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
나는 지금 독일의 한 소도시 근처에 있는 한 마을에 살고 있다.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마을과 마을을 가로질러 시내 중심에 있는 회사로 출근도 하고 있다. 내가 사는 지금 집은, 원래 파트너의 부모님 집인데 사정상 사실 잠시 빌려 살고 있다. 집은 오래된 전통 독일 가옥으로 뒤로는 집에 딸린 넓디넓은 황량한 목초지가 있고 그 목초지과 집 사이에는 말들이 겨울마다 머무는 마구간과 잔디를 심어놓고 나무로 된 피크닉 테이블이 자리한 마당이 있다. 여느 근교에 사는 가정들과 마찬가지로 마당에는 사과나무과 체리나무도 심어져 있다.
독일에서 체리가 한창 익을 시기는 딱 6월 중순에서 7월 초. 지금은 그 빨갛게 달아오른 체리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나무마다 열리는 체리의 종류도 제각각. 어떤 체리나무는 노란색과 빨간색의 중간쯤의 색을 가진 체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데, 쓸 것이라고 생각하고 먹어보면 꽤나 달달하다. 혹은 파트너의 부모님이 가지고 계신 산속에 있는 목초지 한가운데 자리한 체리나무들 중 하나는 유독 진한 체리색의 열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역시나 굉장히 달았다. 그렇게 우리는 6월 내내 주말마다 근처 부모님 소유 목초지의 체리란 체리는 다 수확했던 것 같다. 집안에 넘치고 넘치는 체리를 어찌하지 못해 만들어 놓은 체리 잼이 냉장고를 반이나 차지하고 말았으니.
나에게 이 체리 수확의 시기는 굉장히 새로웠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부끄럽지만 체리가 이렇게 큰 나무에서 열리는지도 몰랐다.(체리가 포도나무 같을 곳에서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한국에서 체리를 마음껏 먹어본 적인 있나 모르겠다. 나는 사실 이 체리를 통해서 독일인들을 다시금 부러워하게 되었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금방 접할 수 있는 자연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나무에서 따먹는 열매라, 이게 바로 아이들이 자라며 접해야 할 환경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독일은 튼튼한 지역사회를 자랑하는 국가이니, 이 튼튼한 지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베를린이나 뮌헨 같은 큰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연민과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하면서, 이렇듯 체리, 딸기, 사과와 같은 열매를 매년 자연스레 돌아오는 연례행사처럼 가까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 곳에서 다시금 인간은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상기한다.
그럼 나는 이 글을 마치고 담장을 넘어온 무르익은 옆집 체리나무를 탐하러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