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화 묘목은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잔뿌리도 보이지 않고, 줄기엔 털처럼 보이는 가는 가시만이 무성했다. 동쪽 울타리에 네 그루를 심었다. 몇 주가 지나자 한 그루에서만 조그만 싹이 밑동에서 나왔다. 나머지 세 그루는 죽은 듯이 변화가 없었다. 뽑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내 버려두었다. 싹이 돋았던 한 그루마저 지나다니는 발길에 싹이 부러지고 난 후 다른 것들과 같은 몰골로 바뀌더니 영영 살아나질 않았다.
장마가 시작될 무렵, 죽은 모양을 하고 있던 세 그루에서 조그만 싹이 돋기 시작했다. 새로운 땅과 바람에 해당화가 적응하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는 줄 미처 알지 못했다. 척박한 땅에서 꽃이 피고, 그윽한 향을 풍기기 시작한 해당화엔 잔가시가 가득했다. 자신이 힘들게 키워낸 꽃을 보호하고,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서일까.
꽃이 예쁘고, 가시가 있는 화초를 주변에서 많이 본다. 태양 아래에서 흐드러지게 피는 장미가 대표적이다. 자그마한 꽃에 짙은 향기를 가진 탱자에도 거친 가시가 있다. 이런 가시는 줄기가 진화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가시는 인간뿐 아니라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온갖 동물과 해충으로부터 꽃을 온전히 지켜 자신의 씨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다. 꽃이 예쁘지도 않고, 짙은 향기도 없지만, 가시를 가진 식물도 있다. 선인장은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잎 대신 가시를 만들어 냈다. 수분의 증발량을 최대한 줄이려는 몸부림의 흔적이 바로 가시다.
봄이 되면 새순을 나물로 먹는 엄나무에도 억센 가시가 있다. 엄나무 새순을 사람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산속의 초식동물도 새순을 좋아해서 돋아나는 즉시 먹어 버린단다. 먹을 것이 부족한 초봄에는 엄나무 새순이 안성맞춤의 먹거리인 것이다. 쌉쌀한 새순에 산삼 버금가는 약효가 있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나무는 자기의 새순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엄나무가 사람 키 높이 이상 자라면, 가시는 점차 사라진다고 한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고, 동물의 주둥이가 닿지 않기 때문에 굳이 가시를 만들어 내면서까지 새순을 보호할 까닭이 사라진 탓이다.
물고기에게도 가시가 있다. 썩어도 준치라고 하는 준치는 오월 단오 때 잠시 나왔다가 들어가는데, 비늘이 유난히 크고, 가시가 매우 많으나, 생선 중에서 가장 맛이 좋다고 하여 진짜 생선이라는 뜻의 ‘진어(眞魚)’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준치는 유난히 가시가 많은 생선으로 가시가 살 틈에 온통 박혀있어, 먹기가 까다로운 것으로 치자면 준치를 따를 만한 생선이 없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옛날 사람들이 준치를 너무 즐겨 먹어 멸종의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그러자 용왕께서 준치에 가시가 많으면 사람들이 쉽게 잡지 먹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모든 생선의 가시를 하나씩 빼서 준치의 몸에 꽂아 주어 가시 많은 생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준치가 자신과 종족을 위해 많은 가시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것은 식물이 가시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가시는 순우리말로 아내, 여인이라는 뜻도 있다. 찔리면 아픈 가시와 같은 말이다. 사람 중에도 톡톡 쏘는 여자를 보면 가시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예부터 예쁜 여자는 가시가 있다고 했다. 본래 가시가 있는 여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예쁘다 보니 남자의 눈길을 많이 받고, 집적대는 손길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시를 만들어 낸 지도 모를 일이다. 말투도 성격도 가시처럼 날카로운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무기였음이 틀림없다. 예쁜 꽃을 갖기 위해 가시에 찔리면서도 가지를 꺾으려 달려드는 인간의 못된 속성이 남자에게도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음이다. 여자는 가시가 있고, 가시는 바로 여자를 상징한다. 가시가 아내, 여인을 나타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엄나무 가시가 사라지듯 가시도 사라지고, 세상일에 무뎌진다. 미모가 뛰어났던 사람도, 남들보다 능력이 월등했던 사람도 다름이 눈에 띄지 않는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사라진 탓이다. 가시가 없는 사람은 잊힌 사람인 것이다. 가시 있는 꽃, 가시 있는 여자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