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풍 박석준 Jul 17. 2020

목화를 심다

  가을 햇살에 빛나는 하얀 목화송이가 카트를 타고 이동하던 내 눈에 띄었다. 골프장에서 관상용으로 심은 목화였다. 어릴 때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만남의 증표를 남겨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카트에서 내려 얼른 활짝 벌어진 송이 하나를 땄다. 내 거친 손길을 마다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인 목화는 화려한 모양도 진한 향도 없이 따뜻함만 갖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누구도 내 행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길옆 화단에 잔뜩 피어 있는 꽃 같아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그걸 왜 땄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목화송이는 솜이 씨를 감싸고 있는 것인지, 씨가 솜을 움켜잡고 있는 것인지 까만 씨와 하얀 솜이 서로 엉겨 붙어 있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솜에서 씨를 하나씩 떼어냈다. 이듬해 봄, 종이컵에 상토를 담아 목화씨를 심었다. 베란다 양지바른 곳에 두고, 싹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대부분 씨앗은 일주일 정도면 싹이 트는 것이 보통인데,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 일이 지나도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이십여 일이 지난 후, 손으로 상토를 헤집고 씨앗을 꺼냈다. 겉은 멀쩡했지만, 손가락으로 집어 힘을 주자 속이 삐져나오며 역한 냄새가 났다. 싹을 틔우지 못하고 썩어 있었다. 물도 충분히 주고, 온도도 발아하는데 적당했는데, 싹이 트지 않고 썩어 버린 이유를 알지 못했다. 뒤늦게 목화 자신이 쳐놓은 장벽, 씨에 붙어 있는 솜과 기름이 발아에 필요한 수분 흡수를 막았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았다. 씨앗을 심기 전에 겉에 있는 기름을 제거하고 심어야 했다. 옛날에는 나뭇재에 씨를 버무려 두었다가 심었다고 한다. 제멋대로 땅에 내려앉아 싹이 트는 잡초와 달리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 목화였다. 

  목화씨 발아에 실패한 후, 목화와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사방을 뒤져 찾기 시작했다. 책과 종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책상에 앉아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기껏 찾았지만 대부분 파종 시기가 지난 내용이었다. 인연은 우연히 맺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산나물을 소개하는 블로그에서 모종 한판을 구했다. 택배로 온 모종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일부는 줄기가 꺾이고, 쏟아진 흙에 잎은 상처투성이였다. 심하게 다치지 않은 열댓 개를 골라냈다. 만나기 어려웠던 만큼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화단에 조심스럽게 옮겨 심었다. 비바람이 칠 때마다 마음을 졸이며, 제대로 뿌리 내리길 바랐다. 웬만큼 자라기까지 비바람에 줄기가 쉽게 꺾이고, 병충해에도 약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질 좋은 화학 섬유가 등장하고, 따뜻한 소재의 솜들이 범람하는 요즘, 목화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솜바지 저고리, 솜이불, 무명옷, 천 기저귀 등은 이젠 볼 수 없는 귀한 물건이 되어버렸다. 눌린 솜을 도톰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던 솜틀 집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목화의 쓰임새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은밀하고, 중요한 신체 부위를 감싸는 소재로 아직도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목화 키우기에 집착하도록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목화를 심었던 경험도 없고, 그저 하얗게 핀 목화를 보며 예쁘다고 생각한 것이 전부였던 내가 드디어 곁에 두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해살이풀인데도 여러 해를 사는 나무를 연상시키는 목화(木花)가 화단 한자리를 차지했다.

  햇볕이 뜨거워지면서 목화에는 연한 베이지색 꽃이 피기 시작했다. 꽃잎 색이 연분홍으로 변할 무렵, 꽃잎 아래 씨방의 배가 불러오더니 꽃잎이 떨어졌다. 그 자리엔 녹색을 띤, ‘다래’라고 불리는 열매가 모습을 드러냈다. 벌, 나비와 치른 대낮 정사의 결과였다. 시간이 지나자 잔뜩 불거진 다래는 누렇게 변하면서 네 개의 실금을 경계로 벌어졌다. 하얀 솜이 네 개의 방에서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까맣고 끝이 뾰족한 씨를 솜이 감싸고 있었다. 햇빛과 시간이 꽃송이를 이렇게 솜으로 탈바꿈시켰다.

  서리가 내릴 때까지 목화는 끊임없이 하얀 목화송이를 만들어 냈다. 자연이 이룬 조화에 넋을 잃고 있을 때, 문득 목화를 이용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도와 습도만 맞으면 싹이 트는 다른 식물과 달리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만 싹이 트고 자란다. 목화는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송이를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대부분 식물의 열매나 씨앗은 동물의 먹을거리가 되지만, 목화송이를 먹는 동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목화 잎을 갉아 먹는 곤충의 애벌레가 가끔 눈에 띄긴 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목화에서 솜을 따고, 실을 뽑아내 옷을 만든다. 목화는 오로지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몸이 추위에 얼어붙는 순간까지 목화 다래를 만들어 낸다. 푸른빛이 도는, 익지도 않은 채 얼어 죽은 다래 속에도 솜이 가득하다. 

  화단에서 늦가을까지 수확한 목화솜이 조그만 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손에 전해 오는 하얀 솜의 포근함은 자연이 준 선물이었다. 다음 해 봄, 유난히 목화송이가 크고, 하얀 것을 골라 한 움큼 정도 씨앗을 빼냈다. 내 손으로 채취한 씨앗의 싹을 틔우고 싶었다. 씨앗을 반으로 나눠 한쪽은 콜라, 한쪽은 세제를 푼 물에 담갔다. 댓 시간 후, 손으로 씨앗을 비벼 댔다. 잔털과 기름기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구하기 힘든 묽은 황산과 나뭇재를 콜라와 세제로 대신했다. 

  모종판에 상토를 채우고, 물을 흠뻑 준 다음, 목화씨의 뾰족한 부분이 아래를 향하도록 해서 한 칸에 하나씩 심었다. 뾰족한 부분에서 뿌리가 나오는 것을 인터넷 지식에서 알아냈다. 양지바른 곳에 둔 지 열흘이 지나자 모종판에서 싹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구니에 가득 담긴 하얀 목화송이가 거실장 위에 놓여 있다. 목화가 우리 집 마당 화초로 자리 잡았다는 표시이다. 내년 봄엔 목화를 보고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채취한 씨앗과 심다 남은 모종을 나누어 주어야겠다. 목화송이를 보면 나처럼 포근한 꿈을 꾸며 행복할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가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