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왜 자살 충동이 없었겠어요. 흔히들 죽고 싶다, 라고 하잖아요. 진심은 살고 싶다는 겁니다. 자살은 고통을 끊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가지고 가는 것이거든요. 그날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제가 15층 아파트에서 떨어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볼 때가 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그런데 그날은 그게 가능해 보였어요. 저는 발코니로 나가 아래를 내려다봤어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뛰어내릴 수 있는 일이었어요. 참 이상한 일이죠. 정신이 다 맑아졌어요. 저는 뛰어내렸어요. 상상으로.
그리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어요. 저는 많이 우울했지만, 평소의 우울과는 달랐어요. 이상하게 마음이 잔잔했고, 진정됐어요. 삶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죽었는데, 다시 살아난 기분이었어요. 죽고 싶다, 라는 생각의 바닥까지 내려간 후 얻은 산 교훈이었어요.
나는 힘들다는 사람에게 그 감정의 바닥까지 내려가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내려가는 길에 안내자가 되어드립니다. 그 바닥에는 “힘들다”와는 정반대의 감정이 있었습니다. “별거 아니다.” 사람이니까, 힘들 때는 기분전환을 위한 놀이를 찾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놀이는 기분전환이지, 근본 변화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근본 변화는 몰랐거나 희미하게 알았던 것들에 대한 보다 확실한 “앎”으로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