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ng-od, The oldest tattoo artist
2017년 여름,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늙은 타투이스트 Whang-od를 만나러 필리핀으로 향했다.
Whang-od는 필리핀의 Kalinga 부족의 타투이스트로 1917년 생, 즉 올해로 만 101세가 되었다.
그녀는 이미 해외에서는 유명인사이다. 가끔 해외 유명 타투 이벤트에도 참석하기도 한다는데 요즘은 연세가 많이 드셔서 못 가시는 것 같다. 그녀에 대한 다큐나 비디오는 유튜브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만큼 필리핀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세계 각지에서 그녀에게 타투를 받으러 필리핀으로 몰려든다. 게다가 그녀의 부족이 사는 마을은 오지 중에서도 오지여서 많은 히피 여행자들이 찾아오곤 한다. (+ 그곳은 정부의 간섭도 피할 수 있는 오지이기 때문에 위드는 동네 누구든 즐겨하는 널리고 널린 것 중에 하나이다) 젊은 필리핀의 타투아티스트들은 이 마을의 타투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포함한 문서작업을 하고 있다. 실제로 내가 갔을 때 마닐라에서 온 한 타투이스트를 만날 수 있었고, 그는 자신이 만든 카링가 부족 타투에 관련한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기도 했다. 대학교 전공서적만큼 두꺼웠고,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카링가부족의 사람들의 상당수가 타투를 온몸에 새겨야 했다. 남성들은 강인해 보이기 위해. 혹은 다른 부족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그리고 여성들 또한 타투를 새겨야 했는데, 그 이유는 타 부족의 침략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외지로부터 침략한 남성들이 온몸에 타투가 가득한 카링가 부족의 여성들은 데려가지 않았다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 부족의 여성들 사이에서는 타투가 미와 부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타투이스트들은 여성들에게 타투를 새겨주는 대가로 그 여성들의 가족으로부터 수확한 쌀이나 새끼돼지 등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 부족은 더 이상 신변의 이유로 타투를 새길 필요는 없어졌지만, 이런 이유로 왕 오드는 계속 타투를 사람들 몸에 새겨 나갔고, 지금까지도 이 곳을 방문하는 방문객에게 타투를 새겨주고 있다. 그렇게 그녀는 '카링가 부족의 마지막 타투이스트'로 불린다.
우리는 필리핀에서 10일간 머물렀는데, 그중 그녀를 만나러 그녀의 부족이 사는 마을로 가는 데만 마닐라에서 꼬박 이틀이 걸렸다.
마닐라에서 banaue까지 나이트버스로 9시간 (공식적으로 9시간이지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우리가 마닐라에서 탔던 나이트 버스는 예전에 우리나라를 열심히 달렸을 한국에서 수입해 온 버스였다. 버스 좌석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촌스러운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banaue에서 Bontoc까지 봉고차 같은 버스는 타고 2시간
그리고 Bontoc에서 Buscalan 까지 동남아 특유의 툭툭 버스를 타고 또 1시간
Buscalan에 도착해서는 마을까지 한 시간 가량 산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마을 사람들이 매일 이 길을 짐을 짊어지고 오르락내리락한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짐을 이고 산길을 오르다 보면 마을 어귀가 보인다.
마을로 올라가던 길에 마을 사람들이 가구를 들고 이 길을 올라가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었다. 것도 장롱만큼 큰 옷장을 들고. 나는 배낭 하나만 들고 이 길을 오르는 데도 오분이 지나니까 온 몸에 땀이 범벅이 되었었다. 이 더운 날씨에 매일을 이렇게 짐을 들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을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이 나있지 않은 마을을 방문하는 건 난생처음이어서 사실 신기하기도 했다. 특히나 마을에는 아이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학교에 가려면 매일을 한 시간 넘게 걸어 다녀야 한다. 생각해 보면 엄마의 고향인 경상남도 깡시골 동네에서도 엄마와 삼촌들은 저렇게 몇 시간씩 걸어서 학교를 오가곤 했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버스 위에 올라타 바람을 맞으며 달릴 수 있었다. 실제로 이렇게 한 시간이 넘게 필리핀의 고불고불한 시골길을 달렸는데, 중간에 10분 정도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는 바람에 우비를 입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가서는 정해진 몇몇 호스트의 집에서 머물 수 있다. 소정의 금액을 호스트에게 지불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 금액은 그다지 큰 금액은 아니지만, 왕오드가 유명해지는 속도로 보았을 때는 조만간 금액이 더 올라갈 것 같기도 하다.
마을 전체를 이 조그마한 돼지들이 휩쓸고 다니고 있었다. 마을 어딜 가든 돼지와 개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도시에서 자라오고 생활해온 나에게는 진귀한 광경이기도 했다. 특히나 엄마 돼지를 쫒아 마을 여기저기를 뒤둥뒤둥 뛰어다니는 새끼 돼지들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타투를 받는 도중에도 닭들이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었다.
당연히 기계를 이용하지 않은 손 타투로, 그녀를 두 개의 나무 막대기를 들고 타투를 그려간다. 그중 하나의 나무 막대기 끝에는 바늘이 달려있고 다른 하나의 나무 막대기로 두드려 바늘로 상처를 내고 잉크를 집어넣는다. 이러한 타투 방식을 이 부족에서는 바톡 batok이라고 부른다.
Whang-od 할머니는 나이가 무색하게 아주 정정해 보였다. 2017년 상반기에는 건강상의 문제로 잠깐 쉬셨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아주 좋은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계셨다. 한 사람씩 타투를 해줄 때마다 중간에 길게 휴식시간을 가지시긴 하는데, 그 연세에 아직도 이런 집중력을 가지고 계시다는게 대단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어느 한 필리핀 젋은 가수의 팬이라고 한다. 필리핀 사람들은 할머니에게 그의 사진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고 했다. 마당 한 쪽에 걸려진 잘생긴 필리핀 남성의 사진과 함께 할머니의 곱게 땋은 머리와 그 위로 둘려진 두건은 '나 아직도 소녀예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타투를 받으러 가면 타투받을 사람 순서도 정해주시고 부족의 언어밖에 하지 못하는 Whang-od와 의사소통도 담당해 주시는 아저씨가 계시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아주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미 필리핀에서 온 여행객 무리와 외국인 방문객 몇 명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아저씨는 우리에게 넌센스 퀴즈를 내주시기도 했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기다리는 우리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셨다. Whang-od를 비롯해 십대인 그녀 동생의 손녀 2명에게 또한 타투를 받을 수 있다. 사실 왕오드 할머니는 이미 연세가 많으셔서 그녀의 타투는 정교하지 않은데, 어린 손녀 2명에게 받은 타투들을 보니 어린 손녀들의 타투는 손 타투임에도 불구하고 기계 타투 못지않은 정교함을 볼 수 있었다. 타투를 받을 때는 카링가 부족 타투 중에서 마음에 드는 타투를 골라서 받을 수 있는데 우리는 정하기가 어려워 왕오드 할머니께 우리에게 주고 싶은 타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우리의 등에는 카링가 부족의 타투가 새겨졌다. 왕오드 할머니께서 나에게 준 타투는 '독수리'이다. 이 독수리가 내가 어디를 가든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남자친구에게는 '전갈'을 그려주셨다. 전갈 문양은 부족에서 전사 중의 왕을 뜻한다고 하셨다. 마침 남자친구의 성도 König, 독일어로 왕이라는 뜻, 이라서 남자친구는 타투가 가진 뜻과 함께 타투를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손 타투는 확실히 기계 타투와는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기계 타투가 아픈지 손 타투가 아픈지 물어왔는데, 내 생각은 이렇다. 기계 타투는 아무래도 손 타투보다 훨씬 바늘이 침투하는 횟수가 많고 고통이 있지만 짧게 끝난다. 반면 손 타투를 기계 타투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그만큼 기계 타투보다 강도가 조금 약한 고통이라도 그 고통을 오래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어느 타투 방법이 더 아팠다는 결론은 못 내릴 것 같다. 얇고 길게 혹은 굵고 짧게의 차이랄까?
아,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아무는데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 기계 타투는 며칠이 지나면 완전히 아무는데 반해 이번에 받은 손 타투는 완전히 아무는데 거의 한 달이 걸린 것 같다. 특히나 전통 방식의 타투이기 때문에 감염이 걱정돼 더욱더 각별히 신경써야 했다.
이 마을에서 삼일을 머물렀는데, 타투를 받지 않는 시간은 호스트의 집에서 제공해 주는 밥과 함께 간단한 요리를 해 먹거나, 호스트의 나눔을 사람들과 함께 즐기거나 (If you know what I mean), 낮잠을 자고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된다. 마을에서 만난 다른 여행자들과 도란도란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 또한 재미있었다.
그렇게 마을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며칠 뒤 우리는 마닐라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평화롭고 선진 된 기술과 단절돼 있는 마을에 있다가 복잡 복잡한 도시로 돌아오니 마치 지난 며칠이 꿈만 같게 느껴졌다. 되돌아보니 왕오드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녀에게 타투를 받으러 필리핀까지 날아온 모든 일이 아득한 꿈같았다. 게다가 우리의 몸에는 이곳의 부족 타투라는 뜻 깊은 기억이 새겨지지 않았나. 항상 이런 특별한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면 여운이 오래 남곤 하는데, 이런 여운들을 차곡차곡 담아두다 보면 언젠가 그곳으로 꼭 돌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필리핀은 우리에게 휴가지로 유명한 곳이다. 세부, 보라카이 등지에서 한해에도 수백만 명이 피서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그런 관광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진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문화가 가득한 나라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지켜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왕오드를 방문하고 돌아와 마닐라를 며칠간 둘러보았다. 마닐라의 빈민가 지역에서 우리는 길가에서 발가벗고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필리핀은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나라이고 피서지로 유명한 곳이어서 낯선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 곳 수도에 와보니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필리핀에 다시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보지 못한 그들과 그곳이 아직도 너무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간다면 더욱 뜻깊은 일을 해야겠다.
p.s
이 글을 읽고 혹시라도 왕오드를 만나러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것만은 꼭 당부하고 싶다.
1. 이 마을에 갈 때는 왕오드를 위해 물티슈를 가지고 가길 바란다.
2. 마을 아이들을 위해 학용품을 가져가면 좋다.
3. 자기가 먹을 음식은 미리 챙겨가야 한다.
4. 또한 마을 아이들을 위해 간단한 간식거리를 가져가면 좋겠다.
5. 마을에서 너무 광관객 행세를 한다던가, 마을 사람들 한테 방해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타투를 받으러 가는 사람들은 단지 방문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6. 마을에 위드가 널렸다고 해서 그것을 마을 밖으로 가지고 가면 절대 안 된다. 필리핀 당국에서 날을 곤두서고 단속하는 항목 중에 하나이다.
7. 오픈된 마음으로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소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