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캇의 정신분석학②
소아과 병원은 누가 오는가? 아마 당신은 ‘어린이’라고 할 것이다. 틀렸다. 어린이와 그의 엄마가 함께 온다. 위니캇은 정신과 의사가 되기 전에 소아과 의사였다. 그는 진료실에 들어오는 엄마가 그의 아이를 어떻게 안고(holding) 들어오는지, 그리고 어떻게 안고 진료를 받는지 유심히 살폈다. 엄마가 아이를 안는 방법에 따라 아이의 정서가 달랐다. 그는 ‘엄마와 아이는 하나다’라고 했다.
우울하거나 자신에게 관심이 많은 엄마는 아이를 안은 손이 자꾸 밑으로 떨어진다. 아이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둥거린다. 방바닥에 내려놓고 수유하는 엄마도 있다. 천식에 걸린 아이는 그때 기침을 심하게 한다. 반면 아이가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안정적으로 안고 엄마 가슴에 기대게 하면, 그 순간 아이는 기침을 멈춘다. 위니캇은 태아의 돌봄은 사방에서 오고, 아기의 돌봄으로 밑으로부터 온다는 흥미로운 말을 했다. 아이는 신체가 밑으로 추락하면 정서도 함께 밑으로 추락한다는 것이다.
아동은 물론 성인도 스트레스 상황에서 위에서 떨어지거나 쫓기는 꿈을 종종 꾼다. 그가 아이였을 때에 신체적, 정서적으로 엄마와 떨어진 것의 재현이다. ‘엄마와 아이는 하나다.’ 엄마는 그녀의 아이와 동일시하고, 아이는 엄마를 주관적 대상으로 삼아 엄마 것을 무조건 자기 것으로 한다. 이처럼 생애 초기에 엄마와 하나 된 경험은 사람의 무의식에 그대로 담고 있다. 중년까지는 삶의 큰 자산이다.
아이는 엄마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얼마간은 ‘홀로 있기’가 가능하다. 홀로 있어도 아이 안에는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엄마와 떨어져 놀이터에서 놀이를 할 수 있고, 더 긴 시간 동안 유치원에서 놀이와 학습을 할 수 있다. 반면 엄마와 정신 신체적으로 하나 된 경험이 부재하거나 부족한 아이는 ‘홀로 있기’가 안 된다. 홀로 놀이를 해도 침울하고 칭얼댄다. 유치원에 가서 관찰해 보면 함께 잘 노는 아이와 혼자 침울하게 노는 아이로 분류된다. 이처럼 아이의 무의식에 그려진 엄마의 흔적을 대상 항상성(Object Constancy)이라 하고, 생후 3년 이내에 형성된다. 생후 3년 이전에 아이를 떼어놓으면 부모는 반드시 그 댓가를...
꾀나 낭만적이고 일부에게는 흠모의 대상이었던 ‘군중 속의 고독’은 그가 철학적, 사색적, 예술적이어서가 아니다. 대상 항상성이 형성되지 않아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엄마가 없으니, 고독한 거다. 대상 항상성이 형성된 사람은 혼자 있기와 고독을 즐기는 일이 가능하다. 그는 고독을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 반대의 사람은 혼자 있거나 고독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는 밖으로 돌거나 엄마를 대신하는 중독 물질을 찾을 것이다.
대체로 뛰어난 예술가들은 엄마와 하나 된 경험이 부재하다. 엄마가 내면에 부재한 그들은 예술 세계에서 엄마를 찾는다. 허기진 유아가 엄마의 젖가슴을 파고드는 것과 같다. 거기로 광적인 몰입이 가능하고 남다른 창조성을 발휘하게 된다. 브람스, 쇼팽, 베토벤, 고흐, 톨스토이, 화가 이중섭, 소설가 이광수, 심지어 희극의 천재 채플린 등, 무수히 많다. 그들은 고통스럽게 찾은 엄마를 인류의 엄마로 내어준 천사들이다.
그러나 엄마 부재의 결핍이 이상심리가 되어 이 살얼음판 사회에 적응 못해 고통받는 분들은 많다. 정신분석학은 이런 분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태동한 학문과 임상 체계이다.
가나심리치료연구소 박 성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