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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u Poloi Mar 20. 2018

첫 번째 모로코

2014년의 기억을 더듬다

문득 모로코에서 길고 긴 기차를 탔던 기억이 났다. 4년 전이 었던가. 현지인들에 북적이던 기차를 8시간이나 타고 달렸는데, 혹여나 자리를 뺏길까, 가방이라도 도난당할까,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도 참고 8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창밖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로코의 풍경들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었고 기차 안은 그와 대조되게 복도까지 사람이 빽빽하게 차있던 그 모습이, 그리고 그때의 냄새와 색깔이 그립다. 그때 그 기차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기차였더라? 떠올리는데 한참이 걸렸다. 불과 몇 년 전 일인데 이렇게 떠올리기가 힘들다니 참 우리의 기억력이란 가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이 기록해 둘걸, 이렇게 또 후회를 한다.


 단지 사하라를 보고 싶은 마음에, 거기다가 좋아하는 책의 주인공이 스페인에서 모로코로 배를 타고 들어갔다는 이유에, 무작적 스페인에서 모로코로 가는 배를 탔다. 스페인 최남단에서 모로코 땅이 보일만큼 멀지 않은 거리였다. 사전조사는 거의 하지 않은 상태였고, 설레는 마음만 앉고 갔었다. 처음 본 모로코의 모습은 공포와 실망이었다. 혼자 여행하는 어린(그때 나는 20대 초반) 동양인 여자를 다들 신기한 듯 흘긋흘긋 보는 것, 그리고 때때로 끈적한 눈빛들. 거기다가 어린아이들이 돈을 구걸하는 모습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왜 내가 이런 곳까지 혼자 오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모로코에 일주일을 생활한 뒤, 모로코는 나에게 신비를 가득 품은 곳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무작정 그리운 곳 중에 하나이다. 또한 그 기억은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에, 그곳이 위험하거나 혹은 문화가 아주 다르거나 어찌 되었든, 경험하는 것 그리고 모험하는 것, 더 나아가 나만의 여행을 꿈꾸는 계기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그때 모로코에 간 것은 필연이 아니었나 싶다.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모로코에 도착했던 날, 탕헤르의 항구에서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한 소년이 호텔을 찾냐며 쫒아왔다. 나는 이 소년이 나에게 원하는 건 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따라나서기로 했다. 소년이 안내해주는 데로 숙소를 찾아가고, 메디나를 구경시켜 준다는 말에 함께 메디나 구경도 했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소년에게 100 디르함을 쥐어 주었다.(100 디르함은 아마 10유로쯤 될 것이다) 그때는 모로코 물가에 익숙해지지 않았던 상태였고, 가진 돈은 100 단위가 넘는 지폐뿐이었기에 소년에게 100 디르함을 건네주었다. 돈을 건네받은 소년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렇게 소년과 인사를 하고 돌아왔는데, 아직까지도 그 소년이 놀란 이유가 궁금하다. 그 돈이 소년에게 성이 차지 않은 돈이었던 걸까? 아니면 소년의 가족이 며칠을 먹고살 만큼의 큰돈이었던 걸까. 나는 후자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택시비도 10 디르함 정도였고, 음식점의 음식도 10 디르함 정도밖에 하지 않았던 걸 생각해보면 100 디르함이라는 돈은 소년에게 아주 큰돈이었을 것이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 소년에게 내가 큰 잘못을 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그 소년은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관광객을 괴롭히며 살아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때의 생각 없던 관광객 한 명이 소년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또한 그 소년은 나에게 커다란 가르침을 준 셈이기도 하다. 나는 한 소년의 미래를 걸고 나의 가르침을 얻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오버하는 걸까..ㅎㅎ). 그래서 가끔 궁금하다. 그 소년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음에 탕헤르에 가게 되면 한번 마을을 끊임없이 돌아다녀볼까..? 


 모로코에서 나는 본의 아니게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시외버스만 타게 되었다. 사실 정보 없이 간 탓에 뒤늦게서야 조금 더 비싸지만 깨끗하고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는 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때는 7월 말,  모로코의 날씨는 미친 듯이 뜨거웠고, 내가 탔던 버스는 에어컨 시설은 난무하고 창문도 2-3개가 전부였다. 그날은 유난히도 더웠던 날이었던 것 같은데 그 버스를 타고 고르지 못한 모로코의 길을 몇 시간 씩이나 달렸었다.  온몸은 물론 입고 있던 옷마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었다. 그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모로코 속의 산토리니, 파란 집들이 아주 인상적인 셰프 샤우엔이라는 귀여운 도시였다. 그때 셰프 샤우엔의 첫인상은 마치 오아시스 같았다. 이상하게도 그 버스와, 그 도시의 첫인상은 너무 강력하게 남아있다. 작년에 우연히 셰프 샤우엔에 다시 가게 되었는데 그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 동시에 내 시야도 넓어진 상태여서 그랬을까, 느낌이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셰프 샤우엔은 여전히 아름다운 동네였다. 


 원래는 페즈에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셰프 샤우엔의 버스터미널에 가서 버스표를 구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표가 다 팔린 후였다. 마침 버스정류장에 인도네시아에서 아프리카로 와 봉사단체에서 일을 하다가 잠깐 모로코로 휴가 왔다는 두 친구를 만났고 함께 메크네즈라는 도시로 가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메크네즈는 우리에게 더욱 모로코다운 모로코를 보여주었다. 그곳은 페즈만큼 유명하지도, 페즈만큼 색깔이 진한 곳도 아니었기에 모로코다운 이미지를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충분한 곳이었다 다. 아마 페즈에 갔다면 유명한 염색공장이나 메디나를 보았겠지만 나는 메크네즈에 왔기 때문에 모로코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행은 이렇게 어찌 될지, 어떤 색깔을 보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인가 보다. 페즈에 못 가본 것이 아쉬워서 일 년 전 페즈에도 다녀왔다. 제일 복잡한 골몰길로 유명한 페즈의 메디나를 걸어다는 것만으로도 페즈에 가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역시나 페즈는 색깔이 강한 곳이었고, 염색공장을 비롯해 볼 것도 많은 곳이었다.


 내가 모로코에 갔을 때 모로코는 한참 라마단 기간이었는데, 메크네스에서 마침내 라마단이 끝났다. 라마다 기간 중에 아랍인들은 해가 떠있는 시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관광객을 상대로 한 음식점이 아니고서야 음식을 먹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라마단 아침은 해질녘쯤에 시작되고 새벽 2-3면 점심을 먹는 시간이다. 도시 전체가 이 시간이면 시끌벅쩍 여기저기 노랫소리와함께 방송이 들린다. 그리고 그 라마단의 끝에 사람들은 축제를 벌린다. 아마도 라마단 기간에 모로코를 가고 그 끝에 메크네스에 간게 신의 한수가 아닌가 싶다. 그들의 문화를 더 깊게 알게 된 것 같았다.

 메크네즈에서 두 인도네시아 친구들과 헤어져 오랫동안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마라케시였다. 마라케시는 사하라를 가기 위한 시작점이었다. 사하라를 가기 위해 여행사에 컨택하고, 세계 곳곳에서 온 14명의 일행들과 사하라 투어를 며칠간 하게 되었다. 중형의 벤을 타고 우리 일행은 잊지 못할 사하라 여행을 했다. 길고 긴 이동시간이었지만 모두들은 같은 설렘을 안고 사하라에 향하고 있었기에 가는 길목마다 웃음이 끈이지를 않았다. 사막의 밤하늘에 뜬 별들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쏟아지는 별들은 나의 꿈과 닮아있었고, 그보다도 훨씬 찬란한 동시에 묘함을 품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밤새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다. 사실 별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어떤 이야기도 사막의 밤에서는 특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마도 각자가 알고있는 무서운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던 것 같다.마치 어릴적 친구들과 나란히 방안에 누워서 그랬던 것 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깜깜한 사막의 밤, 모래언덕을 함께 올랐다. 사막에서는 그 낮은 언덕에 올라가는 것조차 참 많이 힘이 들었다. 누가 먼저 올라가나 내기를 하며 올라간 Dune, 그 위에서의 차가운 공기가 아직도 어딘가에 남아있는 것 같다

 



 사하라 사막 일정을 마치고 다시 마라케쉬로 돌아갔다. 사하라 사막 여행 일행중 한 친구는 알고 보니 마라케쉬에서 같은 호스텔에 머물고 있었고, 마침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는 비행편도 같았다. 그 친구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뉴욕의 영화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마라케쉬에서 남은 하룻동안 그 친구와 함께했다. 마침 그 친구는 마라케쉬에 살고 있는 스페인인과 모로코인 친구들을 알고있었고, 그렇게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마라케쉬의 밤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여담이지만 마지막날 밤 음식을 잘못먹었는지 다음날 우리둘은 비행기에서 고생 꽤나 했다. 지나고 보니 빠듯한 시간 탓에 마라케시에서 가 보고 싶었던 몇몇 장소를 못 가본 것이 아쉬운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모로코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또 돌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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