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출처: 김유정, 동백꽃 중에서)
노란 동백꽃,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라고 한 구절을 읽으면서도 의심 없이 빨간 동백꽃인 줄 알았다. 소설에 나오는 동백꽃이 생강나무 꽃이란 사실을 ‘김유정’ 문학촌에 가서 알게 되었다.
강원도를 포함한 중북부 지역에서는 생강나무를 산동백나무 또는 동백나무로 불렀다고 한다.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는 이 지역에서는 생강나무 열매에서 기름을 짜 여인들의 머릿결을 다듬거나, 밤을 밝히는 등잔 기름으로 이용했단다. 남쪽 지방에서 동백나무로부터 기름을 얻는 것처럼 생강나무에서 기름을 얻었기 때문에 이름도 동백나무라고 했다는 것이다. 춘천 태생인 김유정이 묘사한 동백꽃은 남부 지방 해안에서 봄이면 피는 상록교목의 붉은 동백꽃이 아니라 자신의 고향에 지천으로 널려 있던 노란 생강나무 꽃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래 ‘소양강 처녀’에 나오는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라고 하는 노랫말 속에 있는 동백꽃 역시 생강나무 꽃을 말한다.
‘노란 동백꽃,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라고 꽃의 특징을 읽으면서도 붉은 동백꽃으로 난 이해했다. 노란 동백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작가가 붉은 동백꽃을 잘못 기술했거나, 다른 꽃을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갖지 않았다. 아무 의심 없이 붉은 동백꽃으로 지레짐작하고 책을 읽었다.
‘소양강 처녀’를 따라 부르면서도 동백꽃이 추운 소양강 변에서는 피고 질 수 없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천자문을 배우면서 하늘은 푸른데, 왜 검다고 하느냐며 공부하기 싫다고 했다는 옛이야기 속 학동보다도 나는 어리석다.
이른 봄 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생강나무는 노란 꽃을 피워 봄이 왔음을 알린다. 나무 중에서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린다. 인가 근처의 야산에서는 이월 말쯤, 깊은 산에서는 삼, 사월에 걸쳐 꽃이 핀다. 꽂은 거의 한 달 정도 피어 있는데, 나중에는 진달래와 섞여 봄을 알리는 데 한몫한다. 노란 꽃이 지고 나면 콩알만 한 열매가 열린다. 초록빛에서 노랑, 분홍을 거쳐 검은빛을 띤다. 가을이 되면 셋으로 갈라진 커다란 잎이 노란색으로 물든다. 생강나무의 한해살이는 노란 꽃으로 시작하여 노란 단풍으로 마감하는 것이다.
생강나무의 나무껍질은 회색을 띤 갈색이며, 표면은 매끄럽다. 우리나라에 생강이 들어오기 전에는 나무껍질과 잎을 말려서 가루를 내어 양념이나 향료로 썼다고 전해진다. 차나무가 자라지 않는 추운 지방에서는 차대용으로 이용되었는데, 어린싹이 참새 혓바닥만큼 자랐을 때 따서 말렸다가 차로 마시기도 하고, 연한 잎을 따서 말린 뒤에 찹쌀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겨 먹기도 했다고 한다. 향긋한 생강 냄새를 즐긴 것이다.
산에 있는 생강나무보다 조금 앞서, 마을 부근의 빈터나 밭둑에는 얼핏 보아 생강나무 꽃과 똑같은 꽃이 피는 나무가 있다. 바로 산수유다. 나무껍질을 보면 매끈한 것은 생강나무, 껍질이 갈라지고 얇게 벗겨지는 것이 산수유다. 두 나무 모두 여러 개의 작은 꽃이 모여 핀다. 꽃만 보아서는 구별이 쉽지 않은데, 산수유는 꽃자루가 길고 꽃잎이 네 장, 생강나무는 꽃자루가 짧고 꽃잎이 여섯 장이다.
봄이 온 것을 먼저 알려주는 산속의 생강나무, 마을의 산수유 꽃 모두 노랗고, 구별이 쉽지 않을 정도로 닮았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아이도 노란 옷을 입고, 노란 버스를 탄다. 어둠에서 깨어나, 새로 시작하는 것은 모두 노랗다. 그래서 봄엔 노란 물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