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순례 Jul 10. 2023

착한 귀신은 나를 죽음에서 건져줬다

환시를 귀신으로 착각한 소녀

귀신을 본 소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여 전문직에 종사하는 그녀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전문직을 찾은 이유는 고소득 때문이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하는 일이 낯선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가 거의 없어서입니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막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인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그날 학원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세탁실 창문에서 여성 한 분이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머리카락이 우뚝 솟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얼른 안방으로 가니 아버지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함께 세탁실 문을 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웃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심지어 아버지도 믿지를 않아 그날 이후로 그 일은 그녀만이 아는 비밀에 부쳤다고 합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시인도 부정도 하지 않고, 단지 그녀의 두렵고 떨린 그 사건을 10여 년 동안이나 혼자 간직해온 두려운 감정만 깊이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아무에게도 한 말이 아니라면 말을 이었습니다.


소녀를 보호해준 귀신

“그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귀신 틀림없습니다. 그 사건 이후에 저는 밤길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많은 불편을 주고 동선을 제한하는 것인데요. 그 귀신은 좋은 일을 하다가 죽은 착한 귀신이었습니다. 착한 귀신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자신을 위로하고, 그 사건이 떠오를 때마다 같은 말로 두려움을 달랬습니다.”

그녀가 나를 찾은 이유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갇혀있는 것 같은 희미한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이 삶이 힘들 때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살았으나 어떤 때는 죽은 것 같고, 죽었다고 생각하면 살아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고 사회적 역할을 해내는 나는 꼭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아닌 “좀비나 요괴 인간” 같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자정이 넘도록 일을 하셨고, 취학 이전부터 그녀는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혼자 빈집을 지켜야 하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았습니다. 어린 그녀는 불을 켜도 꺼도 무서웠고, 그래도 그 무서움을 달래는 방법은 이불속에 들어가 숨는 것이었습니다. 캄캄한 이불 속은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줬으나, 소녀에게는 죽음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이게 죽음인가. 차라리 죽는 것도 괜찮다. 내가 죽으면 엄마 아빠가 걱정된다. 그래서 죽음은 두려운 것이구나.” 소녀는 두려울 때마다 자기를 도와주는 착한 귀신을 떠올렸습니다. 


귀신은 두려움이 만든 환시

아직도 죽어 귀신이 된 그 여성과 함께 살고 있으니, 그녀의 삶이 자유로울 리가 없습니다. 그녀는 그 귀신을 좋은 귀신으로 만들어 자신을 달랬으나, 귀신을 떠나보내야 귀신의 위협 없이 혼자 살 수 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왜, 사춘기를 질풍노도기라고 하잖아. 그 말의 심리적 의미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야. 의식으로는 나 어른인데, 무의식에서는 너는 아직 어른이 아니야 하고 저항하거든. 대체로 이런 혼란이 오는 거야. 또한 사춘기에는 유년기의 미해결 심리적 과제를 해결하려고, 유년기에 가졌던 불안과 두려움 등이 의식으로 다시 올라와. 그래서 공포 괴담이나 영화를 좋아하기도 해. 사춘기가 막 시작했고 혹시 따돌림당하면 어쩔까 하는 적응의 문제로 두려웠던 그날. 너는 너의 두려움을 한 죽은 여성으로 시각화한 거야. 말하자면 귀신이 아니라 환시야. 환시는 두려운 감정을 잠깐 시각화한 것에 불과해. 말하자면 마음속에 있는 귀신을 실제 귀신으로 만들어 버린 거야.”

워낙 인지 기능이 뛰어났고, 힘든 일들이 많아 조기 성숙한 그녀는 내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챘습니다. 그리고 두 손으로 탁자를 쳤습니다. “그럼 저는 허깨비를 보고 도깨비로 착각하면서 10여 년을 살았던 거군요.” 우리는 웃었습니다. 그녀는 무엇인가를 골몰히 생각하더니 한마디 더 했습니다. “죽음도 그런 거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사람은 죽지 않아요. 내 어린 시절 이불 속과 밖은 같은 곳이었습니다.” 


걱정거리도 환시

 

사람마다 한 가방씩 가진 근심과 걱정은 대부분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죽음은 있고 그것이 생명의 종말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갈 것이고, 때가 되면 두려움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죽음은 없고 죽음은 새로운 탄생이라고 믿는 사람은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낼 초월의 가치관을 축적할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색은 지적 고뇌를 하게 하고, 죽음 명상은 평화롭게 합니다. 죽음에 대한 진부한 이론은 죽음을 더 모르는 것으로 하고, 죽음과 그와 관련된 정보와 계속 업데이트되는 자료를 살피면 죽음은 아는 것이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매우 특별한 사람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