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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Mar 28. 2020

“힘들다”는 “힘들다”라는 느낌에서 나왔다

걱정마 다 잘 될 거야    

  청운의 꿈을 품고 유럽으로 유학 갔다. 와서 시간강사만 7년째, 어느덧 나이 사십이 되었다. 엄마는 실의에 빠진 아들을 집으로 불러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제 지친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아들은 이를 거절하려했지만, 귀국 후에 한국사회에서 거절당한 경험이 떠올라 엄마에게 그런 감정을 안겨 드리지 않기로 했다.


  집에는 엄마만 계셨고, 엄마는 특별할 것도 없이 평소에 드시던 음식으로 식탁을 차렸다. 아, 얼마 만에 엄마와 단둘이 먹어보는 집밥인가? 아들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동안 자기감정에 지쳐 엄마에게도 가진 미운 감정이 말없이 스르르 녹고 있었다. 당장 좋은 소식이 있거나 상황이 변한 것도 아닌데, 아들은 마음이 편해졌다. 마치 엄마 품에 안겨있는 것 같았다. 그의 무의식은 유아기에 있었던 수유경험을 한 것이다. 그것은 마음의 밑바닥에서 갈구하는 위로받으려는 원초적 본능이다. 우리는 이 에너지로 산다.  


  엄마는 딱 한 말씀만 하셨다.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다른 때 같았으면 화났을 것이다. 그런 상투적인 말씀으로 냉정한 세상에 지친 나를 위로하려 하지 마세요, 라고 항변하고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그 날은 달랐다. 정말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말씀은 엄마 품에 안겨서 먹은 모유나 다름없다. 그는 엄마 품에서 모든 것을 엄마에게 맡기는 유아기의 경험을 다시 한 것이다.


엄마는 내 안에 계신다

  유아는 엄마가 있어서 걱정거리가 없다. 필요한 것은 엄마가 다 채워준다. 그럼 성인인 우리에게는 엄마가 없는가? 계시다, 각자의 마음 안에 계신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먹여주는 엄마의 흔적들이 모여 인격적인 그 이상의 대상으로 각자의 무의식에 계신다. 내 안에 있는 엄마를 외부에서 찾으니 그는 늘 외로운 사람이 된다. 내 안에 있는 허기를 다른 곳에서 찾으니 그는 늘 부족한 사람이 된다. 알코올 중독자는 알코올이 엄마가 된 것이고, 도박 중독자는 도박이 엄마가 된 것이고, 수집 중독자는 수집이 엄마가 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엄마를 놔두고 엄마를 찾아다니고 있는지!


  깨달음이란 내 안에 있는 엄마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인식하는 것이다. 생애 후반기에는 엄마는 돌아가셨거나 생존해 계셔도 내가 돌봐 드려야 하지, 과거처럼 나를 돌보는 분이 아니시다. 내 안에서 나의 엄마를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외부로 투사되는 엄마에 대한 감정을 분리시켜야한다. 분석심리학은 내가 나로서 살기위한 중년의 과제로 엄마로부터 분리를 들었다. 외부로부터 오는 달콤한 위로를 기대하지 않으니 당당히 자기 길을 갈 수 있다. 종교심리학에서 신은 부성보다는 모성으로 더 강하게 인식된다. 인간이 신이 된다는 것은 신의 전지전능함을 행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모성으로서의 신을 모셔 들여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한다.  


"힘들다"는 주관적인 느낌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많이 힘들고, 어떤 사람은 덜 힘들고, 또 어떤 사람은  어디서 생겼는지 모를 힘이 쏟아나기도 한다. “힘들다”는 주관적인 느낌이다. 내 안에 모성, 즉 신성은 “힘들다”를 최소화할 수 있다. 범 불안장애는 모든 것에서 불안의 원인을 찾는 성격장애로, 역으로 모든 것에서 모성을 찾는 사람들이다. 제 안에 있는 모성을 외부에서 찾으니 불안하다.  


  두 명의 고등학생 자녀를 둔 가장이 직장에서 나와야만 했다. 불안한 그는 매일매일 불면의 밤을 보냈고, 하소연은 끝이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럴수록 내면에서 그의 모성인 신성을 찾아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는 그런다고 밥 먹여주느냐며 스스로 원한 심리 상담을 조소했다. 그래야 하소연만 하다가 우울증에 걸릴 것이고, 알코올 엄마만 찾다가 알코올 중독자가 될 것이다. 나는 그러면 밥만이 아니라 고기도 먹여준다고 유머를 썼다.


  그가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현실적인 대안들을 강구하기 시작한 것은 눈앞의 절망에 빠지지 않는 배짱, 희망, 용기를 가졌을 때였다. 그것들은 본래 자기 안에 있는 자기 것이었다. “자기 것”은 자기의 신뢰를 기다린다. “자기 것”은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다. “아, 나에게도 이런 잠재력이 있었구나.” 그 다음은 “자기 것”이 알아서 움직인다.   


좋은 인간관계는 내 안의 모성을 증진시킨다

  심리치료는 많은 불안들이 상상 속에서 내가 만든 것이며, 불안은 꼭 미리 대처하고 사는 것이 아님과, 어떤 외적 불안도 막상 닥치면 대처해 나갈 힘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 힘은 그의 모성성에서 나온다. 그는 자신 안에 있는 모성을 발견하기 이전, 한시적으로 치료자를 모성으로 경험하는 기간을 거쳐야 한다.


  평생에 걸쳐 좋은 인간관계가 정신건강에 꼭 필요한 이유는 그 관계가 모성, 즉 신성을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좋은 인간관계는 내가 먼저 상대를 평화롭게 해주면서 만들어진다. 생애 전반기에는 일이 있어서 외롭지 않게 살았다. 생애 후반기에는 좋은 벗이 있어야 외롭지 않다. 관계는 지금 당장 생각나는 아무개의 평화를 빌음으로 만들어진다. 평화는 공급자와 수여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거다.     

  

  10여 년 전 내가 일하던 기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기관의 한 부서를 폐기하기로 했다. 그 부서에 근무하던 직원들은 권고사퇴를 당하거나, 전공과는 상관없는 부서로 보내질지 몰라 몹시 불안해했다. 당장 그런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그들의 상상에서는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때에 지나칠 정도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직원이 있었다. “다 잘될 겁니다. 걱정할 것 없어요.” 그는 정말 걱정이 없었고, 평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마음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그런 힘은 직장 내에서 넓고 좋은 인간관계에서 나왔다. 지옥에 내려가서도 그곳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구원이 온다. 신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 곧 현재이다. 우리가 현재를 살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 경험에 기초한 현재에 대한 “느낌” 때문이다. 과거는 좋은 습관을 만들기도 하지만, 없어도 될 불안을 키우기며 정신에너지를 낭비하기도 한다.  

꿈에서 깨어나라

  생애 후반기에 들어서 사람은 힘들어서 힘들도 힘들지 않아서 힘들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멍석만 깔아놓으면 “사실은”하고 다 나온다.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그들은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면 정말 힘든 걸까?  “그것은 아니다.” “힘들다”라는 느낌에 집중해서 힘들다. 이 느낌은 하마의 입과 같아서 힘들지 않은 사람도 모조리 삼킨다. 그래서 인생을 “고苦”로 보는 종교도 있다. 고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고, 꿈에서 깨어나면 그를 괴롭힌 모든 것들이 본래 “없던 것”임을 깨닫는다. 꿈은 없던 것을 있는 것처럼 “느낌”을 만든다.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해외유학을 했는데, 정말 전임교수가 안 돼서 힘든 건가? 그러면 전임교수만 되면 힘든 것이 없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 전임교수는 가르치는 일 말고 그 밖의 다른 것 때문에 더 힘들다. 사람들은 죽음은 두렵지 않는데 죽어가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아직 죽음은 멀리 있는데, 상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은 진짜가 된다. 마음의 장난은 도를 넘는다. 막상 죽어가는 사람은 그 고통을 이겨낼 힘도 함께 분비된다는 생각은 못하는가?       


  힘들음에서 벗어나는 근본적인 처방은 “내어주고 맡기는 것”이다. 힘들음은 힘들음이 알아서 하지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심지어 내 통장에 있는 현금도 은행이 주인이지 내가 주인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내 것으로 하려니 삶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나 외에는 내 것이 없다. 잠깐 임대했다가 돌려줘야 하는 것들이다.  “힘들다”는 “힘들다”라는 느낌에서 나왔다는 것을 받아만 들여도 힘들음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힘들음은 나와 타인,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와 연대하기 위한 공동의 “에너지”이다.


분당심리상담치료 박성만 교수

http://www.gana6.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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