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소나이의 제주섬 이야기 Vol.10
'어라~. 저 사람 TV에서 많이 봤던 사람인데...'
얼마 전 서귀포에 있는 모 식당에 들렀다가 혼자서
식사 중인 남성 한 분을 흘깃 보았다.
식사를 하는 모습이 하도 엄숙하여 순례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동행한 일행과 대화중에도 드문드문 시선을 돌렸다.
혹시나 눈이 마주치면 서로 멎적을까 염려되어 눈알만 조심스레 굴렸는데 나의 기우였다.
남자의 시선은 밥상 사각 귀퉁이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 남자가 식사를 마치고 나간 뒤에야 정체가 생각났다.
먹방, 쿡방에 자주 나오는 요리사였다.
여행을 온 건지 방송 때문에 사전 취재를 온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 이집도 얼마 머지않아 여행객들로 붐비겠구나' 싶었다.
제주섬에 여행 오는 나그네들에게는 흑돼지, 국수, 해산물이 필수 코스이겠다.
제주섬에 왔으니 제주섬에서 유명한 맛집 탐방은 중요한 일정이다.
필자 또한 간혹 주말이면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맛집을 찾아 순례한다.
때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의외의 맛집을 발견하기도 하고,
때론 알려진 집에서 1시간여를 줄 서서 기다려 먹어보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입맛은 제각각이니 저마다의 맛집이 존재할 거란 이야기다.
몇 해 전 모 종편에서 방영한 착한 식당 찾는 프로그램에서 서울 살던 부부가 조용히 제주섬 어촌마을에 정착해 성심껏 음식을 제공하던
식당이 방송된 바 있었다.
주인 내외는 몇 차례의 제작진 설득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방송에 나오는걸 거부했다.
당시 주인장의 이유는 너무 알려지면 지금처럼 정성 들인 음식을 손님들에게
제공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집념이 어떠하던가?
필자 또한 궁금점을 참지 못하고 온갖 정보를 분석해 식구와 함께 그 집을 찾아갔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당분간 휴업한다는 자그마한 종이 글만 출입문에
붙어 있을 뿐 온갖 추측을 자아내게 했다.
그 뒤로 필자는 그 집을 찾지 않았다.
언젠가 그 주인 내외가 차려낸 음식이 문득 생각나면 찾아볼 요량으로
잊어버리고 지냈던게 벌써 몇 년이 흘러 버렸다.
얼마 전 들렀던 모 식당은 모임 회원분이 우연히 알게 된 식당이라며 소개해준 덕에 이젠 단골집
순위에 올려놓은 지경이다.
정갈하게 차려낸 음식, 1인 손님도 기꺼이 환영한다는 마음씀이며,
제주산과 국내산 식재료만 고집하는 주인장의 음식 철학까지.
문자로만 예약받는 소심한 주인장은 오늘도 싱싱한 해초와 로컬 재료로
은둔 고수의 싱그러움을 선사해 주었다.
물론 아름아름 소문을 듣고 찾아드는 손님들이 부쩍 늘어난 탓에
유명세를 타는 것이 시간문제라 생각되지만,
죄송하게도 아직은 혼자만 알고 싶은 보물 같은 음식점이다.
양은 풍족하지 않으니 대식가들은 불평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한끼 식사 12,000원을 주고 먹기에는 정성이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제주섬 음식도 호불호가 명백하다.
특히나 향토 토속음식은 더욱더 극명하게 갈린다.
그러다 보니 나그네들은 맛집을 찾게 되고, 검증된 맛을 찾으려 수고로움을 불사한다.
"육지서 오셨어요? 난 이집 음식 별론데... 쩝"
족히 20~30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하는 유명 몸국집 앞에서
담배를 피며 순번을 기다리던 우리 일행들에게
식사를 마치고 나와 담배를 꺼내 물던 나그네가 던진 말이다.
"그러게요~ 저도 처음엔 별맛을 몰랐는데 자꾸 먹다 보니 한 번씩 생각납디다."
"제주도 자주 오시나 봐요?"
"...아... 예..."
돼지뼈를 우린 국물에 모자반과 메밀가루를 더해 끓여낸 토속음식은
그렇게 깊은 맛을 전하기까지 시간과 경험을 필요로 했다.
제주섬 음식은 간이 심심하고 자극적이지가 않다.
심지어 빨갛고 새콤달콤한 맛으로 먹는 물회조차도 된장을 풀어헤친다.
많은 먹거리가 있지만 정착민들은 오래지 않아 딜레마에 빠진다.
몇 년 살다 보면 먹을게 없다고 하소연이다.
어릴 적부터 길들여지지 않은 다소 낯선 음식문화이다 보니
간혹 여행와서 먹는 나그네들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가족 외식을 할라치면 온통 고깃집 간판만 보인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가족 외식 1번지가 V**S 레스토랑이란다.
음식평론가 황교익씨가 TV에서 했던 말이다.
전혀 근거 없이 들리지는 않는다.
생전 샐러드바가 뭔지도 몰랐던 필자가 제주 이주 후 이곳을 벌써 몇 번째던가?
온통 잔재주로 뒤범벅이 된 음식들의 향연이라고 악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달리 애들 두셋 딸린 식구들이 외식을 같이 할 만한 마땅한
음식점이 흔치 않다는 이야기다.
냉철히 따져보면 어디 제주섬만의 이야기일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 '은둔 고수'의 주인장은 일체의 취재 자체를 거부 하노라 떡하니 써붙여 놓았다.
자신감이 충만한 건지, 아니면 정말 음식에 대한 열정인지는 몰라도 주인장의 용기가 가상하다.
문득 식당을 나서며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팔로워'였구나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늘 누군가의 말에 의존했다.
살아온 지난날이 그랬구나 싶었다.
자신이 직접 부딪혀 보는 모험을 싫어했다.
누군가의 경험과 정보가 시작이었고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말에 신뢰를 가지려 애썼고, 결과가 아니면 대충 나 자신과 타협했다.
오늘도 수많은 나그네들은 열심히 '팔로윙'을 하고,
'좋아요'를 누르며, 인증샷을 올리고 있을 터이다.
파이오니어(개척자)!
그래. 파이오니어 정신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파이오니어였다. 그러므로 팔로워가 존재하지 않는가.
탐험가의 자세가 필요하다.
일상이 그러하고, 인생이 그러하다.
제주섬 이곳엔 파이오니어가 필요하다.
어쩌면 대한민국이 그럴지도 모른다.
제주섬의 산업 생태계 모두가 그러하다.
그래서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지만 크게 들리지 않는다.
돈이 우선되는 이 사회에서 무모한 둔자는 드물기 마련이라했다.
말 그대로 온전히 음식에 도취할 수 있는 미식가적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실패의 두려움보다 새로움을 만끽했을 때 오는 희열을 간직하고 싶다.
여행의 즐거움은 검증에서 오는게 아니다.
나만의 온전한 시간에서 오는 것임을 기억한다.
음식에 요란한 뺑기칠 하지 않은,
그렇게 음식이 보약 되는 당당한 둔자가 만드는 먹거리들이 제주섬에 많이
생겨나고 대를 이어 두고두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그래서 제주섬이 참 힐링되는 섬이 될 수 있기를 더불어서 말이다.
며칠 전 제주섬에 온 이세돌은 파이오니어였다.
그는 자신의 체면보다는 실험을 즐겼다.
이세돌의 아내와 딸이 제주섬에 정착하게 되었다 했다.
딸이 국제학교에 다니게 된 연유라고 지역 언론에서 말했다.
집도 알아보고 한동안 쉬면서 제주를 즐길거라 했단다.
제주 음식은 뭐든지 잘 먹는다고도 했다. 특히 생선구이를...
각재기국이랑 뼈접착국은 드셔 보셨는지 소개드리고 싶다.
올레길 걷다 보면 한사발 천원짜리 순다리도 제격이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