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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Feb 05. 2021

남편을 떠나보냈다

난생처음 써보는 콩트 습작

     

  “임수진”이라는 여성이 문자로 상담을 신청했을 때 나는 그녀가 많아야 40대 여성으로 생각했다. 이름이 나이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수진은 여성성이 진하게 느껴지는 이름이다. 대학 다닐 때 수진을 짝사랑하던 기억이 나서 더욱 그랬을 거다.


  임수진이 60대 초반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수 없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느낌과 인상이 곧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임수진은 나이만 60대이지 말소리만 들으면 30대 후반쯤 된다고 해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마스크를 썼을 때는 얼굴에 잔주름은 안 보였고 큰 눈동자만 더 크게 보였다. 그녀의 음색, 어투는 영락없이 그때의 임수진이었다.

     

  그녀가 나를 찾은 이유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해서다. 이런 딱한 사정을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조언했다.

  “수진아, 그러지 말고 너 심리상담을 한번 받아봐라. 심리상담사는 여자가 많던데, 남성 심리상담사에게.”


  그녀는 남성이라는 말이 자꾸 걸렸다. 서방님 보내고 3년 동안 슬퍼했다. 또 그렇게 슬퍼하는 것이 금술 좋았던 부부의 아내로서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속 이야기를 아무리 심리상담사라고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일은 하늘에 계신 서방님이 알면 섭섭해할 것 같다. 얘기하다 보면 서방님 흉도 나올 것 아닌가. 그것도 남자에게…. 남들은 다 우리 부부가 모든 것을 털어놓고 사는 것처럼 생각한다. 실은 그렇지 않다. 정말 꼭 해야 할 말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금술 좋은 부부로서의 의리를 지켜가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참 이상하다. 수진은 낯선 남성을 만나 남편에게도 하지 못한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묘한 흥분을 느꼈다. 그러면 남편 사별의 슬픔에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남편이 남기고 간 상가건물에서 월세가 또박또박 나오고, 통장에는 매월 적지 않은 돈이 연금으로 입금된다. 그녀는 돈 걱정 말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심리상담이라고는 아들이 사춘기를 보내면서 모자 상담을 딱 한 번 받아 본 것이 전부다. 그것도 내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아들 양육에 관한 지도였다.    

 

  “경험 있는 심리상담사는 너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잘 들어줘. 그러면서 자기 통찰을 하게 하지. 너에게 꼭 필요할 걸.”


  수진은 15년 전에 부부 갈등으로 6개월 간 심리상담을 받은 연희의 말을 떠올렸다. 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다 들어주는 낯선 남자 앞에서 나는 어떤 말을 하게 될까, 궁금해졌다. 기대도 됐다. 수진은 상담을 예약하고 4일을 기다리면서 남편 사별 이후 처음 슬픔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슬픔보다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더 컸던 것이다.


  그날, 발열 체크를 마친 수진은 마스크를 벗고 상담실 의자에 앉았다.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내가 무안해질 정도로. 누가 저 분을 60대 여인으로 볼까. 얼굴에 들인 고급화장품, 마사지, 보톡스, 기미 제거 시술 등. 연한 분홍색 스카프를 목에 둘렀는데, 30년 전 임수진이 생각나 깜짝 놀랐다.


  상담실 안을 은은히 데워주는 컨버터 전기난로, 적당한 습도를 유지해 주는 자연기화식 가습기, 주백색의 led 등, 엉덩이를 포근히 감싸는 소파는 수진의 긴장을 풀어줬다. 수진이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지난 3년 동안 못한 말. 아파트 옆 동에 사는 딸이 엄마의 외로움을 달래 주겠다고 종종 놀러 오지만, 수진은 딸에게 할 말을 다 못한다. 딸이나 제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간다. 해외 지사에서 일하는 남편 부재의 외로움을 나에게 풀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귀찮다. 지금 여기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도 된다. 나는 돈을 주고 사람과 시간을 샀다. 상담사를 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쓴들 그것은 합법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다. 5분도 안되어 콧물이 나왔고, 눈물은 얼굴에 바른 고급화장품을 한 꺼풀씩 벗겨내고 있었다. 소리 없이 흘리는 품위 있는 눈물, 나는 30년 전 임수진을 기억해 냈다. “죄송해요. 저는 이미….”


  나는 30년 전 임수진을 생각하며 그때의 아린 아픔을 다시 느꼈다. 지금 임수진은 3년 전 남편을 생각하며 슬퍼한다. 방어기제가 풀린 수진은 그동안 말 못한 남편 사별의 슬픔이 더 올라왔을 거다. 이럴 때는 뭐라 말 시키는 것이 다 방해 공작이다. 눈물이 멈출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눈물로 표현되는 내담자의 감정은 명의가 놓는 침과 같다. 눈물은 치료의 촉진제이면서 동시에 치료 자체이기도 하다.


  1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수진은 특유의 애교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저, 이런 일은 처음이네요.”

  나는 수진이 남편 사별의 슬픔을 다른 사람 앞에서 처음으로 울었다는 말로 들었다.

  “힘드셨죠?”

  “네.”     


  내가 만난 60대 내담자들은 할 말이 없어 상담받을 필요가 없다더니, 상담실 소파에 앉기만 하면 말이 많으시다. 그냥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그분들의 방어기제를 풀어드리는 일에 능숙하다. 그것은 명의가 놓은 장침이다. 수진은 참 이상했다. 방어기제를 풀은 것 같은데도 좀처럼 말을 안 했다.


  핑퐁 게임처럼 묻는 말에 단답식으로 대답이나 하는 정도였다. 어떤 때는 질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감정표현이나 눈물이 나와 나를 당황하게 했다. 지금 내 앞에는 살 만큼 살아  부끄러움을 모르는 60대 여성이 앉아계신 것이 아니라, 10대 소녀가 앉아있는 것 같았다. 심리치료사의 직감이란 것이 있다. “수진은 돌아가신 남편에게도 10대 소녀였을 것이다.”      


  수진은 남편에게 거의 모든 것을 의존한 공주처럼 한 평생을 살았다. 그녀의 애교 섞인 말투, 철저한 외모 관리는 고위 공직자였던 남편의 공주로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공주를 사랑하는 아바마마와 함께 살다가 아바마마가 세상을 떠났으니, 수진에게는 남편이 아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동반자로서 남편이 떠났기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다. 의존의 대상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외롭고 슬펐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부부 금술이 너무 좋아 수진이 남편을 떠나보내지 못하여 슬픔이 길게 간다고 했다. 수진도 그 말이 사실이기를 바랬다. 그러나 내면의 음성조차 막을 수는 없었다. “그게 아니야….”


  수진의 눈물이 잠잠해질 때 물었다.

  “남편을 떠나보낸 슬픔이 크지요.”

  잠시 생각에 잠긴 수진은 작정한 듯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닙니다.”


  의외였다. 그렇게 입으로 내뱉자 수진의 얼굴 한 쪽에 자리 잡았던 3년짜리 그늘이 단 번에 가셨다. 피부과 의사의 수술 없이도 얼굴이 펴졌다고 할까. 처음 상담실에 들어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안색을 봤다. 첫 상담에 충분한 애도를 하게 한 나의 노련미를 자찬하기도 전에 수진은 묘한 말을 한마디 했다. “상담은 제가 예측한 것과 달랐어요.” 그녀는 시계를 보더니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나의 상담방식을 돌아봐야 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며 다음 주에 뵙겠다는 말을 하고 떠난 수진은 나를 비웃은 것이다.       


  수진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꼭 남자 심리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아보라던 연희의 말을 비로소 이해했다. 연희가 고마웠다. 연희의 말이 생각났다. “치유는 상담사와 내담자 사이에 알 수 없는 어떤 제3의 힘으로도 일어나는 거야. 그것은 경험으로만 알 수 있어.” 수진은 연희의 알쏭달쏭한 말을 드디어 이해했다.


  수진은 남편과 결혼한 이후 처음으로 낯선 남자와 단둘이 앉아 본 것이다. 이 사람이 계약 관계로 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자, 결혼 이후에 거의 느껴보지 못한 당당함이 수진의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내 말을 해야 한다. 해도 된다. 따뜻한 인상을 준 저 사람은 진심으로 내 말을 다 들어주고 다독여 줄 것이다. 저 사람은 지금 나의 남자다, 하는 순간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30년의 결혼생활, 나는 남편의 여자였지 남편이 나의 남자는 아니었다. 나는 능력 있고 잘 나가는 고위 공직자의 여자가 돼야 했다. 그게 잉꼬부부인지 알고 살아왔다.


  수진은 남의 것이 되어 종속적 행복에 도취 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서러워 울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생각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의 자상함과 사회적 위상에 눌려 불평 할 수가 없었다.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 로라라 해도 안락한 삶을 보장해 준 남편이 고마웠다. 내 주변에 대부분 여성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수진은 낯선 남자와 동등하게 마주 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낯선 이성으로 느껴졌다. 맞선에서 남편에게 처음 느낀 이후 두 번째로 느껴본 이성적 감정이다. 그런데 좋았다. 나 지금까지 정말 올바르게는 살아왔다. 그런데 그게 정말 잘 살아온 건지는 의심이 들었다. 30년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눈물이 났다.


  “이 나이에, 이런 감정을 느껴보는 것이 어때서. 다시 연애를 시작할 것도 아니고.”


  이 짜릿한 감정을 숨기려고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상담사는 몰랐을 거다. 30년 만에 느낀 감정을 표현도 못하고 혼자만 간직해야 하다니! 그게 힘들고 슬퍼서 울었다. 물론 이것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일시적 감정이지만, 행복은 일시적 감정에 있었다. 30년을 남편의 애마처럼 살아온 자신의 삶이 주마등이 되어 눈앞에 아른거려 슬펐다. 시간은 되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 슬퍼서 울었다.


  상담사가 매우 힘드셨죠, 하는 순간 수진은 상담사가 내 마음을 다 알아서 하는 말로 들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자동으로 “네”라는 대답이 나왔다. 남편도 모르고 떠난 또 다른 나를 알아준 상담사가 고마웠다.     

 

  그러다가 한평생 나만을 위해 헌신한다며 잊을만하면 사랑을 확인시켜준 남편의 말이 생각났다. 남편에게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단지 어느 정도만. 그래도 고마워 울었다. 뒤돌아보니 사랑도 행복도 어느 정도만 이었다. 수진이 남편 사별 후 3년 간의 슬픔은 어느 정도의 사랑 저 편에 있는 어느 정도의 미움 때문이기도 한 것을 알았다. 수진은 남편이 아닌 자신 때문에 운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서 우는 일을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죽은 사람과 관련된 자신의 감정 때문에 운다. 수진은 남편에게서 그리고 남편 사별의 슬픔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얼굴이 활짝 폈다.  

    

  15년 전, 연희가 이혼한다고 했을 때 수진은 이혼은 절대 안 된다고 말렸다. 부부는 세월이 흐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뒤얽히면서 사는 것이라고 연희의 경솔함을 꾸짖었다. 그러나 지금 연희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먼저 이혼을 제안해 위자료도 제대로 못 받고 나와 구진 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연희. 어쩌면 연희야 말로 당당함을 몸소 실천하며 사는 나의 멋진 친구이다.  


ps:           

교양 심리서만 10년 써오다 싫증 나서 난생처음 심리 콩트를 습작해 봤다. 솔잎만 먹던 송충이가 뽕잎을 먹여야 하는 기분. 그 넓은 잎을 어디서부터 먹기 시작해서 언제 그만 먹어야 하는지!

아무리 인생의 짧은 단막이라도 문학적 서사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짜내는 기분이다. 계속 짜낼 것인가,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 그곳의 우물을 팔 것인가.

아무튼 요즘은 이런 저런 종류의 글을 연습하고 있다. 늘 그랬듯이 스승은 나, 학생도 나.



가나심리치료연구소장  박성만

http://www.gana6.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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