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화되고 의존한 부모표상을 떠나라
1847년 발표한 에밀리 브론테의 장편 소설 [폭풍의 언덕]. 이 소설이 어버이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까? 이 소설이 자신의 무의식과 접촉해 자기를 찾은 대표적 문학작품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고등학교 때에 깨알 글씨로 읽긴 읽었는데, 그때는 무엇을 읽었는지는 모르고 글씨만 열심히 읽었다. 서사가 전개되는 내내 음습한 분위기, 그거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아직은 의식화하지 않은 무의식 사건이기에 어둡게 그렸을 것이다.
하여 친절한 넷플릭스 영화로 까마득한 옛날 기억을 더듬으며 재밌게 봤다. 내용은 주인의 아들 겸 하인으로 들어온 히스클리프가 마침내 그 집 주인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초 간단하게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소설을 분석하면, 미성숙한 한 남자가 부모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마침내 자기를 실현하는 개성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오늘 어버이날에 많은 분들이 어버이를 추억하는 감상적 의례를 치렀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개인이 온전한 자기가 되려면, 그들 내면에 인격화된 그리고 의존한 부모 표상을 떠나야 한다. 어버이를 기억하는 신파극은 자기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먼저 친부 이상으로 히스클리프를 돌봐준 양부 언쇼가 죽는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같은 연인 캐서린이 죽는다. 분석심리학에서 죽음은 익숙한 것에서 분리한 성장을 의미한다. 한 사람의 온전한 성장은 내면화된 의존대상인 부모와 연인이 죽어야 가능하다. 그때 비로소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자유인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표상에 감정으로 얽혀 성장은 멈춘다. 소설은 히스클리프가 둘을 떠나보내고 그 집의 주인이 되는 것, 즉 자기 자신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
나는 나의 자녀가 나에게 얽혀 나를 떠나지 못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그들 내면의 부모상을 버리고 자기로 떳떳하게 세상의 일원이 되기를 원한다. 자식 자랑이 팔불출인 이유는 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해 자기와 자식 둘 다 바보로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