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마음탐구)
요한복음1:1~10
“로고스는 그리스도다.” 이 말을 처음 들은 헬라 문화권의 사람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헬레니즘의 이분법에 익숙한 당시 철학과 문화적 전통 위에서 쉽게 이해 했을 것이다. 헬레니즘 철학은 만물을 있게 한, 또는 만물의 근본 원인인 플라톤의 “이데아”개념 위에 있고, 현대 철학은 플라톤 철학에 대한 해석과 재해석이라 할 수도 있겠다.
플라톤은 사변적인 철인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는 현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우주의 원리를 알았다. 그의 철학적 사변은 마치 종교처럼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 마음에 깊이 녹아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성적인 사유를 통하여 원리를 깨닫는 것이다.
성서는 로고스를 말씀으로 번역했으나, 로고스는 이성 또는 우주의 원리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요한복음의 서언을 들은 헬라 문화권의 사람은 이렇게 알았을 것이다. “아, 그리스도는 세상의 원리를 제시하는 분이구나.” 그들은 현대의 극 보수적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막무가내로 믿는, 그런 신앙관과는 매우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주의 원리라면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지 않은가?”
요한복음에는 “~알다”라는 표현이 많다. 즉 영적인 지식을 알아야 하는 것의 필요성을 자주 언급한다. 현대 성서 신학자는 요한복음을 영적 지식을 알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영지주의에 가까운 문서라고 한다. 아무튼 본 글의 목적은 신학적 논의를 하는 것은 아니니, 요한복음이 영적 지식을 중요시 했다는 것은 이쯤 해 둔다.
내가 성서와 마음 탐구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은 원리를 앎으로 하나님 안에서 편안함과 자유로 안내하기 위함이다. 인생에서 원리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서 본문으로 설명해 보겠다.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요 1:4)” 즉 그리스도와 동일시된 원리가 생명이고,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라고 했다. 원리를 알면 아는 만큼 생명을 얻는 것이고, 그것이 사람에게 빛이 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를 원리의 원형과 같은 존재로서 소개하고 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요 1:5)”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둠은 항상 있다. 슬픔, 실패, 절망, 한, 고통, 질병, 신경증, 죄, 죽음,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이 모든 것들은 다 어둠이다. 아니, 우리는 그것을 어둠으로 경험한다. 많은 종교인은 신의 이름으로 어둠을 내쫓는 기도를 하고, 그것이 곧 믿음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큰 오해이다. 그리스도가 사람들이 어둠이라는 것에 비추었더니,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스도, 즉 삶과 우주의 원리를 아는 사람에게 어둠은 없다. 어둠은 그리스도가 제시하는 원리를 모르는 사람이 빛에서 갈라놓은 것에 불과하다. 진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은 그 무지를 어둠으로 채우려 한다.
질병이 왔다고 하자.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징벌이 왔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떤 종교인은 질병을 마귀가 조정하는 병마라고도 하지 않은가. 사람에게 질병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한시적으로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만, 나중에는 고통 이상의 유익을 주지 않은가! 그리고 죽음이라는 가장 위대한 선물을 준다. 삶의 원리를 아는 사람은 질병을 어둠이라 하지 않는다. 질병은 영이 맑아지는 빛으로 안내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주로 식자를 대상으로 했기에, 그의 철학은 우주의 원리까지 확대된다. 반면 예수는 주로 갈릴리 노동자를 대상으로 했기에, 우주는 아니고 평범한 언어로 삶의 원리를 설교했다. 엄밀히 말하면 양자의 차이는 없다. 단어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예수가 제시한 삶의 원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어둠은 저주이다. 그는 어둠으로 찾아오는 빛을 보지 못하고, 어둠을 물리쳐 달라는 기도를 강박적으로 할 것이다. 마음이 평화로울 리가 없다. 어둠도 빛인 것을 우리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는 것 같다.
당신은 지금 인생의 어떤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스러워 하는가? 빛이 어둠 속에 비추어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 사람이 어둠이라 하는 것들은 모두 빛으로 귀속한다. 세상에는 본래 어둠이 없는 거라고 이해하고 믿어보자. 본래 짐은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다. 그것들은 다 우리가 져야 할 것이고, 반드시 보상이 뒤따른다. 무거워서 힘들 수는 있지만 그것이 빛으로부터 분리된 어둠은 아니다. 무거울수록 더 밝은 빛을 운반한다.
당신이 어둠이라고 단정한 모든 것들은 빛이다. “아니야, 이것은 어둠이 아니라 빛이야.” 이렇게 외쳐보라. 세상을 어둠과 빛, 둘로 나눈 것에 문제가 있다. 이제부터 예수가 제시한 원리에 대하여 차근차근 배워보자. 배움이 진전되고 앎이 늘어갈수록, 당신 안에 내재하는 하나님을 보다 뚜렷한 감각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때의 선물은 자유와 평안이다. 그
예수께서 말씀 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 하게 하리라. 평안은 주노니,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제시한 삶의 진리를 배워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아는 것과 믿는 것을 분리해서만 생각했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모르면서 믿은 불확실한 것으로부터 점점 해방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육의 한계 안에 갇혀있기에 믿음은 중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믿는가가 중요하다.
가나심리치료연구소 박성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