파트 구조. 빈티지한 그들과 어울리는 소품들. 천장의 나무 대들보가 현대적인 조명과 묘하게 어울린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200년 동안 이 천장 아래에서 나눠졌을까. 음식은 일식풍. 유학 시절부터 파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음식 맛이 일품이었다. 마늘을 일부러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대신 생강이 들어가 음식의 풍미가 떨어지지 않았다. 친구네 어머니가 덕군 차까지 마시며 새벽 2시까지 이야기가 지속되었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친구라는 것. 마음이 통한다는 것. 서로가 알아온 시간이라는 것. 우리 두 가정은 아직 친구라고 말하긴 이른 느낌. 이제 막 서로 알게 된 그러나 어색하지 않은... 유럽에서 살아가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전우애를 가진 사람들의 느낌. 앞으로의 몇 년 동안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오늘 내가 느낀 이 신선하고 풋풋한 감정은 그들에 대한 감사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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