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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Dec 26. 2019

맑거나 탁한 기운,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탁한 기운과 맑은 기운

탁한 기운, 맑은 기운이라는 말들을 쓴다. 기운 “기”에 돌 “운”을 쓰니 氣運은 기운의 순환을 말한다. 기운이 원활이 순환되면 머물러 탁해질 이유가 없으니, 기운은 맑아지고 기분은 덩달아 좋아진다. 반면 기운이 돌다가 한 쪽에서 막히면 기운의 순환이 잘 안될 뿐만 아니라, 막힌 그곳에 퇴적물이 쌓여 탁한 기운이 된다. 기분이 나빠진다.     


  사람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그의 기운과 관계가 있다. 걱정, 화, 슬픔, 원망 등은 탁한 기운에서 나온다. 평화, 안정, 기쁨, 즐거움 등은 맑은 기운에서 나온다. 기운은 꼭 심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신체적인 것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 맑은 기운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마음관리를 잘 한다고 해도 몸의 질병이나 자극을 주는 환경에 마음은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기운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유는 환경의 영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암 진단, 부도, 실직, 실수나 실패, 비난받는 일 등이 생기면 생각은 전진하지 못하고 정지하거나 뒤로 후퇴한다. 그 증상은 편두통, 불면, 몸의 찌뿌듯함, 특별 부위의 통증 등으로 나타난다. 그의 정신에는 탁한 기운이 돌게 마련이다. 탁한 기운의 퇴적물이 많아지면 기가 순환하지 못해 내면의 세계로 빠져들어 현실감각을 잃는다. 마음의 질병이 생기는 원리다.   

 

인간은 원하는 환경을 창조할 수 있는가?  

  만일 우리가 자기 의지대로 좋은 환경을 창조할 수 있다면, 탁한 기운 때문에 괴로운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환경이 환경을 만든다.” 인간에게는 마법사처럼 자기가 원하는 환경을 자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누구나 좋은 환경을 원하지만, 누구나가 좋은 환경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환경에서 태어나고, 성격과 정서의 기초가 형성되는 생애 중요한 시간은 타율적 환경에서 보낸다. 이 말은 인간은 환경의 패배자가 아니라, 환경을 스스로 재건해야 할 책임적 존재라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는 자아를 공(空)으로 하여 어떤 환경으로부터도 자유롭게 한다. 공은 모든 것을 수용하지만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충만한 상태를 말한다. 기독교에서는 십자가를 진다고 하는데, 십자가는 무겁게 지고 가면서 무거운 만큼 가벼워지는 역설의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인 훈령은 너무 어렵고, 잘못 이해하면 자아에게 더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      


촉진적 환경이란?

  심리학은 중간쯤에서 타협안을 제시한다.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위니캇은 촉진적 환경이 만들어지면 인간은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마음의 병도 치유 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촉진적 환경이란 보통 평범한 환경을 말한다. “서로 다른 것들의 적당한 긴장감”은 살면서 늘 있다. 촉진적 환경이란 무슨 특별한 환경이 아니라 가장 쉽게 접촉하거나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나는 즐거운 일이 없어서 인생이 괴롭다는 내담자를 참 많이 만난다. 그들은 하나 같이 그들이 접촉하거나 만들 수 없는 즐거운 일을 욕망하고 있었다. 초코렛 한 조각으로도, 친한 친구와 전화 한 통화만 으로도, 가벼운 산책만으로도 촉진적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촉진적 환경에서 발현된 참자기(true self)는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환경을 스스로 조절하면서 창조적인 삶을 살게 한다. 그러나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아주 열악한 환경도 있는데, 이때에도 참자기는 지배당하는 일의 흐름을 타면서 그 의미와 중요성을 발견하면서, 후일을 준비한다. 촉진적 환경의 기는 탁하거나 맑거나 문제될 것이 없다. 탁하면 천천히 흐르고 맑으면 유유히 흐르면 된다.          

 

기가 맑을 때는 유유히 흐르고, 탁할 때는 천천히 흐르면 된다

 본래 기운은 맑다. 거기에 다른 것이 끼여서 탁해진 것이다. 어린 아기들이 잠에 취해 있는 것은 그들이 떠나온 본래의 맑은 상태를 한동안 유지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서히 탁한 세상으로 나와야 하고, 본래 맑은 그들의 기운은 탁해지기도 하면서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세상살이는 역동적이다. 사람은 온갖 다양한 것들을 다 경험하면서 살게 돼 있다. 가장 큰 죄악은 스스로 웅덩이의 물이 되거나, 탁해질 것이 두려워 앞으로 전진 하지 못하는 삶이다. 걱정할 것은 없다. 기가 맑을 때는 유유히 흐르고, 탁할 때는 천천히 흐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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