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여자! 그녀의 이름은?

제주 소나이의 제주섬 이야기 Vol.11

by 제주섬소나이

"어이~. 마눌님! 우리 예전에 남원 쪽으로 넘어갈 때 우연히 지나간 그 시골길 어디쯤인지 기억나?"


서귀포에 얼마 전 나들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던진 질문이다.

제주섬 이주 불과 1여 년쯤 우리 가족은 휴일마다 열심히 제주섬을 구석구석 여행하느라 바빴다.

그때 목적지도 없이 마냥 시골마을로 들어선 한적했던 도로는 지금까지도 그 여운이 생생한 멋진 흥분으로 남아있다.

한적한 시골길 도로 양쪽으로 키 큰 이름 모를 나무들이 줄을 이었고,

목말라하던 애들을 위해 잠시 멈춰 선 시골 구멍가게는 그렇게 정감 있었다.

대충 어디서 어디 구간으로 넘어간다는 것쯤은 알았던 기억이라

아무리 생각을 더듬어도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다.

서로가 제주섬을 잘 알지 못했던 당시라 아내도 그 길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여기 어디쯤에서 빠졌던 것 같은데... 그때 그 길 다시 가보고 싶네..."

"이쯤 어디일 것 같은데 도무지 감이 안 오네... 쩝"


그렇게 우리 부부는 중산간을 연결하는 시골 한적한 그 길을 아쉬워하며

결국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의지한 채 집으로 향했다.

제주섬 이주가 몇 년 차인데 아직도 그 길을 못 찾고 있다.




최근 나날이 증가하는 개별여행객의 비율이 증가하며 렌터카 이용률이 그야말로 가파른 상승세다.

렌터카 업체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 예전에는 비수기에만, 그것도 경차에만 적용되었던

일일 9천원이란 렌터카 이용요금이 중형차로까지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제주섬 여행에 있어 렌터카를 필수로 생각한다는 반증이겠다.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으니 제주섬에는 웬만한 가정이면 1가구 2 차량이 기본이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는 악순환의 이유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행객들은 오죽하랴.

버스여행을 위한 안내서나 시스템이 개발되지만 불편점이 엄연히 있으니 당연한 현상이 아닐까?


"선배! 요즘 그런 말 알아요? 세상 살아가면서 꼭 새겨 들어야 하는 여자 말(言) 중 세 사람이 있데요."

"..."

"첫째는 어머님 말씀, 두 번째는 마누라 말씀, 그리고 세 번째는 네비래요."

"네비게이션?... 하하"

한물간 유머지만 몇년 전 후배를 통해서 들었을 땐 꽤 신선한 농이었다.


'띡띡---' 원하는 목적지를 설정하자 아리따운 음성의 여성은 도착 예정시간이며 최단거리 경로를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과속단속정보도 알려주고 과속 방지턱도 알려주며

여행경비 아끼라며 가까운 곳의 최저가 주유소도 알려준다.

참 살기 좋은 세상임에는 틀림없다.

여행 오기 전 계획된 숙소며 식당이며 여행지를 설정하면 하루의 일정을 차질 없게 보낼 수 있도록 조력하는 훌륭한 가이드이다.

간혹 지능지수에 약간씩 차이(?)나는 네비 아가씨들도 있지만...


아내와 한참 연애하던 그 시절만 하더라도 네비게이션은 귀한 존재였다.

강원도 골짜기를 지도 한 장에 의지한 채 차를 끌고 여행하던 그 시절이 불과 십삼사년 전이다.

길을 잘못 들어 뜻하지 않은 목적지로 가기도 했으며, 생각지도 못한 풍경을 마주하기도 했다.

한산한 시골길 메밀국숫집은 지금도 회상하는 맛집으로 기억속에 남았다.

생활이 편리해진 만큼 우리는 지도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자동차보험을 가입하면 보험회사에서 지도책 한권쯤 선물하던것도 기억에 선하다.


운전자인 내가 잠시 차를 세우고 지도를 탐독하며 몇 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어디쯤에서 몇 번 국도와 갈림길이 나오면 다시 몇 번 국도로 가야 된다는 경로를 중얼거리면 지금의 아내는 조수석에서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자칫 딴짓탓에 엉뚱한 길로 접어들면 조수석 조력자는 운전자인 내게 핀잔을 듣기 일쑤였고, 심지어 주유소를 찾지 못해 길가던 동네 주민에게

길을 묻기도 다반사였다.

그렇게 여행은 추억을 선물했다.

사소하지만 정감 있었고, 불편했지만 전혀 뜻밖의 기쁨도 선물하는 그런 여행이었다.

소위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가 가져다준 추억이다.


중간의 과정은 생략된 채 가장 빠른 길을 추천하는

디지털의 그녀는 때론 친절하지만 추억이 없다.

부득이 일정을 쪼개어 여행하다 보면 디지털의 힘을 빌려야 한다.

하지만 제주섬을 어느 정도 다녀봤거나, 정착한 이들이라면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감히 조언하고자 한다.

"그녀는 하루쯤 쉬게 둡시다!"라고 말이다.


제주섬의 구석구석에는 아직 숨겨진 보물들이 많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노루를 뜯어먹는 까마귀 때를 눈앞에서 목격했다.

그리고 그 너머 감춰진 들판 속으로 뛰어다니는 야생의 노루 무리들.

말 그대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제주섬에 살지 않거나 시골 한적한 곳으로 가지 않으면 마주하기 쉽지 않은 광경이다.

한라산 자락 중산간 도로에서 잠시만 우회도로로 벗어나면 또 다른 제주섬이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제주섬을 발견하다 보면 정말 제주섬이 사무치게 다가올 터이다.

빠른 길 보다는 일부러 돌아볼 일이다.

이왕 제주섬 오시거든 도시처럼 바쁘게 다닐 필요 있을까 싶은데,

"일행들 일정 맞출려면 어디 쉬운 얘기냐?" 핀잔

들을까 걱정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견해이다.

제주섬 구석구석 지도장 들고 무작정 돌다 보면 혹시 모를 일이다.

우리 부부처럼 몇 년이 지나도록 못 찾고 그리워만 할 그런 곳을 만날지...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직도 제주섬 곳곳이 궁금하다. 수년째 살면서도 말이다.


아내의 차량에 탑재된 네비게이션에는

음성안내 옵션이 있었다.

기계치인 아내는 생각지도 못한 옵션을 혼자 만지작하다가 굵직한 매너 좋을 것 같은 남자 음성으로 바꿔 주었다.

아내는 너무 좋아했다. 신선하다며...

사람은 다 똑같은 법인가 보다. 남자나 여자나.


필자의 차에는 오늘도 여전히 똑똑한 묘령의 아가씨가 동승한다.

그녀의 이름은 '네비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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