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날드 위니캇의 대상관계이론①
도날드 위니캇(Donald Winnicott, 1896.4.7 ~ 1971.1.25)의 대상관계이론①
2주 전부터 위니캇의 대상관계이론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매회기 그의 정신분석학을 짧은 이야기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내가 위니캇을 책으로 만난 때는 2001년 9월 이었다. 그때 두 가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첫째, “나는 죽을 때도 생생히 살아 있기를 원한다”라는 그의 어록이었다. 둘째, 그의 글쓰기는 학자들의 글을 여기저기 인용하지 않고, 먼저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자유롭게 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이 주제에 대하여 어떤 글을 썼는지 살펴본다는 것이다.
그때는 이 두 가지가 매우 생경했고, 대가에게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론은 그만큼 창조적이고 자발적이었다. 그는 정신분석학자이지만, 그의 글을 보면 어떤 때는 아마추어 철학자 같고 또 어떤 때는 아마추어 신학자 같기도 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위니캇이 어떤 생각으로 그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전개 시켰는지 나름 이해하게 됐다. 나에게 위 두 가지는 더 이상 구름 잡는 생경한 소리가 아니다.
그는 이 지구별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참 자기’로 사는 것이야 말로 삶의 목적으로 보았다. 그런 점에서는 칼 융의 ‘개성화’와 일맥상통한다. 위니캇은 참자기로 살려면 공격성을 어떻게 통합해야 하는지 정신치료사의 입장에서 설명했다면, 칼 융은 자기의 본질에 대하여 정신치료종교학자의 입장에서 방대하게 설명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니캇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그의 아내 클레어가 발을 다쳤다. 집에 붕대가 없었다. 위니캇은 붕대를 사 올 테니 그때까지 누워있으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두 시간이 지난 후에 위니캇은 매우 밝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금팔찌를 사 들고 와서 아내에게 선물했다. 그의 손에는 붕대가 없었다. 위니캇이 그의 어린이성으로 아내와 어떤 놀이(playing)를 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어린이성에서 창조성이 나온다. 어른은 전통을 답습한다. 위니캇에게 창조성은 곧 삶 자체이다. 그는 아내와 놀이할 때에 가장 행복 했고, 정신치료를 치료자와 환자의 놀이라고 했다. 그는 농담을 즐겼고 지나친 박식함을 경계했다. 사실, 지나친 박식함은 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방어이다. 그의 제자 마수드 칸(Masud Khan)은 위니캇을 ‘행복한 사람’ ‘항상 움직이는 건강한 스포츠맨’이라 했다.
가나심리치료연구소 박성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