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들으며 한강 제방 길로 방향을 틀었다.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집중 호우가 내릴 거라는 내용이었다. 아들이 계획하고 있는 자전거 전국 일주가 장맛비 때문에 취소될 거로 생각했다. 솔직히 비를 핑계로 여행 계획이 취소되길 바랐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던 아들이 무더운 장마철에 고교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 전국 일주를 하겠다고 했을 때, 십 대의 무모한 도전이라 생각하면서도 결국엔 포기할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건성으로 허락했다.
내일 아침 출발한다고 지나가는 말투로 이야기할 때까지도 전국 일주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단지 출발하기 며칠 전 자전거 살 돈을 달라고 하더니, 싸구려 자전거 한 대를 덜렁 끌고 들어온 것이 전부였다.
출발한다고 한 날부터 다음 날까지 강화지역도 비가 그치질 않고, 오히려 빗줄기도 거세지고 바람도 세게 불어 댔다. 때 늦게 심은 나무들이 비바람에 잘 버티고 있는지 살피러 마당으로 나갔다. 바짓가랑이는 순식간에 비에 흠뻑 젖어 버렸다. 빗물을 털며 현관을 들어서는 내 모습을 아내가 보더니, 얼른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제야 여행을 떠난다고 했던 아이 말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핸드폰을 받지 않는다고 신경질을 냈다. 그리곤 집으로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작은아들은 형이 자전거를 끌고 아침에 나갔고, 오늘 양평까지 간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애초 계획보다 하루 늦게 출발한 것이었다. 컴퓨터를 켜고 기상청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갔다. 양평지역엔 집중 호우가 내리고 있고, 내일까지 이어지겠다고 예보하고 있었다. 경기 중부와 강원도까지 기상특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미친놈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지만, 한편으론 무모함과 용기가 부러웠다. 비의 기세는 누그러질지 모르고 더욱 사나워졌다. 대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유난스럽게 들려 왔다. 저녁 9시 뉴스가 시작될 때쯤, 마침내 아내와 아들 사이에 전화통화가 이루어졌다. 아침에 부천에서 출발하여 양평을 향해 비바람을 헤쳐 갔으며, 양평 못미처 국도변 휴게소 마당에 놓여 있는 평상 위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낼 작정이라고 했다.
“가다가 힘들면 자전거 택배로 부치고 버스 타고 올라와. 알았지!”
아내의 목소리는 사정하는 말투였다. 첫 통화 이후 보름 동안, 저녁마다 이루어진 아들과의 통화는 일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기상특보가 내려졌던 양평에서 지낸 첫날 밤, 비바람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무척 힘이 들었던 아이들은 그다음 날부터 지나가는 지역에 있는 교회나 일행의 친척 집에서 잠을 잔다고 알려 왔다.
해외 출장을 가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아이가 집에 왔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얼굴은 새까맣게 탔고, 핼쑥해졌다고 했다. 끝까지 전국 일주를 한 친구는 세 명이고, 나머지 세 명은 부산에서 포기하고 버스로 올라왔다고 했다. 아들이 대견했다. 인천공항 밖엔 아들이 출발했던 날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출장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아들 방부터 열었다.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컴퓨터 게임으로 밤을 새웠는지 자고 있었다. 궁금한 이것저것에 대해 아내가 대신 대답했다. 내가 한 마지막 질문은 어느 곳이 제일 인심 좋았냐는 것이었다.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것만 보아도 많은 사람이 도와줬을 거란 사실을 알 수 있는데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친절하고 고맙게 대해줬다고 했다. 특히 여행 나흘째 되던 날 밤, 무척 힘이 들었던 그 날 이야기를 아내는 이렇게 전했다.
‘비는 계속 내렸다. 저녁 무렵 김천에 있는 한 교회에 들어갔다. 교회가 작아 재워 줄 방이 없다고 해서 되돌아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잠깐 기다리라고 한 후, 방에 들어가더니 뭔가를 갖고 나왔다. 재워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 손에 이만 원을 쥐여 주었다. 받아야 할지 뿌리쳐야 할지 잠시 주저했다. 잠자리 비용을 받아 들고,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한 채 다시 교회를 찾아 나섰다. 그날 밤늦게 다른 교회에서 잠을 잤다.’
이야기를 듣고 나자 가슴이 먹먹했다. 말문도 막혔다.
‘이런 일이 …’
다시 한번 자는 아들을 보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아들은 이번 여행에서 느꼈을 것이다. 목사가 손에 쥐여 준 돈에 담긴 정이 전국 일주를 무사히 마치게 한 힘이었으리라. 현관에는 비옷 걸친 자전거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