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쓴 책을 만나면 기쁘다. 이 책도 그렇다. 저자의 이름이 특이하다. 은유[隱喩]란 저자의 필명은 문학적 개념-비유법의 하나로, 행동, 개념, 물체 등을 그와 유사한 성질을 지닌 다른 말로 대체하는 것-을 포함한 중의적 의미라고 한다.
‘쓰기의 말들’이란 특이한 제목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첫 장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부터 읽을 필요 없이 손이 가는 대로 펼쳐 읽으면 그만이란 것을 알았다. 뒷부분부터 읽든, 중간부터 읽든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도를 쉽게 알 수 있다. 이 책의 104개 문 중 어떤 문으로 들어가더라도 저자를 만난다. 깔끔한 문장과 함께 새로운 글쓰기 세상이 펼쳐있다. 저자는 글쓰기의 시작은 읽기였으며, 철학책, 시집, 평론집에 주로 손이 갔다고 했다.
난 달랐다. 내 독서 대상은 한국현대소설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소설 읽기는 사십 대까지 이어졌다. 소설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싹텄고,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과 내 관심 밖이었던 소시민의 아픔을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십 대 중반부터는 역사 관련 책을 주로 읽었다. 조선 시대와 중국 춘추전국시대 관련 책이었다. 소설과 역사 관련 책 읽기에 몰두했던 것은 문장을 수집하기 위함이 아니라 저자들이 말하고자 했던 시대정신을 찾아내고 싶기 때문이었다.
‘글쓰기로 들어가는 여러 갈래 진입로가 되어주길, 각자의 글이 출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라는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은 이 책을 쓴 목적이 함축되어 있다. 글 쓰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저자의 한계도 보인다. 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이유를 ‘분량 대비 건질 문장이 없다.’라고 한 것은 저자가 문장수집가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인간의 내밀한 이야기보다 일상의 느낌을 가볍게 쓰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는 것을 보면,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은 문장수집가가 되어야 한다는 바람에서 강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글을 읽고, 좋은 문장을 수집해 놓아야 한다.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이 유연함과 자유로움에서 나왔고, 세밀하고 구체적인 풍부한 컬렉션, 캐비닛에 보관된 온갖 정리 안 된 디테일을 필요에 따라 조립하여 만들어졌다고 했다. 여기에 기성 작가들이 써먹지 않았을 만한 새로운 문체와 언어를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글 안 쓰는 사람이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 자기 고통에 품위를 부여하는 글쓰기 독학자의 탄생을 기다린다는 은유의 말이 귓전을 울린다. 저자처럼 우표수집가가 우표를 모으듯 책에서 네모난 문장을 떼어내 노트에 차곡차곡 끼워 놓기만 한다고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리 안 된 잡동사니를 모아 근사한 글로 만드는 기술이 아직은 난 부족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일깨워 준다. 쓰면 쓸수록 어려운 글쓰기가 언제쯤 쉬워질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