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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Feb 07. 2020

죽음은 정말 두려운 걸까?

죽어가는 사람의 무의식 분석

  

삶과 죽음은 무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융학파 분석가인 샤클린 뒤르뮐러는 죽어가는 한 여성의 꿈을 분석함으로 삶과 죽음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부분적으로 밝혔다. 그것을 정리한 책이 “삶과 죽음, 죽음과 삶(한국심층심리연구소)이다. 본인은 이 책으로 3번의 강좌를 마쳤고, 할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발견됐다. 아래 글은 2월1일 3번째 강좌를 마치고 나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정리한 소감이다.


사후세계에 관한한 아직까지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어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이 없다. 인간의 과학적 영역, 그리고 초월을 다루는 심리학이 발달하면 언젠가는 그 미지의  세계도 밝혀질 것이라 믿는다. 밝혀진다는 것은 넓은 운동장에 조명등처럼 그 일부와 나머지는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말하지, 전부가 투명하게 보인다는 뜻은 아니다. 낮은 차원에서 더 높은 차원은 아주 작은 불빛 혹은 그림자로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죽음의 차원으로 진입하려는 사람의 무의식을 탐구하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융 학파 분석가인 샤클린은 죽어가는 한 여성의 꿈을 분석함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밝히려는 노력을 했다. 삶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었고, 하나로 연결된 많은 상징들이 나타났다. 또한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두려움을 완화시키고 평화롭게 하기 위하여 무의식은 모든 자원을 사용하여 그를 돕는다는 것을 밝혔다.    

죽음은 두렵지 않은데 죽어가는 것은 두렵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어가는 사람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가 겪는 극한 신체적 통증에 감정이입을 한다. 고통스럽게 육체와의 인연을 끊어내려는 임종의 시간에 자신이 임종의 시간에 맞이할 신체적 고통을 상상하면서 두려워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은 두렵지 않는데, 죽어가는 것이 두렵다는 말을 한다.      


죽어가는 사람은 산 사람이 느끼는 것처럼 감당할 수 없는 신체적 고통을 맞이해야만 할까? 나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죽음이 가까울수록 사람은 무의식으로 빠져든다. 무의식에 빠지면 정신은 혼미해지고 신체적 감각은 무뎌진다. 비록 모르핀을 투여할 정도로의 죽어가는 사람이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가족들이 느끼는 그런 정도의 통증은 아닐 것이다. 신은 인간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시지 않는다. 오히려 신의 세계에 가까울수록 신체적인 것가지 포함하여 고통은 환희로 바뀔 것이다.     


마취제는 생화학 반응을 일으켜 사람을 잠재운다. 심리학적으로는 무의식에 빠지게 한다. 그런 상태에서는 신체적 통증을 못 느끼고, 느낀다고 해도 미세하다. 죽어가는 사람의 정신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가장 가까이 있다. 생애주기에서 다른 차원의 세계와 가장 가까이 진입해 있는 상태, 분석심리학의 개념으로 말하면 집단무의식의 상태이다. 그 세계에서 몸은 통증에 반응하지만 정신은 그가 느끼는 통증을 충분히 견디게 할 것들과 접촉한다. 샤클린이 분석한 내담자의 무의식은 신체적 고통을 이겨낼 영적 자원을 계속 퍼 올리고 있었다.      


무의식은 신체적 고통과 영적 두려움을 달래고 평화롭게 한다

두려움은 몸만이 아니라 미지의 사후세계 때문이기도 하다. 신의 은총을 담고 있는 인간의 무의식은 얼마나 친절한지, 삶과 죽음은 서로 딴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꿈의 상징을 통하여 저서히 보여준다. 그곳은 사랑으로 연결된 곳임을 죽어가는 사람이 가장 확신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알려준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은 그들의 부모 혹은 그들이 평소 사랑한 사람이 문 앞에 찾아왔다며 손을 흔들어 답례하거나, 대화를 한다. 의료전문가들은 섬망 혹은 죽음이 임박한 정신분열증상이라 할 것이다. 그들은 죽음 이후의 세계와 가장 가까워진 것을 보고 있으나, 그 증상은 지금 여기의 과학으로 그렇게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얼굴은 평온하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에게 꿈 혹은 환상으로 여러 번 등장한다. 여기와 거기는 서로 연결된 곳으로, 거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부모와 내가 생전에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리로 갈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두려움이 아닌 평온한 기대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람은 검정옷에 검정 갓을 쓴 저승사자가 왔다고 하는 경우도 많은데, 죽어가는 사람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산 사람이 자기 두려움을 투사하여 저승사자를 두렵게 만드는 거다. 미국의 임종과 죽음 의학자 퀴블로 로스가 면담한 임사체험자들에 의하면 죽음은 형언할 수 없는 평화와 자유가 있는 곳으로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죽은 사람의 얼굴은 평온해 보인다. 유가족이 할 최선은 제 슬픔인 것을 죽어가는 사람의 슬픔인 것처럼으로 울부짖을 것이 아니라, 그가 평안히 가도록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 


이 연구는 죽음의 보다 깊은 세계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 그림자의 일부를 보여줌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추론을 가능하게는 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위 책을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책은 절판되었고, 분석심리학을 모르신다면 책을 이해할 수 없거나 왜곡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강좌에 참여하시면 좋겠으며, 책은 제본해서 드림니다.


마음순례자 박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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