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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Nov 04. 2016

이직을 해야 하나

리쿠르터에게 연락을 받다

육아 휴직이 끝나갈 무렵, 이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을 달려가고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커리어의 방향을 튼다는 것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라 생각해서다. 마음 한편으로는 지금 직장은 육아를 하기에 정말 최적이기 때문에 욕심 없이 용돈벌이(?)를 할 심산이면 몇 년을 더 다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약 10년간 IT분야에서 일했다. 처음엔 ERP 개발을 하다 밀라노로 넘어오기 전 웹사이트에 관련해 경력을 키워왔다. 그리고 지금은 IT와 관련 없는 사람과 소통하는 직업을 찾고 싶다. 내 짧은 이탈리아어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이제는 기계가 아닌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삼일 전 받은 취업제안 메일로 송두리째 흔들렸다. linkedIn을 통해 내 경력을 본 리쿠르터는 내게 전 직장에서 했던 비슷한 개발일을 제안했고 경력에 따라 급여 수준이 달라진다고 했다. 기계가 아닌 사람과 일하고 싶은 나였는데 말이다. 지금의 급여는 바닥 수준이라 경력을 살리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마음이 흔들렸다. 바로 회신하지 않았다. 남편과도 이야기해봐야 하고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다인이가 마음에 걸렸다. 어제 보육원에 데리러 갔을 때 날 보자마자 내게로 기어 온 다인이. 그 달콤한 아이의 모습, 엄마를 향한 아이의 애절한 눈 빛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아 이직도 마음 내키는 대로 진행할 수 없다. 이직을 하면, 새로운 직장과 업무에 적응하고 개발자로 일하지 못한 그동안의 공백을 메우느라 스스로 더 바빠질 건데...... 아이를 바라보니 불끈했던 의지는 시들은 꽃처럼 흐들흐들해진다.


생각을 해보자.

지금의 직장은 앞으로 10년을 다닌다 하더라도 급여면에 있어서 크게 변화가 없을 것이고, 하는 일은 계속 단순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신분은 철저하게 보장된다. 직장을 다니면서 무슨 개인의 발전까지 바라겠느냐마는..... 아이가 크고 엄마의 손이 덜 필요하게 되는 시점이 오면 (근데 그 시기를 몇 살로 봐야 하는 건지?) 기회가 있을 때 조금 더 힘을 내서 스스로를 개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그렇다고 덥석 급여만 보고 움직이기에는 내가 가진 생각과 위배된다는 것이다. 다시 개발로 돌아간다면, 죽은 예전의 경력을 살리고 앞으로도 팔릴(?) 기회가 있는 분야라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이직을 한다 해도 내년 2, 3월에나 움직이겠지만 그때도 다인이는 여전히 갓 돌을 넘긴 아기다. 그렇다고 그 전의 나의 경력을 무시하고 사람과 소통하는 일을 하겠다고 고집한다면 그런 쪽에 경험 없는 신입에 나이 많은 나를 과연 누가 원할까 싶다.


일단 부닥쳐 보기로 했다. 메일을 쓰니 CV를 보내달란다. 별 욕심 없이 영어로 된 CV를 편집해서 보냈다. 저녁에 아이를 돌보느라 전화를 못 받고, 오늘 오전 회사에 있을 때 그 리크루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의 질문은 원론적이었다. 처음엔 개발 경력이 몇 년인지 물었다. 그리고는 왜 이직하려고 하는지 물었다. 순간 당황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일단 지금은 회사고 길게 통화할 수 없으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머릿속에 그의 질문이 맴돌았다. 왜 이직하려 할까. 열거하면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렇다고 딱히 개발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날아가버릴까? 아님 기적처럼 다시 기회가 올까.


어제저녁 리쿠르트 회사와 긴 전화통화를 했다. 전화를 하며 깨달은 바가 있다면, 이직은 절대 급하게 하지 말자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밀라노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어디 가서 든 팔릴 기술을 꽉 잡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경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개발에 다시 정력을 쏟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진정 다시 하고 싶다면 2,3년 후에 다시 시작하자. 리쿠르트 회사에서 연락이 온다는 것에 감사하지만, 회사에 들어가기 전엔 나와 회사는 동급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절대 쫄지 말고 내가 원하는 점을 꼼꼼히 따지자. 난 아직 일할 곳이 있다. 또 그냥 급여만을 생각하고 이직하기에는 내 상황이 그 정도로 despertated하지 않다. 다른 꿈을 가지기에도 어찌 보면 마흔도 젊은 나이다. 예전처럼 긍정의 마인드를 잃지 말자. 천천히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어떤가. 인생은 갈림길, 샛길 등으로 들어서면서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생기는 것 아니겠니가. 지금의 현실에 만족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직장인들처럼 오늘도 부동산과 잡사이트를 뒤적거리며 또 다른 미래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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