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심이 좋다는 노인이 말했다. “나는 사후세계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어. 다만 사랑하는 가족을 놓고 가는 것이 두려울 뿐이야.” 믿음이 있는데 가족과의 이별을 두려워하다니! 신앙은 삶을 뛰어넘는 것인데, 노인의 신앙은 가족공동체의 울타리에만 머무르고 있었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다.
같은 종교를 가진 50대 중반의 여성이 말했다.
“저는 생각이 달라요. 요즘 들어 배우자나 자녀나 혹은 친한 친구라 해도, 그 분들이 나와 이별하면 안될 만큼 내 인생의 중요한 대상이란 생각이 안 들어요. 오히려 언젠가는 떠나야 할 것 같아 지금부터는 놔주기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제가 믿는 종교의 사후세계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저에게 죽음은 여전히 물음표이고 두렵습니다.”
이 분의 신앙은 삶을 뛰어넘을 준비를 하고 있다. 새로운 이동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있다. 만일 당신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면, 두려움을 소거하려는 퇴행적 행동을 중지하라. 당신은 새로운 삶의 차원으로 이동하려는 것이니 오히려 기뻐하라.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이르려 하자 그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그를 위로한 말은 “두려워 말라”였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은 그 어떤 두려움도 두려움이 아니다. 두려움은 건너야 할 통과의례이지 외면하거나 버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죽음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자기 삶의 경험에 비추어, 죽음의 차원이 아닌 삶의 차원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삶이 그만큼 힘들었고 두려웠다는 것을 말해준다.
죽음은 이 땅에서 삶의 과제를 다 완수하고 새로운 삶의 차원으로 이동하는 통과의례이다. 신의 본질은 사랑이다. 죽음은 신의 본질과 접촉하는 설레는 의례이다. 가급적 육체적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 현대의학을 최대한 사용하라. 임종이 임박한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모르핀투여를 많이 해서 편안히 이 의례를 치르게 했으면 좋겠다.
통증도 잠시, 당신은 곧 신의 본질인 사랑에 이를 것이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이 땅에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하면 신의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은 인간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투사에 불과하다. 누구나 이 땅에서 자기만큼의 할 일을 하고 간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말고 슬퍼하지도 말라. 마음이 들려줬다. “죽음은 사랑이다.”